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7-23 09:24:00 ]
지난해 봄, 중국에서 한국으로 돈 벌러 나온 지 12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피땀 흘려 번 돈에 은행 융자까지 받아 한족과 조선족을 대상으로 ‘중국 식당’을 오산 지역에 개업했다. 그런데 장사가 통 안됐다. 속이 숯검정이 될 정도였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왜 이런 험한 일을 당해야 합니까?’
정춘란 성도 (18교구 1지역)
한국 생활 12년 만에 최대 위기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애원했다.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께 도움을 받아 난관을 극복하고 싶었다. 하나님은 중국에 있을 때부터 믿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만 인정할 뿐, 도대체 어떤 분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기도 응답이나 능력은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에게만 나타나는 은사로만 여겼다. 한국에 나와서는 먹고사느라고 바빠서 교회를 멀리했다. 중국 식당을 문 연 뒤에는 아예 교회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러다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자 마음속에 목사님 한 분이 떠올랐다. 평소 교회에는 가지 못해도 기독교TV 방송 설교는 자주 보다가 알게 된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님이다. 예수 이야기를 집중해서 전하는 설교를 들을 때마다 ‘오, 맞아! 천국에 가려면 정말 저렇게 살아야 해’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 목사님이 전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직접 들으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꼭 도와주시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식당 문을 닫으라니
하루는 소나기를 피하려고 오산 시장 맞은편 건물로 들어섰다가 연세중앙교회 집사를 만났다. 서울에서 오산이 어디라고 여기까지 와서 전도를 하나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오산 시장 부근에 연세중앙교회 기도처소가 있었다. 연세중앙교회에 가 보고 싶은 갈망을 내비쳤다. 그다음 주일에 함께 가자고 했다. 점심 장사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망설였으나 전도자가 강권하는 바람에 따라나섰다.
직접 서울에 가서 예배드리고 보니, TV로 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은혜로웠다.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신앙생활을 우선하라고 강력하게 말씀해 주시니까 정신이 바짝 들었다.
며칠 후, 오산지역을 담당한 교구장이 식당으로 심방을 왔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식당이 잘 되리라는 기대로 부풀어 하나님이 보낸 특사처럼 반겼다. 그런데 교구장님 입에서 나온 말은 억장을 무너지게 했다. 식당이 절대 잘 될 리가 없다며, 웬만하면 다른 장사를 하라고 했다. 반주(飯酒)라도 술을 팔면, 술을 마신 수많은 사람이 술기운으로 온갖 사고를 내고 죄를 지으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죄짓게 하는 사업장에 어떻게 복을 내리시겠느냐고 했다. 처음엔 무척 낙심이 됐다. 그러나 거듭 그런 말씀을 들으니 결심이 섰다.
‘옳은 말씀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좋은 교회로 인도해 주셨으니 이제 내 영혼이 사는 길을 선택하자.’
아버지 구원에 힘 받아
그러던 중, 친정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가 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버지는 아흔 살이신데, 예수를 믿지 않으셨다. 다행히 아버지는 병상에서 교구장이 인도하는 대로 예배드리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찬송을 부를 때는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지 귀에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들려 드렸더니 한 달 정도 설교 말씀을 듣다가 평안히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구원받아 천국 갔다는 확신이 들자 주일 낮에라도 꼭 하나님께 예배드려야겠다는 각오가 섰다. 그래서 오산 기도처에 가서 예배드리고 재빨리 돌아와 장사를 했다. 그 후 수입이 조금씩 늘자 가게를 내놓고 싶지 않았다. 한 해 더 벌어 빚을 갚고 정리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급하게 식당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온화한 성품인 남편이 갑자기 강퍅해졌다. 내가 교회에 열심을 내니 반발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주일 낮예배를 드리려고 식당 일을 도와달라고 했더니 거절했다. 토요일에 일찍 와서 도와 달라고 했지만 그마저도 싫다고 했다. 게다가 평소와 달리 신용카드를 긁어대니 내 심장이 긁히는 듯했다. 부부간에 감정대립이 극에 달했다. ‘이럴 바에는 어차피 망한 가게, 헐값이라도 넘기자’ 싶었다. 권리금을 본전도 못 받고 가게를 내놓으려니 마음이 쓰렸다. 가게를 정리한 후에도 내심 한이 맺혀 남편을 고운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남편 밉던 마음 봄눈 녹듯 사라져
식당을 정리한 후 바로 취직했다. 오후 3시 출근해 꼬박 12시간 일하고 새벽 4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교구장이 심방 오더니, ‘전 교인 50일 작정 기도회’를 시작한다며, 오전 10시에 오산 기도처에 와서 기도하라고 권면했다. “기도가 열려야 하나님과 관계가 열린다”는 말이 힘이 됐다. 5시간 눈을 부치고 피곤한 육신을 이끌고 기도하러 나갔다. 한 번도 2시간 동안 기도해 보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졸아 가며 기도 시간을 채웠다.
그렇게 매일 2시간씩 기도하니, 남편을 원망하던 마음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문득 하나님께서 남편을 도구로 쓰시어 내 믿음을 세우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지 않는 남편도 하나님께 사용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남편을 미워하던 마음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만일 식당을 정리하지 않고 지금도 장사하고 있었다면, 이 귀한 ‘50일 작정 기도회’에 참석할 수 있었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통으로 이끄시는 하나님
작정 기도회에 참석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범사에 형통한 복을 주신다’는 감동을 주셨다. 정말 하나님께서 형통으로 이끌어 주셨다.
한창 50일 작정 기도회를 진행하던 중에, 6년간 연락이 없던 전셋집 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세금을 2000만 원이나 올려 달라고 했다. 급박히 전셋집을 구해야 했다. 방 두 칸짜리로 이사해도 당장 1000만 원을 구해야 해서 간절히 기도했다. 직장에 가서 속사정을 늘어 놓았더니, 동료 분이 선뜻 1000만 원을 빌려 주겠다고 했다. 만난 지 3개월밖에 안 된 사이인데, 감사하기 그지없었다. 집을 구하는 과정에도, 바라던 대로 방 세 칸짜리 집을 시세보다 훨씬 싸게 얻었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 후로도 형통은 계속 이어졌다. 이사 나올 집에서 사는 동안, 물난리가 나서 집수리를 했다. 주인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수리할 당시에 비용을 청구하지 못했다. 이사할 무렵에야 청구했더니 줄 수 없다고 해서 오산 교우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더니 바로 다음 날, 집주인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알고 봤더니 진짜 집주인은 그 딸이었다. 그리고는 수리비를 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죄송하다고 했다. 감사의 고백이 절로 나왔다.
하나님께서 매사를 간섭해 주신다 생각하니 매우 기쁘다. 그간 25년이라는 오랜 세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저 ‘남의 하나님’이라고만 생각할 뿐, 한 번도 ‘나의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비록 세상 물질을 다 잃은 뜻밖의 길목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는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무사히 어려움을 헤쳐 나오고 있다. 세상 물질은 잃었지만 하나님을 만났으니 세상 부유를 가진 자와 비할 데 없다.
주님 오시는 그 날 들림받는 신부로 단장하리라, 가족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리라 오늘도 다짐한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로 다가간다. 나의 하나님께.
위 글은 교회신문 <34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