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교인 40일 작정기도 그리고 10일’ 간증] 칼로 에는 듯한 손목 통증 깨끗이 없어져 외(外)

등록날짜 [ 2013-05-08 11:59:46 ]

‘전 교인 40일 작정기도 그리고 10일’ 기도회가 반환점을 넘어선 가운데 곳곳에서 응답을 체험하고 있다. 교회신문에서는 작은 것이라도 응답을 체험한 이들의 간증을 받고 있다. 기도를 통해 응답을 받고 하나님을 체험한 내용을 나누며 서로 은혜와 도전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실>

칼로 에는 듯한 손목 통증 깨끗이 없어져
강칠석 협력안수집사(17남전도회)

오른쪽 손목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통증이 5개월째 계속됐다. 마치 면도칼로 살을 도려내는 듯했다. 한 번 통증이 시작되면 10여 분간은 아무것도 못하고 아픈 손목을 붙잡고 가만히 있어야 했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극심한 통증이 반복되니 죽을 맛이었다. 평소 우유대리점을 운영하느라 손목을 많이 쓴 데다, 지난겨울 제설작업을 할 때 엎어지면서 손목을 접지른 것이 원인이었다.

낮엔 통증이 와도 그때뿐, 곧 일에 파묻혀 고통을 잊어버리지만, 문제는 한밤중이었다. 밤에 통증으로 잠을 깨면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어떤 때는 새벽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어지간한 통증은 참고 지나가는 성격인데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진통제를 한 통 샀다. 하지만 그 약을 다 먹을 때까지도 통증이 완화되지 않았다. 한 달쯤 됐을 때, 하는 수 없이 정형외과를 찾아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만 할 뿐 통증을 없애 주지 못했다.

또 그럭저럭 한 달간 통증에 시달리다가 한의원에서 일주일간 침을 맞았으나 역시 차도가 없었다. 5개월간 몸무게가 5킬로그램이 빠질 정도로 통증에 시달렸지만 병원에서도 한의원에서도 뾰족한 치유 방법이 없자 교회에 가서 기도만 했다.
그러던 중 ‘전 교인 40일 작정기도 그리고 10일’ 기도회가 시작됐다.

그런데 기도회 첫날부터 마음에 큰 감동이 왔다. ‘아, 주님이 그간 내가 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려고 기다리시는구나!’ 그래서 작정 기도회 동안 꼭 통증이 치유되리라 기대하고 기도에 돌입했다.

감동은 적중했다. 작정 기도회 21일째 저녁, 여느 때처럼 한 시간 동안 회개와 감사 기도를 하고, 소속한 17남전도회원 가정을 위해 중보기도 한 후에 우리 가족 기도까지 마치고 나를 위해 기도하려고 왼쪽 손목으로 아픈 손목을 누르고 기도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오른쪽 손목에서 ‘뚝’ 하는 소리가 두 번이나 났다.

‘이것이 무슨 소리야!’ 생각하는 순간, 오른쪽 손목에서 뭔가 막힌 것이 ‘확’ 뚫리는 기분이 들더니, 5개월간이나 괴롭히던 지긋지긋한 통증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이적이었다.

지금도 기도하다가 응답받고 극적으로 손목 통증을 치유받은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역시 기도하면 꼭 응답받는다. 극심한 손목 통증을 일순간 치유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앞으로 그 은혜와 감사를 잊지 않으며 마음과 뜻을 다해 주를 위해 살고 싶다.

아버지를 교회로 당긴 기도의 힘
강해나라(대학청년회 5부)

아버지가 예수를 믿지 않으셔서 늘 걱정이었다. 교회가 노량진에 있을 때 등록하고 몇 번 나오신 적은 있다. 아버지는 주일에도 일을 하셔서 영육 간에 지치고 힘들어 신앙을 멀리하시다가 결국 우상숭배를 하게 되고 불교를 믿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가 교회 다닌다고 핍박하거나 직접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내가 교회 이야기를 하거나 전도하려고 말을 꺼내면 항상 비꼬거나 좋지 않게 말씀하시고 이야기를 가로막으셨다.

나도 그런 아버지를 전도해야겠다고 마음먹기는커녕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다 보니 전도할 마음도 식고 왠지 교회 오시라고 적극 권유하는 것이 어색했다.

하지만 담임목사님께서 전도하라고 애절하게 설교하시는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 자꾸만 아버지가 생각나고 아버지 영혼을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왔다. 그렇게 기도하니 ‘아버지가 예수 몰라 지옥에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 후로 틈날 때마다 아버지께 “예수 믿고 같이 천국 가요, 아빠!” 하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 아버지 마음에 조금씩 예수를 전했다.

작정기도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어떤 문제를 해결받을까?’ 생각하다가 응답받을 내용을 적는 칸에 내게 필요한 기도 제목들을 적은 뒤 제일 마지막 칸에 ‘아버지 구원’이라고 적었다. ‘과연 적은 대로 응답 될까?’ 하는 의심도 없지 않았다. 제일 자신 없는 기도 제목이라 마지막 칸에 적었지만 ‘내가 응답하는 것이 아니니, 주님께 맡기자’라는 생각으로 의심하는 마음을 떨치고 기도를 했다.

그런데 작정 기도회 첫날, 기도를 마치자 아버지께서 “회사 근처에 있는 교회에 다니기로 했다”고 연락하셨다. 처음엔 기뻤지만 마음 한편에 ‘그냥 조금 다니시다 또 말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포기 않고 기도했다. 그러더니 아버지는 어느새 교회에 대해 마음 문이 많이 열리셨는지 “성경책 하나만 구해다 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그리고 새벽일 때문에 힘드실 텐데도 주일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교회에 갈 준비를 하고 계셨다. 그뿐만 아니라 고모네 가족에게도 연락해서 “교회에 다녀라! 교회에 열심히 다녀라!” 하며 가족들에게 전도하시는 모습을 볼 때 아버지 마음을 움직이신 주님께 감사했다.

몇 십 년간 교회 근처를 맴도셨지만 차마 다닐 용기가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 문을 활짝 열어 주신 주님께 감사한다. 이제는 정말 주님을 뜨겁게 만나게 해달라고, 잊지 못할 신앙 체험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 응답이 올 때까지 열심히 기도할 것이다. 아직은 아버지께서 일, 환경, 여러 사정으로 연세중앙교회에 오는 것이 어렵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내 기도를 듣고 더 큰 응답을 주실 주님을 기대한다.

관절염으로 못 걷다 잘 걷게 돼
김경미 집사(32여전도회)


5년 전, 병원에서 퇴행성관절염 시초라는 진단을 받았다. 다리가 아프긴 해도 걷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올 3월 중순께 왼쪽 다리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나더니 통증이 왔다. 걸어 다니지 못할 정도로 심했다. 아픈 다리를 끌고 정형외과를 여러 군데 다니다가 결국 대학병원까지 갔다. 진찰 결과, 퇴행성관절염으로 연골이 닳았다며, MRI를 찍어보고 이상이 있으면 수술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신앙생활 해 온 경험에 비춰 볼 때 이 정도 아픈 것은 ‘담임목사님께 기도 한번 받으면 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기회를 봐서 담임목사님께 기도받으려고 마음먹었다.

올해 작정 기도회 첫날, 마침 주일 저녁예배 기도시간에 몸이 아픈 성도들이 강단에서 담임목사님께 기도받는 시간이 있어 나도 그 대열에 꼈다. 드디어 담임목사님이 내가 앉은 쪽으로 다가오시는 순간, 내 눈에 담임목사님의 가늘고 연약한 다리가 선명히 들어와 박혔다.

수많은 성도가 통성기도할 때 몸이 아파 기도받으려고 강단에 올라앉은 그 절박한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뜻밖에도 연약한 주의 종의 모습을 보게 하신 뜻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순간, 내 다리를 낫게 해달라는 기도는 어디 가고 담임목사님이 건강하시도록 눈물로 기도했다.

그리고 연약한 몸을 이끌고 목회하시는 목사님을 위해 기도로 동역하지는 못할망정 그런 목사님께 기도받겠다고 강단에까지 나와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해서 눈물로 회개했다. 이윽고 목사님께서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시자 염치없지만 믿음으로 “아멘!” 화답했다.

그런데 그 시간 이후로 한 달간 통증으로 걷지 못하던 다리에 아무런 통증이 없고 정상으로 걸었다. 작정기도를 하면서 그동안 주일에 예배 안내위원을 하며 이런저런 이유로 힘들다고 불평불만 했던 것을 회개했다.

또 지난해에 소속한 여전도회원들과 개봉역에서 전도했는데 올해는 회원들이 바뀌어서 동역자가 없다는 핑계로 전도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전도를 그만둔 후로 다리가 더 아팠던 것이 깨달아져 하나님께 두 손 들고 눈물로 회개했다.

이제는 내 주위에 충성할 거리가 있는지 둘러본다. 그리고 걸을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백한다. 다리가 아프기 전에는 두 다리로 걷는다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아프고 보니 예쁜 구두를 신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이번에 다리가 아프면서 불순종이 얼마나 큰 죄인지, 우리에게 주신 건강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깨달았다. 깨닫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가족에게 복음의 문 서서히 열려
안송희(대학청년회 24부)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지만 우리 교회에 오기까지 예수가 누군지,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부모님도 교회는 다니셨지만, 삶에 주님을 우선으로 두는 믿음이 없었다. 그러다 3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때 교회에서 공부를 가르쳐 준다고 하여 친구를 따라 연세중앙교회에 온 것이 내 신앙생활의 큰 전환점이었다.

이어 흰돌산수양관 성회에서 은혜 받고 성령을 체험한 후 신앙생활과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새롭게 거듭난 나를 부모님께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셨다. 신앙생활에 몰두하는 나를 보고 유별나다 하고 심지어 “그 교회 이상한 교회다. 다니지 말아라” 하며 주일이면 얼굴을 붉혔다. 아버지는 연세중앙교회에 못 가게 하려고 외출금지령도 내리고, 용돈도 끊어서 집인 개봉역부터 부천 역곡에 있는 학교까지 매일 걸어 다니기도 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핍박이 심했는데, 최근 열흘 남짓한 기간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아버지 어머니 마음을 많이 어루만져 주셨다. 이제는 기도하고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을 이해해 주신다. 또 올 10월에 집이 이사를 하는데 어머니께서 “궁동 근처로 가는 것도 괜찮겠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을 많이 느낀다.

최근 어머니는 우리 교회에 잠시 들르기도 했는데, 이제껏 우리 교회라면 질색을 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참으로 큰 기도응답을 받은 것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도 뜨겁게 기도해 50일을 채우면 우리 교회에 오셔서 예배까지 드리지 않을까 기대가 크다.

30년 만성하지정맥류 기도로 나아
홍외순  집사(1여전도회)


올해 83세인데, 하지정맥류로 족히 30년은 고생했다. 젊어서 떡 장수를 하느라 무거운 짐을 이고 다녀서 그런지 항상 양쪽 무릎 아래 표피 정맥이 구불구불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심해져서 울퉁불퉁해지더니 나중엔 어른 손가락보다 더 굵어졌다. 삼십 년간 만성하지정맥류를 앓으니 다리에 피로감이 엄청나게 심했다.

늘 시리고 아픈 것은 물론이고 의자에 조금만 오래 앉아 있어도 부종이 심해 다리가 무섭게 퉁퉁 부었다. 피부색도 아예 시커멓게 착색돼서 죽은피가 잔뜩 뭉친 것처럼 보였다. 양쪽 무릎 아랫부분이 다 그 모양으로 흉측하니 남 앞에 다리를 내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십 대 이후로는 한여름에도 치마를 입어 본 기억이 없다.

우리 교회에서 ‘전 교인 40일 작정기도 그리고 10일’ 기도회가 올해로 4년째인데, 2년째 되던 해에 이적이 일어났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양쪽 다리에 울퉁불퉁 흉측하게 튀어나온 만성하지정맥류가 하나도 남김없이 싹 다 제자리로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양쪽 다리 표피가 매끈매끈한 것이 여느 노인네 다리처럼 정상으로 돌아왔다.

손가락보다 더 굵던 표피 정맥이 하나도 남김없이 싹 다 제자리로 들어갔다. 색깔도 정상적인 피부 색조를 띠고 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예전에 하지정맥류를 고치고 싶어서 병원에 가도 나이가 많아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고 했는데, 작정 기도회에 나와 기도했더니 언젠지 모르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멋지게 치료해 주신 것이다.

기도 응답은 그뿐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갑자기 오른쪽 무릎 주위로 달걀보다 조금 작은 종기가 두 개나 생겼다. 의사가 큰 병원에 가서 수술하라고 했지만, 나이 많아 수술한다는 것이 겁이 났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한 달 만에 쑥 들어가고 깨끗해졌다.

또 한 달 전쯤, 오른쪽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도 한참 고생하다가 담임목사님께 기도받았더니 다음 날 바로 씻은 듯 깨끗이 나았다. 좋은 교회 만나고 좋은 목사님 만나 항상 기도하여 하나님께 응답받고 사니, 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하고 싶어 틈만 나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며 산다. 천국 가는 그 날까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전하고 싶다.

위 글은 교회신문 <33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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