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12-15 19:12:27 ]
내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기쁨
기도하며 하나씩 응답받는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
지난 10월, 2년여 만에 다시 교회 옆으로 이사했다. 4월부터 시작한 ‘전 성도 50일 작정기도회’ 때 많은 기도제목을 내놓았는데 그중 엉뚱한 기도제목이 하나 있었다. 바로 교회 근처 집 구하기. ‘엉뚱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부부 수중에는 작은 평수 전셋집을 간신히 얻을 여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도할 때마다 그런 기도를 한다는 자체가 의문이었다.
‘50일 작정기도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으로 교회 근처 전세 아파트와 빌라를 알아보던 중 뜬금없이 주택 구입 가격을 알아보고 싶어졌다. 마침 우리 교회 건물 뒤편에 있는 집 한 채가 매물로 나와 있었다. 교회 근처에 집이 났다는 자체만으로 마음이 들떴다. 그런데 가격을 보니 도저히 내가 살 수 없는 가격이었다. 이내 풀이 죽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삼일예배 후 매물을 직접 확인하러 갔다. 50년 넘은 오래된 집이라 낡은 집 외관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런데도 그 집이 마음에 들었다. 단지 교회 옆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집으로 이사하면 새벽예배도 드릴 수 있고, 시간이 날 때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직 예수를 모르시는 시부모님을 교회로 모셔 올 계기가 될 듯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꿈을 꿨다. 교회 옆 어느 이층집에 내가 있었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 문고리를 잡는 순간, 어디에서 왔는지 나이 든 여자 분이 자기도 화장실에 가야 한다며 그 문고리를 놓지 않았다. 한참 실랑이했다. 그런데 내가 피아노 반주를 담당하는 헬몬찬양대원들이 나타나서 그 여자 분에게 “우리 반주자가 화장실에 먼저 다녀와야 피아노 반주를 빨리 할 수 있다”며 나를 화장실 안으로 밀어 넣어 주셨다.
참 기분 좋은 꿈이었다. 며칠 후, 신기하게도 꿈에서 실랑이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교회 옆 이층집을 두고 어느 여자 분과 그 집 매입으로 경쟁을 벌였는데 결국 내가 사게 됐다. 그 집을 발견하고 일주일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정말 꿈만 같았다. 집을 인수하는 과정도 쉽게 진행됐다.
이러한 축복된 시간 속에도 우리 부부에게는 걱정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시부모님과 겪는 갈등이었다. 교회 옆으로 이사하자 시부모님께서 좋아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으로 이렇게 좋은 보금자리를 얻었는데 기뻐하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중,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죄책감이 들었다. 결혼 전, 친정 식구들은 제사가 우상숭배라는 큰 죄악임을 성경을 통해(고린도전서 8장) 정확히 알게 되어 제사를 모두 없앴다. 하지만 결혼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남편은 예수를 믿지만, 시아버님께서 유교사상에 젖으셔서 제사를 무척 중요시 여기셨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제삿날이나 명절이면 남편과 다퉜다. 시부모님께서는 늘 성을 내셨다. 시부모님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투가 계속되었다. 참 마음이 어려운 시간이었다.
제사 문제를 두고 2년여 동안 간절히 기도하고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하나님께서 그 애절한 기도에 응답하셨는지 어느 날 남편이 시부모님께 “더는 제사 지내러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통보했다. 시부모님께서는 노발대발하셨다. 예수 심정으로 시부모님을 사랑하기보다는 무서운 반응에 그저 서운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언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나?’ 답답했다. 한편으로는 예배드리고 말씀 들을 때마다 우상숭배라는 죄악에서 우리 부부가 해방되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이 날마다 솟구쳤다.
그러던 중, 친정 여동생의 결혼이 다가왔다. 친정아버지가 시댁에 청첩장을 보내신다고 하셨다. 걱정이 앞섰다. ‘우리 부부가 노여워서 결혼식에 안 오실 텐테, 어쩌나.’
그때부터 시부모님께서 교회에서 하는 결혼식에 오셔서 결혼예배 설교 말씀을 들을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다. 친정 여동생의 결혼식이 시부모님을 전도할 귀한 기회가 되기를 기도했다.
결혼식 날, 축가 반주를 맡아 일찍부터 결혼 장소인 야고보성전에 있었다. 시부모님이 오는지 안 오는지 몰라 내심 초조했다. 그런데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부르셨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시부모님이 서 계시는 것이 아닌가? 역시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부의 기도를 저버리지 않으셨다.
아직도 우리 부부에게 화가 풀리지 않으신 시아버님을 모시고 결혼식 자리에 앉았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지만 감사의 눈물임이 틀림없었다. 시부모님을 교회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 무척 감사했다. 다시 한 번 그 하나님께 경배하며 여태까지 한 결혼식 반주 중 가장 가슴 벅찬 반주를 했다.
결혼식 후 찬양대 총무님이 시부모님을 식사자리로 안내해 우리 부부도 함께 식사를 했다. 시부모님의 표정이 많이 누그러지셨다. 식사 후에는 총무님이 시부모님께 “아드님 부부가 새로 마련한 집이니 꼭 구경하셔야죠” 하며 집구경을 권유했다. 마침내 시부모님께서 우리 집에 오셨다. 막상 예쁘게 리모델링한 집을 보시더니 화나신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귀갓길에 오르실 때는 우리 부부가 다시 시댁을 찾을 수 있게 허락하셨다.
그간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남편이 더는 제사 지내지 않겠다고 통보했을 때, 시아버님께서 ‘시댁이 감히 어떤 곳인데 제사 지내러 안 오느냐’고 버럭 호통치시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순간에 모든 일을 평화롭게 이끄셨다.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찬양드리고 싶은 순간이었다.
매일의 삶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씀처럼, 24시간 하나님과 연결의 끈을 놓지 않고 살기를 소망한다. 아직도 시댁 식구의 구원이라는 큰 과제가 남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 대신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일하고 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일하시지 않음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기도로써 깊은 관계 쌓기를 원하심을 알게 됐다. 오늘도 주님 품 안에서 한 걸음씩 발을 뗀다. 할렐루야!
/ 한정덕 집사
(헬몬찬양대 반주자)
위 글은 교회신문 <41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