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6-05 17:14:44 ]
학창시절부터 귀가 안 들려 우울증에 시달렸으나
나날이 즐겁게 신앙생활 하니 어느새 병이 나아
때론 은혜를 잊기도 하나 오로지 주만 찬양할 것
김종신
2006년 7월, 서울에서 일하며 자취 생활을 하던 중 갑자기 지하철에서 구토하고 현기증이 나더니 쓰러졌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만성중이염으로 고막이 아예 없고 귓속 뼈가 녹아내렸다고 했다. 염증이 뇌에 전이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어서 당장 수술이 시급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저수지에 빠졌다가 간신히 살아난 후로 항상 귀에서 물이 나오고 두통도 몹시 심했다. 그 여파로 청각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병원에 가지 않고 오랜 세월 참고 견뎠더니 수술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큰누님이 비용을 마련해 주어 수술했다. 그런데 수술이 잘못되었는지 보청기를 껴야 간신히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듣는 데는 문제가 없었는데 청력을 거의 잃고 보니 그렇게 절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직장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동료와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됐고, 그들이 점점 나를 상대하기 싫어하고 피해 다니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내 모습을 흉내 내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지고 우울증이 심해졌다.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담배를 피우거나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자살도 여러 번 시도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죽지 못해 살다가 인천에 사는 큰누님 집을 찾아가 힘들어서 당장 죽고 싶다고 고백했다. 누님 집에서 조카를 만났다. 조카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조카는 내게 “연세중앙교회 청년회 부장님이 지금 흰돌산수양관에서 추석성회를 한다고 나더러 오라고 해요. 삼촌도 같이 가면 좋은데…”라고 말했다. 나는 수원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고, 그다음 날 조카를 데리고 수원으로 가서 그 청년회 부장을 만났다. 부장은 조카를 무척 반갑게 맞아 주더니, 직접 휠체어를 차에 실어 주고, 조카를 따뜻하게 안아 주기도 하였는데 그 모습이 내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아무도 내게 친절하게 대해 주지 않았다. 말할 때 보청기 소리가 울려 내 목소리 억양이 격해지면 상대방이 오해해서 내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세상 친구나 동료가 다 나를 따돌리고 피하는 모습에 상처받아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연세중앙교회 청년회 부장과 형제자매들은 나를 친절하게 섬겨 주고 존중해 주었다. 그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은 터라 교회에 나오라는 부장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혹시 사람들이 나를 흉보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부장은 그런 나를 위해 계속 기도하다가 한번은 울고 있었다. 왜 우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기도하다 보니 눈물이 난다며 계속 울었다. 부장이 주님 마음으로 나를 위해 울었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
2007년 이웃초청 예수사랑큰잔치 때 정식으로 교회에 등록하고 그다음 주일예배 때 자리에서 일어나 환영을 받았다. 목사님과 여러 성도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찬양을 불러주며 축복해주자 감격에 벅차 눈물이 났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그 후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귀가 들리지 않는 것도 고침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2008년 정회원이 되고 2개월쯤 후부터 찬양대원이 되었다, 그런데 찬양 연습할 때는 희한하게도 노랫소리가 귀에 쏙쏙 잘 들리고 귀에서 소리가 전혀 울리지 않았다. 하나님 은혜였다. 찬양할 때면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생각에 눈물로 찬양을 올렸다.
그렇게 찬양대에서 충성하던 2008년 가을께였다. 갑자기 귀가 밝아지는 느낌이 들더니 보청기를 뺐는데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모든 소리가 정확하게 들려왔다. 놀랍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병원에서는 수술 후 더 나빠진 후로는 고칠 수 없다며 손을 뗐는데, 주님이 나를 완전히 고쳐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 큰 은혜와 감사를 잊고, 나는 지방을 옮겨 다니면서 일을 하느라 신앙생활을 소홀히 했다. 고된 작업으로 몸이 지치고 망가졌고, 영혼도 메말라갔다. 그러다가 나를 처음 섬겨 준 부장의 전화를 받고서야 내가 주님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신입반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도와줘서 신앙생활을 회복했다. 주님께서는 그 친구와 울며 기도하게 하셨고, 주일성수 할 수 있는 좋은 직장도 주셨다. 직장 생활을 하며 어떻게든 예배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주일에 특근을 할 때도 있고,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예배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렇게 2년여 세월이 흐른 올 2월, 잠을 자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종신아! 네가 찬양대에 서야 한다. 네가 찬양대에서 찬양해야 축복 속에 산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 저 출퇴근 시간이 1시간 반이나 돼서 교회에 오가는 것도 빠듯해요. 그런데 어떻게 제가 찬양할 수 있어요? 저는 노래도 잘 못해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님은 “네 육체는 이 세상 끝나면 끝이지만 네 영혼은 영원한 복을 받아야 하지 않느냐. 네가 찬양하는 축복을 받으면, 네 영혼, 육체, 물질 다 지켜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찬양대에 서기만 해도 큰 축복이며 축복된 삶을 통해 결혼도 인도해 주시겠다는 감동을 주셨다. 그리고 찬양해야만 내가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하셨다.
다시 찬양대에 들어가 찬양하니 직장에서도 사고 나지 않게 주님이 지켜 주신다. 찬양하며 기도하며 일하다 보면 주님 은혜에 감사해서 눈물이 난다. 피곤하고 지치지만 주님이 찬양할 때 새 힘을 주신다.
요즘도 나는 찬양대에 서서 찬양을 드릴 때면 눈물과 감사가 흘러나온다. 나 같은 자를 주님이 불러주셔서 안 들리던 귀도 열어 주시고, 좋은 직장도 다니게 해 주셨고, 무엇보다 가장 귀한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 사람들이 상종하기 싫어하던 이 부족한 나를 향한 사랑의 끈을 절대 놓지 않으신 주님. 나도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과 충성의 끈을 절대 놓지 않으려 한다.
/정리 김정현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4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