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 뇌경색과 당뇨병에서 나아 外

등록날짜 [ 2016-07-11 13:25:55 ]

뇌경색과 당뇨병에서 나아
한석만 집사(6남전도회)

경상도 중소 도시에서 시계 가게를 운영하며 살았다. 6년 전, 갑자기 왼쪽 몸이 이상했다. 연필을 쥐려고 하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대로 굴러떨어졌다. 왼쪽 팔이 점점 쑤시더니 나중에는 눈물이 날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신경과 병원에 갔더니 대형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대구의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MRI 촬영 결과,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사진을 보니 뇌가 군데군데 시커멨고 더구나 목 양쪽 혈관도 막혀 있었다. 각 혈관에 콩알처럼 뭉친 부위가 보였다. 결국 뇌경색 수술을 받았다. 막힌 목 혈관도 뚫어야 했지만 의사는 만류했다.

“혈관이 M자 모양으로 꼬여 있어서 두 쪽 모두 수술하기엔 너무 위험합니다.”

결국 오른쪽 목 혈관만 수술했다. 수술을 앞두고 입원해 있던 중, 뇌경색 후유증으로 치매를 겪었다. 밤에 온 병실을 헤매고 다니며 행패를 부렸다. 간호사에게 달려들고 환자들을 못 자게 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정신없는 중에도 50년간 피워 온 담배를 찾았다. 가족의 말을 빌리면 당시 “담배를 가져오겠다”며 6층 병실 창가 쪽으로 무작정 걸어갔다고 한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가족은 ‘도저히 살 가망이 없다’고 여겼다.

서울에 사는 막내딸과 사위가 ‘죽기 전에 아버님 전도해야 한다’며 병원을 찾았다.

“아버지, 우리 목사님이 어찌나 기도 많이 하시는지 설교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암 병 환자도 나아요. 말씀 한 번 들어 보세요.”
사실, 수십 년간 예수 믿는 아내를 심하게 핍박했다. 아내는 집에서 늘 윤석전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틀어 놓았다. 실천목회연구원에 다니는 목사님 사모님께 선물받은 것이다. 그땐 윤 목사님의 쉰 목소리가 어찌나 귀에 거슬리던지. 아내에게 “저 설교 테이프 좀 꺼!”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기 일쑤였다. 또 아내가 교회 갔다 늦게 귀가하면 문을 잠가 버렸다. 아내의 눈앞에서 성경책을 찢고 불태우기도 여러 번. 술을 마신 날엔 구박을 더욱 거세게 했다. 그렇게 예수 믿는 아내를 핍박한 지 수십 년.

막내딸 부부는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내게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MP3를 들으라고 권면했다. 아내는 내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아 주었다. 예전 모습과 달리 어느덧 온순한 양이 되어 목사님 설교 말씀을 병상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목사님 설교 말씀이 마치 꿀 송이 같았다.

‘예전에는 왜 이 말씀이 안 들렸을까?’

말씀을 들을수록 희미했던 정신도 점점 또렷해졌다. 그 후, 지금까지 6년간 내 귀에선 윤 목사님 설교 말씀이 들리지 않는 날이 없다.

하나님 말씀에 새롭게 은혜받고 있을 무렵, 발뒤꿈치가 썩어 들어갔다. 19세 때 교통사고로 다친 부위인데 뇌경색으로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자 당뇨 합병증이 와서 괴사하게 된 것이다. 그 면적이 점점 커져 병원에 갔더니 뒤꿈치를 파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뒤꿈치 근육까지 끊어내야 해서 수술 후 걷기 힘들 수 있다”고 했다. 신앙심 깊은 아내는 “능력 있는 하나님이 계신데 절대 발뒤꿈치를 끊을 수 없다”며 간절히 눈물로 금식하며 기도한 후 “다른 병원에 한 번 가보자”고 했다.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을 찾았다. 놀랍게도 그 병원에서는 수술하는 대신 일주일에 한 번 치료받으러 오라고 했다. 할렐루야! 발뒤꿈치를 절단하지 않아도 된다니! 하나님께 감사했다. 뇌경색, 당뇨병도 함께 치료받기로 하고, 일주일마다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기차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에는 아내와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꽂고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었다. 1년여 시간이 흘렀다. 우리 부부는 가게를 정리하고 서울 연세중앙교회 근처로 이사했다.

이사한 날부터 ‘전 성도 저녁 기도회’에 참석해 지금껏 딱 하루를 제외하고 늘 기도했다. ‘40일 그리고 10일 작정 기도회’에는 올해로 네 번째 참석했다.

그동안 기도의 응답을 받아 무척 건강해졌다. 연필도 잡지 못했는데 이제 주먹을 쥘 수 있다. 또 팔을 들고 기도할 수도 있다. 또 고혈압약을 완전히 끊었다. 두 달 전, 뇌경색 검진받으러 갔을 때 의사는 “상태가 아주 좋아졌다”며 한 달에 한 번씩 병원 진단을 받던 것을 6개월 후에 오라고 했다. 당뇨도 정상 수치로 돌아와 지금은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는다. 썩어 들어가던 발뒤꿈치도 완전히 나아 이제 1년에 한 번씩 검사받으면 된다.

예수를 믿은 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상에 속해 살 땐, 하고 싶은 짓 다 하며 살았다. 지금은 집과 교회만 오간다. 단순한 생활 패턴이지만 지금이 더 좋다. 기도가 우선이기에 평일 저녁에는 다른 약속을 잡지 않는다. 예배드리는 날에는 일찍 교회에 가서 성경을 읽는다. 외출한 후 집에 돌아오면 성경부터 펼친다. 성경 읽기 8독째다. 밤에는 윤 목사님 설교 MP3를 틀어 놓은 채 잠든다.

무엇보다 50년 골초인 내가 담배를 끊은 일은 하나님 은혜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다. 뇌경색 수술 후에 술은 끊었지만 담배는 계속 피웠다. 아내와 자식들이 “목숨이 위험해요. 제발 금연하세요” 성화였지만, 내 힘으로는 도저히 끊을 수 없었다. 장롱 뒤, 서랍 안, 시계 약통에까지 담배를 꼭꼭 숨겨 두고 몰래 피웠다. 보건소 금연 프로그램에도 참가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담배 피우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지금은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내가 뇌경색 환자인 줄 모른다. 그저 건강한 노인으로 여긴다.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 은혜 덕분이다. 이제 건강을 완전히 되찾기 위해 기도한다. 고통 중에 있던 나를 만나 주시고 치유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올려 드린다.


기도로 무릎 통증 낫고 일자리도 얻어
이래춘 성도(6남전도회)


3년 전, 일흔두 살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동생 셋이 연세중앙교회에 다니는데 “형님이 영혼의 때에 지옥에 가 있으면 절대 안돼요”라며 교회에 오라고 강권했다. 예전부터 동생들이 “우리 남매가 함께 예수 믿으면 얼마나 좋겠어요”라며 여러 차례 전도했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들었다. 늘 술에 취해 있어서다. 뇌경색 때문에 술과 담배를 끊자 동생들의 말이 마음에 다가왔고, 그해 연세중앙교회에 출석했다.

예수의 십자가 피 공로로 구원받으면서 감사를 경험한 후, 나도 기도하는 사람이 됐다.

“죽는 날까지 일하게 해 주십시오.”

평소 제1순위 기도제목이었다. 그 기도에는 건강과 물질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간구가 담겨 있다. 올해 ‘40일 그리고 10일 작정 기도회’에 참석해 제1순위 기도제목을 간절히 부르짖었더니 건강 문제가 해결됐다.

그동안 노환 탓에 무릎이 항상 아팠다. 쿡쿡 쑤시고 걷기 불편했다. 오른쪽 무릎 통증은 더욱 심했다. 작정 기도회에서 한창 뜨겁게 기도할 무렵, 자고 일어났는데 오른쪽 무릎이 마치 뜸을 뜬 것 마냥 군데군데 새까맸다. 그 후 전혀 아프지 않았다. 주님께서 고쳐 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지난해 작정 기도회에서는 물질 문제를 응답받았다. 당시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무릎 통증 탓에 걸어 다니기 수월치 않아 차가 꼭 필요했다. 기도하던 중, 직장 팀장이 연비가 적게 드는 LPG 중고차량을 소개해 줘서 시중가보다 무척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했다. 너무 기뻐 휴대폰에 이 내용을 기록해 두었다. ‘주님께서 사 주신 차량.’

내 나이에 일자리 얻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님 은혜로 직장에 다니며 활기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 목동에 있던 직장이 올해 교회 근처로 이전하면서 신앙생활 하기에 더욱 편해졌다. 새벽예배를 드린 후 출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앙생활 잘할 환경을 열어 주신 주님께 감사한다.

지난해부터 작정 기도회에 참석했고, 전도도 하게 됐다. 믿음이 점점 성장하면서 올해는 매주 토요일 노방전도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주일에는 근처 지하철역에서 교회 안내 충성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다.

앞으로 마음 다해 전도하며 살리라 다짐한다. 기도해서 온갖 문제를 주님께 아뢰고, 그 응답을 하나하나 체험하면서 주님 은혜 속에서 살고 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린다.


거리가 아무리 멀다 한들...
나현정 성도(새가족여전도회)

주일 새벽 4시 30분, 서울로 예배드리러 가려고 벌떡 일어나 서둘러 준비한다. 두 아이를 깨우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오후에 가족이 먹을 도시락까지 싼다. 5시 30분. 전라북도에서 출발해 충청남도에 들러 친정어머니를 태우고 드디어 서울을 향해 달린다.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하는 1부 예배를 드려야 하니 마음이 몹시 바쁘다. 길게 뻗은 고속도로를 설레고 기쁜 맘으로 운전하면, 저 멀리 말갛게 동이 터 온다.

‘주님, 저를 어찌 그리 예뻐하셔서 이렇게 성령 충만한 교회를 만나 생명을 얻게 하십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매주 새벽길을 달린 지 어느덧 1년 반이 흘렀다.

5년 전, 흰돌산수양관 동계성회에 참석해 큰 은혜를 받은 친정언니는 나를 위해 기도한다면서 CD 한 장을 건넸다. 윤석전 목사님 설교 말씀 CD였다.

시큰둥하다가 어느 날, 운전하면서 언니가 건넨 CD 설교 말씀을 들어봤다. 점점 설교 말씀에 빠져들었고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강조하시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연거푸 외쳐 댔다.

“주님, 살려 주세요! 주님, 살려 주세요!”

인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에 찌들어 살며 내 틀 안에 주님을 끼워 맞추고 내 위주로 살아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그날부터 연세중앙교회 홈페이지에서  계속 말씀을 듣고 삼일예배와 금요철야예배 때마다 위성 방송으로 설교 말씀을 들었다. 2년 전에는 연세중앙교회 하계성회에 참석했다. 내 평생 그렇게 뜨거운 회개의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없다.

그 후 주일이면 전라북도에서 서울시 구로구 궁동 연세중앙교회까지 왔다. 예배를 사모하는 열정은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오직 나와 내 가족의 영혼이 살아야 하기에 멀거나 가깝거나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다.

매주 먼 길을 오가느라 많이 피곤할 텐데도 은혜의 대열에 함께해 주는 중등부인 자녀 둘, 서울행을 허락해 준 남편이 너무나 고맙다. 멀리 지방에서 매주일 한 번 교회를 오다 보니 주중에 열리는 성회나 교회 행사에 참여 못할 때가 있어 교회 근처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예전에는 세상일을 즐겼다. 맛난 것 사 먹고 예쁜 옷 사 입고 부담 없이 즐겼던 생활이 요즘은 흥미가 없다. 윤석전 담임목사님이 옷 한 벌로 목회하시는 검소한 생활과 주님 앞에 진실하려고 애쓰는 모습에 그동안 예쁜 옷을 사 모으며 좋아하던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겉치장에 열심이던 내가 이제는 영적인 치장에 더 열심을 내는 것은 분명 주님의 은혜다. 내 아이들이 예수님을 뜨겁게 만나 신실하게 신앙생활 하고, 남편도 예수 믿고 예배를 사모하여 함께 새벽길을 달릴 그 날이 속히 오길 기도한다. 주일 새벽녘 고속도로를  막힘 없이 시원하게 내달리듯 온 가족이 주님께로 시원하게 씽씽 달려가길 원한다. 주님을 향한 열정이 절대 변하지 않고 주님을 향한 감사의 눈물이 마르지 않기를 기도한다.


죽음 직전 남동생 기도로 회복
박춘매 성도(새가족여전도회)

“수술할 수 없는 위치이고 수일 내로 죽거나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허위허위 달려 내려간 대전 병원 의사의 야속한 말이었다.

올 1월, 남동생이 작업 현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평소 성실하고 법 없이도 살 만큼 착하고 남 배려할 줄도 아는 동생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큰 충격이었다. 사고가 나자 지인들에게 연락했고, 많은 이가 함께 기도해 주었다.

“숨 붙어 있는 게 기적입니다. 다른 것은 바라지 마세요.”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긴 후 만난 의사의 말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님께 무릎 꿇었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남편은 “하나님께 믿음을 갖고 기도해서 살려 보자”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남편의 결단으로 우리 부부는 중국에서부터 말씀에 은혜받던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고, 중환자실 면회 시간마다 남동생을 찾아가 눈물로 기도했다. 새가족여전도회 부.차장님이 함께 병문안을  해 주고 믿음의 말로 권면해 주었다. 믿노라 했지만 믿음이 없던 남동생이 “아멘, 아멘” 하며 화답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병실에 남동생과 똑같이 뇌출혈로 쓰러진 젊은 남자가 있었다. 동생이 오기 1년 전부터 입원했다는 그는 동생과 마찬가지로 호흡기를 끼고, 사람을 전혀 못 알아보고, 수술조차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기도와 심방이 계속 이어지자 사람 구실 못 할 것이라던 남동생은 의식이 돌아오고 뜨지 못했던 왼쪽 눈도 뜨는 등 상태가 호전됐다. 먼저 입원해 있던 환자와 너무나도 비교되게 남동생은 나날이 좋아졌다. 점차 걸을 수도 있었다.

‘내가 하나님을 몰랐더라면 어쩌면 남동생이 저 모습이었을 텐데….’

건강을 되찾는 남동생의 모습을 보자 결국 그 환자의 아내도 하나님을 인정하게 됐다. 비록 사고를 통해서였지만 우리 부부를 연세중앙교회로 인도하시고, 세상에서 방황하다 불의의 사고로 지옥 갈 뻔한 남동생을 살려 주신 주님께 감사한다. 남동생은 지금 병원에서 재활하고 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기에 오늘도 웃을 수 있다.      


/동해경 손미애 정성남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8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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