등록날짜 [ 2012-06-12 11:24:57 ]
믿고 구하면 들으시는 하나님
딸 발가락뼈 부러졌지만 믿음으로 기도하니 나아
김성결 집사 (15교구 1지역장)
<사진설명> 딸 이지인 양과 함께.
작정 기도를 시작하는 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과 담임목사님이 우리 성도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의 깊이가 느껴졌다. “기도하라”는 것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던 중, 5월 중순 무렵이었다.
수학여행을 간 딸아이(이지인, 초등 5년)가 발이 다쳤다며 전화를 했다. 아프다는 딸아이에게 “기도하고 자!”라고 말해주었다. 그다음 날, 선생님께서 압박붕대로 감아주어 절뚝거리는 발로 온종일 걸어 다녔다고 했다.
다친 지 삼일 후에 딸아이가 수학여행을 마치고 귀가했다. ‘그러다 낫겠지’ 싶었는데 발이 점점 부어오르고 시커멓게 멍들기 시작했다. 아픔을 호소하는 딸아이를 토요일에 병원에 데리고 가 엑스레이를 찍어보았는데, 오른쪽 둘째 발가락이 부러졌다고 했다. 깁스를 해주고 삼 일 후에 다시 검진하러 오라고 했다.
그다음 주 화요일은 성령강림절 성회 주간이라 오전 성회를 마치고 심방하고 집에 가보니 깁스가 다 풀어져 있고 더 시커멓게 멍이 들어있었다. 곧바로 저녁 성회를 드리러 교회에 가야했기에 병원에 가보자는 아이의 말에 순간 갈등이 생겼다. 그런데 안내위원이라 교회에 늦게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엄마가 기도할게. 너도 기도하고 자라”는 말을 하고 부랴부랴 교회로 향했다. 아이 생각을 하니 설교 말씀을 듣는 내내 허리를 의자 등받이에 편안히 기댈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다급했다. 그런 만큼 예배 시간 내내 하나님을 전적으로 찾았고, 말씀을 들으며 “아멘, 아멘” 하며 은혜 받았다. 예배 후에 30분간 통성기도 하는 시간에 성령께서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셨다.
말씀을 듣는 도중에도 딸아이 발이 나았다는 확신이 들더니, 기도할 때는 마음에 기쁨과 평안함이 찾아왔고 강한 믿음의 확신이 생겼다. 에스겔서에 죽은 지 오래된 마른 뼈도 살아 일어나게 하여 큰 군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발가락 부러진 것 고치시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그렇게 기도시간 내내 감사와 확신을 하고 기도한 후 집에 돌아오자 딸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다음 날 아침, 딸아이 발을 씻어주려고 보니 감사하게도 퉁퉁 부었던 오른쪽 발에 부기가 빠져서 왼쪽 발과 똑같이 돼 있었다. 더군다나 시커멓게 든 멍도 온데간데없어졌다. 아이의 발가락 사이를 씻기느라 주물러도 아프다는 소리가 전혀 없었다. 깨끗이 나은 것이었다.
그날 아침 성령께서는 교회에 나오지 않던 관리회원이 생각나게 하셨고, 나는 곧바로 딸아이의 간증을 적어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감사하게도 그것을 본 그 집사님이 그날 저녁 성회를 참석했고, 그 뒤로 계속 공예배에 잘 나오고 계신다.
이 일이 있은 지 한 주가 지났을까. 몸살감기가 심하게 걸렸다. 목과 머리가 아프고 기운이 쫙 빠져 어찌할 줄을 몰랐다. 마침 삼일예배가 있는 날이었고, 예배에 성공하는 자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사모하며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아픈 것을 잊을 정도로 싹 나았고, 집에 돌아와서야 “아참. 내가 아팠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그분을 찾는 자를 분명히 만나주신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그를 기쁘시게 하면 안 될 일이 없다. 할렐루야!
기도하니 고부간 갈등 사라져
시어머니 구원을 간구하니 묵은 감정 없어지고 사랑하게 돼
임인옥 성도(6교구 2지역, 39여전도회)
올해 처음 작정 기도회에 참여한 내 기도제목은 ‘시어머니가 당신의 방에 걸린 용(龍) 그림 액자를 손수 떼어내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용(龍)은 성경에 마귀나 사단 귀신을 상징하는 상상 속 짐승인데, 시어머니께서는 “방에 걸어 두면 복을 받는다”는 만신의 말에 속아 거액을 주고 두 개나 사서 벽에 걸어둔 지 수년째 됐다. 부조(浮彫)한 데다 도금까지 해서 입체감이 느껴지는 용 두 마리가 마치 하늘로 올라갈 듯 버티고 있는 형상이었다.
시어머니는 85세로 연로하셔서 하루속히 전도해서 구원받으셔야 하는데, 워낙 불도와 미신이 세서 전도는커녕 오히려 내가 영적으로 눌려 지낼 때가 잦았다. 그러다가 연로한 시어머니를 속히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이 절실해진 것은 딸의 권유로 지난 8월 연세중앙교회에 출석하면서부터다.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마치 무엇엔가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죄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아는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설교하실 때마다 성령님의 은혜로 매번 회개하게 하시니 점차 시어머니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종교문제든, 집안문제든 고부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내게 원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름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결혼하면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을 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불교 신자인 시어머니와 한집에 살다 보니 남편이 선뜻 교회에 따라나서지 못했다. 게다가 시어머니께서 왜 그리 자주 교회에 가느냐며 여러 가지로 나를 못마땅해 할 때는 시댁 식구들이 참 인정없고 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교 말씀을 들으니, 오히려 내 안에 용서하지 못하는 교만한 마음이 가득했음을 깨달았고, 내 안에 희미하게 존재하던 악의 실체가 확실히 보였다. ‘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가 악한 자구나. 내가 먼저 사랑하지 못했구나.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구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의 악독이 보이고, 회개할 때 그 악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 50일 작정 기도회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내 마음이 더욱 낮아졌다. ‘아, 내가 진정으로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하지 않았구나. 내가 시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구나. 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었다.
시어머니를 구원하려고 무엇보다 커다란 용 그림을 시어머니께서 손수 떼어내 버리시도록 간절히 기도한 지 4주쯤 됐을까. 하루는 퇴근해서 집에 갔더니 시어머니 방 벽이 깨끗했다. 깜짝 놀라서 남편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시어머니께서 “용이 두 마리나 벽에 붙어 있으니 재수 없다, 갖다 버려라” 하시며 손수 그 용 그림 액자를 떼서 버리라고 했단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없다고 하신 말씀처럼, 정말 기도했더니 시어머니의 심경이 그렇게 놀랍게 변한 것이다.
이번 작정 기도를 통해 그동안 품고 기도하던 것을 이루어주시고 응답하시는 위대한 하나님,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소원을 주시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임을 눈앞에 보여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나는 갚을 길 없는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자임에도 내게 고작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치 못했음을 깨닫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속에 있는 악한 것들을 내려놓을 때에야 비로소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수많은 악한 성품을 모조리 쏟아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또 절대로 마귀의 꼭두각시가 아닌 성령님이 쓰시는 거룩한 도구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전달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우상숭배 끊으니 몸도 건강
이유도 모른 채 고통받다 기도하며 깨달음을 얻어
김향숙 성도 (5교구 2지역, 28여전도회)
결혼한 지 35년쯤 된 것 같다. 시집오니 제사가 일 년이면 열두 번이나 있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제사를 지내면 안 되지...’ 하고 마음먹으면서도 장손 며느리라 어쩔 수 없이 시부모를 도와 제수를 장만해 제사 지내는 일을 도왔다.
사실 결혼하기 전 친정에 있을 때도 친정 부모님을 따라 우상을 섬기고, 무당을 불러 집에서 푸닥거리하고, 거리제 패거리를 종종 따라다녔으니 우상숭배에 젖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막내딸을 낳을 즈음부터는 음식을 먹으면 다 토하고 몸이 마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시댁 제삿날이 다가오면 더욱 몸이 아팠다. 고향을 떠나 부천으로 이사온 후로는 시댁 제사에 참석하려고 기차표를 끊어 놓고서도, 어찌나 몸이 많이 아픈지 참석하지 못할 때가 잦았다.
그때마다 시아버지는 “장손 며느리가 제사 지내러 안 오느냐”고 나무라시고 유독 나를 미워하셨다. 그런 시아버지를 나도 미워하며 원망했고,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다.
막내딸이 올해 서른 살이 됐으니 근 30년을 그렇게 아팠던 것이다. 내 몸이 왜 그리 아픈지 이유도 몰랐다. 더군다나 최근 몇 년 동안은 병세가 더욱 위중해 몸은 돌덩이같이 딱딱했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온몸이 막히고 뭉쳐서 약을 먹는 날이면 흡수를 못해 퉁퉁 부었다. 눈은 안 보일 정도였다.
한약, 양약도 다 먹어보고, 봉침(蜂針)도 근 1년간 맞았다. 그러나 차도가 없었다. 바늘귀만큼도 성한 곳이 없고 만질 수도 없이 아팠다. 그리고 일주일이면 절반 이상을 잠 못 자고 뒤척였다. 나름대로 교회에서 충성봉사하며 주의 일 한다고 했지만 지독한 질병으로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지난해 4월 17일 총동원주일 처음 우리 교회에 왔다. 연세중앙교회를 다니며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막내딸을 보며 ‘나도 연세중앙교회에 나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윤석전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설교말씀을 들으며 이제까지 내게 고통을 가져다준 것이 사단 마귀의 역사임을 알게 되었다.
‘그간 어쩔 수 없이 제사 지내고, 제사를 요구하시는 시부모님을 원망하며 살던 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깨닫고 눈물로 회개하였다. 마귀가 내 안에 죄의 집, 병의 집을 짓고 산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 교회에 등록하고 나서 지금까지 1년 넘게 매일 기도하고 있다. 근 1년간 기도하니 그 긴 세월 아프던 온몸이 거의 나았다. 우리 교회에 와서 기도하면서부터는 병원에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이전에는 몸 색깔이 까맣게 죽어 있었는데, 요즘은 목욕할 때 “왜 이렇게 살결이 하얘졌지?” 하고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동안 신앙생활 했노라 했지만, 성령의 능력이 아닌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이제 내 꿈은 성령의 인도와 도움으로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다. 기도하여 능력 받고 가는 곳곳마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 싶다.
지난주일 저녁 성가대 감사예배 때는 성가대 지원도 했다. 목이 쉬어 목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고 싶어서다. 기도하는 우리 교회가 정말 좋다. ‘기도밖에 없다’고 절실히 느낀다. 나는 “기도하라”는 말이 정말 좋다. 그러니 어떻게 기도를 쉴 수 있겠는가.
가족 모두 잃어버린 시력 회복
선천적 고도 난시 고침받고 어머니와 누나도 눈 밝아져
<사진설명> 누나와 함께.
김예찬 (중등부 2학년)
선천적으로 고도 난시가 있던 나는 시력이 마이너스 5.0 이하였다. 어릴 때는 사물을 잘 분간하지 못해 이곳저곳에 자주 부딪히고 넘어져서 다리에 멍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다섯 살 때부터 안경을 착용해야만 했다. 누나(김예슬, 대학부)와 어머니(이소진, 49여)도 난시가 있고 시력이 좋지 않아 반드시 안경을 착용해야 했다.
그런데 50일 작정 기도회를 열흘 정도 남긴 날이었다. 누나가 기도하던 중에 콘택트렌즈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콘택트렌즈를 다시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서 들으시고 “렌즈를 착용하는 것이 불편한데 종종 잃어버리기도 하니까 이번 작정 기도회 때 하나님께 좋은 시력을 달라고 기도해봐” 하고 누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누나는 하나님께 시력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랬더니 기도 중에 ‘에바다(열려라)’라는 말씀과 ‘열려라 에바다’ 찬양을 받자 누나는 하나님께서 시력을 회복해 주실 걸 믿고 안경을 벗기로 했다.
누나가 기도 중에 그렇게 응답받은 것을 보니 기쁘고 부러웠지만, 막상 어머니께서 “너도 누나처럼 기도해서 응답받아” 하고 말씀하실 때는 자신이 없었다. 누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시력이 나쁘니 나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서 소경을 고치신 내용이 성경에 몇 번이나 나오는데 그까짓 눈 잘 보이게 하는 것이 뭐가 그리 문제가 되겠느냐?” 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그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하실 거라는 믿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작정 기도 마지막 날, 우리 가족은 교회에서 함께 기도했다. 기도할 때 ‘시력을 좋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다’는 감동이 왔고, 그 감동대로 기도하는데 순간 영안이 열렸다. 예수님께서 내게 오셔서 눈에다 안수를 해주셨다. 그리고 “에바다!” “에바다!” 하는 음성을 반복해서 들려주셨고, 나는 “아멘!” 하며 화답했다.
기도회가 끝난 뒤 안경을 썼다. 그런데 내게 잘 맞던 안경이 도수가 맞지 않아 어지러운 것이 아닌가. ‘이렇게 어지러운 걸 보니 내 눈이 정말 밝아졌구나!’ 하고 생각해 그 자리에서 안경을 벗고, 기도의 응답을 가족들에게 알렸다. 가족들은 매우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고, 어머니 역시 그날 안경을 벗기 원한다고 기도해 눈이 밝아지셨다.
나와 누나, 어머니는 모두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력을 주셔서 지금은 안경을 벗고 생활하고 있다. 예전엔 2~3미터 떨어진 간판의 글자가 보이지 않고 희미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10미터 떨어진 간판의 글자도 선명히 보인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길을 가다가 계속 “저건 무슨 글자니?” 하고 물으시며 기뻐하신다.
이렇게 우리 가족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무엇이든 믿음으로 구하면 구하는 대로 주시는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과 감사를 드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29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