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교인 50일 작정 기도회 간증] 신앙생활이 가장 우선임을 깨달아 등

등록날짜 [ 2012-07-10 09:59:38 ]

신앙생활이 가장 우선임을 깨달아

이사 문제로 갈등 빚었지만 기도로 평안 찾아
가족 모두 구원받는 그날까지 계속 기도할 터

정명선 집사(유아유치부 교사, 4교구 2지역)

2005년 교회 근처 구로구 궁동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중, 학부형(조해정 집사)이 전도해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다.

난생처음 다닌 교회에서 말씀으로 큰 은혜를 받았고, 이듬해는 결혼 5년 만에 임신해 딸 쌍둥이를 낳는 축복도 받았다. 당시 시흥동에 살았는데 청약저축으로 아파트에 당첨해,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해야 했다. 그러나 한참 은혜 받던 차라 늘 교회 근처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무렵, 하루는 꿈을 꿨다. 친정아버지께서 교회 마당이 훤히 보이는 집에서 교회를 내려다보는 꿈이었다. 친정아버지는 연로하신 데다 홀로 계셔서 하루속히 전도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는데 그런 꿈을 꾸니 교회 옆으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딱 3년만 교회 근처에서 살자”는 조건으로 남편을 설득해 청약을 포기하고 궁동으로 이사했다. 그런데 4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지난겨울이 되자 또 이사 문제로 남편과 승강이를 벌여야 했다. 신랑이 진급해 발령이 났는데 대전에서 2년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사택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좋은 조건이라 반대할 처지도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대전에 가서 살 집도 알아보고, 쌍둥이가 다닐 유치원도 알아보고 왔다. 그런데 담당 교구장과 지역장 그리고 믿음의 친구들이 한결같이 “대전에 가지 말고 서울에서 신앙생활 잘하자”고 권면했다. “지금 당장은 남편을 따라가는 것이 가정의 화목을 위한 것 같지만, 길게 봤을 땐 성령 충만한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남편의 믿음을 세우고 양가 부모형제를 구원하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하지만 남편은 올 1월 대전으로 내려갔고, 나도 고민 끝에 곧 이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지난 3월이었다. 교우 한 분이 “교회 교육관 옆 건물 빌라 2층이 학원 하기에 안성맞춤이니 그곳에서 미술학원을 해보라”고 권면해 주었다. 지난해 5월에도 그런 말을 해주었지만, 그때는 이사할 계획이 없었기에 오가며 유난히 예쁘게 지어진 그 빌라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최근에 그 빌라 2층에 세든 신혼부부가 갑자기 나가버려서 지금 비워둔 상태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아, 하나님께서 교회 근처에서 살라고 나를 붙드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 끝에 그 빌라에서 미술학원을 열고 남편이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2년간 주말부부 생활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계약하는 날, 그 집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교회 마당이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게 마치 6년 전 꿈속에서 친정아버지가 계신 바로 그 집과 너무나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올해도 어김없이 작정 기도회가 열린다고 하니, 무척 흥분됐다. 새집으로 이사하면 남편부터 믿음의 가장으로 우뚝 세울 것이고, 친정아버지며 친정식구들을 모두 구원받게 할 것이고, 학원도 잘 꾸릴 것이고…. 부푼 꿈을 안고 기도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새집으로 이사해야 하는데 살던 전셋집이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서 간절히 기도하던 중,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이사할 그 집에서 남편과 양가 부모형제가 믿음으로 세워질 것이기에 영적 세력이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남편은 할아버지 때부터 기독교 가정이었고 남편이 학창시절 때까지만 해도 믿음생활을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병이 들어 낫지 않자 불교로 개종하셨고, 남편도 결혼할 무렵엔 나와 똑같이 불신자였다가 내가 예수를 믿으면서부터 한 걸음씩 교회로 인도되었다. 기도를 통해 그런 영적인 깨달음이 오자 더욱더 간절히 기도했다.

시댁 식구들이 다시 참된 진리의 믿음을 회복하도록, 남편이 믿음의 가장으로 우뚝 세워지도록…. 매일매일 땀방울이 맺힐 만큼 간절히 기도하니, 작정 기도회 중반에 들어설 무렵, 남편과 시댁 식구를 감싸던 악한 역사가 떠나가는 것이 느껴졌고 내 마음속에 평안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5월 말 살던 전셋집이 나가고 6월 초에 교회 옆 빌라로 이사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빌라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다.

앞으로 꿈속에서처럼 친정아버지가 교회 마당을 내려다볼 뿐만 아니라 그 마음속에 주님을 믿고 사모하는 마음이 넘쳐나고, 남편도 믿음의 가장으로 우뚝 세워져 온 가족을 믿음으로 이끌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기도를 통해 일하실 주님을 기대한다.



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

간구한 대로 응답하심에 감사 넘쳐

김주비(충성된청년회 8부)

내 기도제목부터 시작해서 가족과 친구, 교회와 나라 등 쭉 돌면서 다 기도해도 30분 하고 나면 더는 할 말이 없고, 그 30분조차도 버거웠다. 그러던 내가 전 교인 작정 기도회 기간 50일 동안 매일 두 시간씩 기도를 성공한 것은 전적인 주님의 은혜다.

이번 작정 기도회 동안에 수년간 괴롭히던 오른쪽 엄지발가락 염증이 깨끗이 나았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심령이 새로워진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임을 생생히 체험하지 못했기에 늘 신앙이 뜨겁지 못했고, 뜨거워졌다가도 금세 식어버렸다.

그런데 이젠 주님의 그 십자가의 고난과 사랑, 그 보혈을 언제 어디서나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내가 진정 죄인임을 깨달았고, 주님의 이름조차 부를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깨달았기에 더욱더 주님만을 의지하게 되었다.

가장 큰 기도응답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오빠가 변한 것이다. 우리 가정 기도제목 제일순위인 오빠는 고등학교 때 부모의 속을 많이 썩여, 흰돌산수양관 성회에 억지로 참석했다가 중간에 도망친 전력도 있다.

그런데 윤석전 담임목사님께서 로스앤젤레스 은혜한인교회에서 부흥성회를 인도하신다는 광고를 듣자 오빠가 사는 곳에서 5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교회라 오빠에게 연락해줬다. 그리고 오빠가 은혜 받도록 계속 기도했다. 그런데 아침 성회만 겨우 참석할 수 있다던 오빠가 뜻밖에도 첫 설교부터 마지막 날 설교 말씀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 듣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아닌가. 오빠 입술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고백이 흘러나왔을 때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도응답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고모가 백혈병에 걸려서 골수이식 수술을 세 번이나 해야 했는데 주님의 도우심으로 두 번 만에 무사히 끝나고, 거부반응 없이 골수도 잘 생착됐다.

나는 아직도 늘 넘어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다. 그러기에 더욱 기도를 멈추지 않고, 늘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이루고 싶다.

위 글은 교회신문 <29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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