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1-29 15:15:55 ]
아들의 선천성 질환으로 35년간 어려움 속에 살다
예수께 기도하며 응답받는 기쁨을 만끽하면서부터
요양병원 운영과 생활 속에서 참자유와 행복 누려
<사진설명> 남편(류영환 성도)과 함께.
35년간 성당에 다니며 새벽기도로 주님을 갈급하게 찾았다. 올해 서른다섯 살인 큰아들은 선천성대사질환(PKU)을 앓아서 서너 살 때까지도 엄마인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지금도 정신지체 장애를 지니고 있다. 신생아 때 치료해야 낫는 병이지만, 30년 전에는 일본에 나가야 겨우 치료할 수 있었던 탓에 그저 우리 가정은 이 아이를 위해 기도밖에 달리 할 게 없었다.
그러나 30년 넘게 성당에 다니며 기도하면서도 왜 마리아에게 중보를 부탁해야 하는지, 왜 예수님께 직접 기도하면 안 되는지 의문만 쌓였다. 그러다 하나님 은혜로 지난해 말에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설교 말씀을 듣는데, 담임목사님께서 연신 “오직 예수! 오직 예수!”를 외쳐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니, 곧바로 예수께 나아갈 길이 있단 말이야?’
성당에 오래 다녔는데도 전혀 듣지 못한 말을 우리 교회에 온 첫날 들을 수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도 “오직 예수, 오직 예수”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예배가 이렇게 기뻐도 되는 것인가’
어느 날 연세중앙교회 앞을 지나는데, ‘하나님이 저 교회 목사님을 얼마나 예쁘게 보셨기에 저렇게 큰 성전을 주셨을까? 나도 이제 큰 병원을 인수하려고 하는데 연구 한번 해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교회에 첫걸음을 디뎠다. 목사님 저서부터 한번 보자는 생각으로 교회 안에 있는 연세말씀사에 가서 도서를 샀다. 그곳 직원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주일 예배에 한번 와 보라. 목사님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한번 들어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호기심에 방문한 교회였지만, 그때부터 우리 집에 있던 큰 결박이 풀리기 시작했다.
주일에 성전 맨 앞에 앉아서 선교단 찬양을 듣고 있는데, ‘이렇게 기뻐도 되는 거야?’ 할 정도로 기쁨이 넘쳐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살아 있고 글로리아선교단 찬양에서 말할 수 없는 구원의 감사와 자유가 전해졌다. 뒤를 돌아보니 성도가 매우 많은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사람의 힘으로 이렇게 많이 모일 수 있는 거 아니잖아?’ 하며 다음 주일에 남편(류영환 성도)과 둘째 아들을 데리고 예배에 왔다.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한 지 몇 주 지나지 않아서 영적생활이 무엇인지, 마귀역사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역사도 일어났다. 정신지체인 큰아들이 갑자기 없어진 것이다. 전 교인이 통성기도로 중보해 주고, 교구장과 지역장과 교회복지실 분들이 끝까지 남아 위로해 주었고, 결국 하나님 은혜로 큰아들을 찾았다. 이후에도 막내아들이 갑자기 시험이 들어 나와 불화를 일으키고 성당에서도 ‘그 교회 가서 벌 받는 거다’라고 우리 가정에 혀를 찼다.
그래도 처음 경험한 영적 체험이 견고하게 믿음을 붙들어 흔들리지 않았다. 또 목사님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에 점차 귀가 열리면서 성당에서 우상숭배 했던 것을 깨닫고 회개했다. 우리 병원 앞에는 천만 원 값어치가 나가는 베드로 형상이 병원 입구 좌우에, 마리아상이 병원 건물 꼭대기에 달려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저거 돌멩이잖아? 지금껏 돌멩이한테 절한 거잖아?’ 하는 깨달음이 와서 치워 버렸다.
그러자 ‘과연 우리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좋은 일이 벌어질까, 안 좋은 일이 벌어질까?’ 하며 괜히 염려 반, 기대 반 생각이 복잡했다. 그런데 그 형상들을 치우자마자 남편과 가족들이 우리 교회에서 예배 시작할 때 부르는 “예수 결박 푸셨도다” 찬송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나도 뭔지 모르지만 속이 시원하고, 가족들도 뭔가 자유하고 시원한 느낌이 있었는지, 우리 가족의 표정이며 삶에 변화가 일어났다.
요양병원에서 매주 전도잔치 열어
연세중앙교회에 와서는 예배마다 은혜 받고, 주일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 모르게 기쁨이 넘친다. 일산에서 매주 예배에 오는 친정 오빠도 기독교로 개종해 풍성한 찬양과 설교 말씀에 매주 감격해 한다. 요새 남편 입에서는 찬송이 끊이지 않는다. 아들들도 청년회에 소속해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
남들이 볼 때, 우리 집안의 큰 짐이라 여기는 큰아들도 사실 우리 가정의 복덩이다. 30여 년 전 서울대 의과대학에 다니던 남편이 유학차 집에 없을 때 어린 아들의 상태가 심각한 것을 발견했다. 집 한 채를 팔 정도로 치료비용도 힘겨웠지만, 누구도 의지할 데 없던 터라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은 아들을 수발들게 하며 엄마인 나를 영적으로 훈련하셨다.
몇 년 전 50~60명 규모인 요양병원을 하다가 감동이 와서 300여 명을 돌볼 병원으로 확장해도 되는지 주님께 기도를 먼저 드렸다.
‘주님, 제가 300여 명을 돌볼 병원으로 확장하려고 하는데 감당할 능력이 있나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
“이미 네 아들을 통해 너를 시험해 보았다. 300여 명 노인들보다 네 큰아들 하나를 키우는 게 더 힘든 일인데, 잘해 주었다.”
돌보기 어려운 큰아들을 나를 믿고 맡기셨다는 응답에 계속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더불어 이 아들을 통해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무엇보다 30여 년 동안 있던 어두운 결박에서 건져 예수를 만나게 하심에 감사했다.
<사진설명> 요양병원 환우들과 함께.
예수로 우리 가정의 결박이 풀리자 운영하는 요양병원에서 근 1년 동안 매주 전도잔치를 열고 있다. 남편이 소속한 남전도회에서 매주 토요일에 와서 생애 마지막을 보내시는 노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병원에서 돌보는 노인들은 코에 줄을 꽂고 말도 못하실 정도로 고령이지만 토요일마다 오는 전도팀 찬양에 귀를 쫑긋하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신다. 생애 마지막 드리는 예배일지 모르기 때문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도록, 그리고 영혼 살리는 병원이 되도록 기도하고 있다.
노인요양병원 특성상 임종을 자주 접하는데, 그럴 때면 바삐 달려가 예수를 전한다.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예수님만이 구세주세요.” 복음을 받아들이고 어느새 평안히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기독교에만 진정한 생명이 있음을 깨닫는다.
김세련 성도(5교구 1지역, 21여전도회)
/오정현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2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