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3-24 09:32:48 ]
간암 3기 등 6개월 시한부 선고로 죽음 직전까지 몰려
올해 직분자세미나 참석하여 믿음이 생기면서 건강해져
임혁수 성도(28남전도회)
2015년 1월 21일 새벽. 간암으로 간성 혼수가 왔다. 정신이 혼미했다. 간암으로 투병한 지 어느덧 3년째, 그간 호전과 재발을 오가며 생사를 넘나들었다.
처음엔 간암 3기로 수술을 받았고, 그 후 폐로 전이돼 간암.폐암 말기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나 하나님 은혜로 호전됐다. 믿음 없는 나를 하나님께서 계속 붙들어 주셨으나 급한 불만 끄고 나면 내 멋대로 살다가 마흔 넷에 죽음을 코앞에 두게 된 것이다.
간성 혼수로 동공이 풀린 채 아내가 119구급대를 부르기 전까지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속았어! 지금까지 내가 세상과 마귀역사에 속아서 살아왔어!”
원래는 건강한 편이었다. 중소기업 자동차부품 업체에서 품질팀장을 맡고 있었는데 조그만 실수가 생명과 직결되는 품질관리를 맡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럴 때마다 음주와 흡연, 유흥업소 출입으로 마음을 달랬다.
스트레스와 무질서한 삶의 결과, 내 몸은 말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3년 전 가을, 간암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이미 암세포 크기가 10cm를 넘어서 수술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자 하나님이 생각났다.
어릴 땐 교회에 다니며 꾸준히 신앙생활 했지만 취업한 후로는 교회에 발걸음을 끊었다. 그래도 신앙 양심은 남아 있었는지 술을 마시고 죄를 지을 때면 교회 십자가가 마음을 찔렀다. 사표를 내고 전도사인 고모가 소개한 지방 교회로 갔다. 새벽기도 드리며 하루하루를 하나님을 의지하며 보냈다.
15일 후, 재검진을 했더니,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암세포 크기가 1cm 정도 더 커졌는데도 오히려 수술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쓸개를 포함해 간 60% 이상을 떼어 내는 대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건강을 회복해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 되자 하나님을 까마득히 잊었다. 그 후 6개월 만에 암이 재발, 지난해 초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간에 있던 암세포가 폐까지 전이됐네요. 앞으로 6개월가량 살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충격적인 결과을 듣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평소 연락이 전혀 없던 중학교 동창에게 전화가 왔다. 20년 만이었다. 친구는 연세중앙교회에 다닌다고 했다. 아마도 내가 암에 걸렸다는 소문을 듣고 전화한 듯했다.
연세중앙교회에는 현대 첨단 의술로도 손 못 쓴다던 불치병을 고친 환자들이 많다며 교회에 한번 와보라고 했다. 믿음에 찬 말을 들으니 나도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2014년 3월경, 동창 방주현 집사의 인도로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다. 당시 간암과 폐암 말기였고 암세포가 임파선까지 전이돼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였다.
얼마 후, 교회에서 ‘40일 그리고 10일 작정 기도회’가 진행됐다. 방주현 집사는 나더러 매일 2시간씩 진행하는 기도회에 꼭 나오라고 했다. 독한 항암 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심한 부작용에 시달리던 터였다. 발에 물집이 잡혀 걸을 때마다 살갗이 찢어지니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교회에 오면 방주현 집사가 아픈 나를 위해 2시간 내내 중보기도 해 주어 매일 인천에서 서울까지 오갔다.
때마침 인천 교구 기도처가 생겨서 실내를 꾸미는 일에 충성했다. 기도하며 충성에 열을 냈더니 빠진 머리카락이 새로 나고 기력이 점점 회복됐다. 그런데 차츰 몸이 좋아지니까 하나님보다는 세상이 가슴에 들어왔다. 직장을 그만두고 마땅한 일거리가 없던 터라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노인운동 자격증을 따려 마음을 쏟다 보니 주일 오전예배만 드리게 됐다. 그러다가 점점 주일예배까지 빠지게 됐다.
2014년 연말,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다시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암세포가 약물에 내성이 생겨 더 커졌다고.....
“기존 약물은 이제 맞지 않아요. 더는 치료방법이 없어요. 실험 중인 약을 시도해 볼 수밖에....”
덜컥 겁이 났다. 이제 정말 최후의 벼랑 끝에 선 것이다. 마지막 항암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차츰 상태가 나빠지더니 배가 불룩할 정도로 복수가 차고 간성 혼수까지 왔다. 동공은 이미 풀린 상태였고, 정신이 혼미하니 화장실에서 정신 나간사람처럼 제자리를 뱅뱅 돌았다.
그때 큰 깨달음이 들었다.
‘내가 하나님 은혜로 몸이 회복될 만하면 하나님을 더 붙잡지 않고 세상 염려 근심으로 먹고살겠다고 직장으로, 자격증 취득으로 예배에 빠지다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만 하고 이젠 내 몸이 의학으로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최악의 상태가 되고 말았구나. 나를 세상 염려 근심으로 몰아넣어 하나님보다 먹고사는 일에 더 매달리게 하는 것이 악한 영의 역사구나’
“속았다. 지금까지 내가 속았어!”
혼미한 정신 상태로 화장실에서 혼잣말을 늘어놓고는 거의 정신을 잃었다.
다음 날 오전, 깨어났더니 교구장이 찾아왔다. 김종선 사모님도 전화로 기도해 주셨다. 낮에는 남전도회원 10여 명이 심방 와서 기도해 주었다. 한창 바쁠 시간인데도 내가 위험한 고비에 처하자 모든 일을 뒤로하고 한걸음에 달려와 준 회원들이 친형제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먹먹했다. 저녁에는 방주현 집사도 와서 기도해 주었다.
밤이 되니 남전도회원들이 금요구역예배차 또 우리집을 방문해 예배를 드려 주었다. 낮보다 더 많은 인원이 와서 나를 위해 눈물로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온종일 교인들과 찬송하고 예배드리니 초점 없던 눈에 힘이 들어가고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날 밤, 남전도회원들과 함께 교회에 가서 금요철야에배까지 드릴 만큼 힘이 났다.
그때서야 암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실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다음 월요일부터 흰돌산수양관 직분자세미나에 참석했다. 거기서 일생일대의 결단을 했다.
‘앞으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게요. 믿음으로 치료하겠습니다.’
세미나 기간 내내 말기암의 고통으로 한두 시간밖에 잠들지 못했다. 걸을 힘이 없어 남전도회원 한 명이 항시 곁에서 부축해 주어야만 겨우 걸음을 옮겼다. 가슴과 폐에는 통증이 계속됐다. 배에는 복수가 가득 차서 예배 시간에 앉아 있기가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휴식 시간에 교구 식구들이 다가와 나를 위해 합심 기도해 주니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고, 불룩하던 복수가 쏙 빠져나갔다.
직분자세미나 첫날만 해도 얼굴이 창백하고 새파랬는데 마지막 날에는 생기가 돌았다. 교우들의 믿음의 기도와 세세한 섬김이 병약하기만 하던 내게 생명의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예수 믿는 교우들은 세상의 한시적인 사귐과 많이 달랐다. 그들의 손길에서 주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꼈다.
한 달 전, 검사를 받으니 면역력, 백혈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몸이 점점 회복되고 있다. 건강한 몸으로 하루빨리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수없이 내게 손을 내미셨지만, 세상으로 달려가기 바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중병에 걸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연세중앙교회 믿음의 식구들을 보내셔서 나를 끊임없이 돌이키게 하셨고 결국 그분의 품에 꼭 안아주셨다.
앞으로 내 목숨은 오직 주님의 것이다. 이제 절대로 주님을 떠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사나 죽으나 오직 주를 위해 살리라 다짐한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린다.
정리 손미애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2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