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초청 예수사랑큰잔치 기획 간증]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外

등록날짜 [ 2016-10-26 15:14:00 ]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이웅수 집사(KBS 보도국 기자, '영혼의 때를 위하여' 논설위원)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12:1)


대학 시절 동서양 넘나드는 철학 수업에 신앙 회의감 들어 방황
좀 더 일찍 돌아왔다면…
청년의 때 신앙생활은 최고의 행복


대학 1학년 때 교양 과목 '인간' 수업에서 받은 충격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이름을 떨치던 교수님의 노장사상 강의는 지방에서 갓 올라온 신입생에게 소름 돋는 전율을 안겨 주었다. 자연 만물과 인생의 이치를 설명하는 노장사상뿐만 아니라 동서양 철학과 역사를 넘나드는 강의는 해박하다는 말로는 이루 다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칸트와 헤겔을 이야기하고 그러다 우리나라 실학사상까지 유학자처럼 설명할 때는 현란하고 어지러웠다. 차원이 다른 강의를 세계적 석학에게 배운다는 생각에 자부심이 절로 들었다.

한 학기 동안 강의를 들으면서 기독교 신앙에 강한 회의가 들었다. 돌이켜 보니 동서양의 심오한 철학 앞에 기독교 신앙과 교리는 너무 단순하고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성경의 계명들은 나를 옥죄는 굴레이자 속박이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는 말씀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 말라는 말씀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자유할 수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 스스로 발전하고 성숙해지려면 기독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나아가 기독교는 이해를 돕는 자세한 설명도 없으면서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을 강요해 사람을 힘들게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싶은 분위기와 맞물려 더 확고해졌다. 기독교 신앙은 고등학교 때까지라고 말이다.

이때 받은 지적 충격은 내 신앙과 사고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인생에서 중대하고 어려운 고비가 닥칠 때마다 하나님을 찾아보려 했지만 곧 의심과 회의가 뒤따랐고 세상과 교회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하려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고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면 저주가 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불안감과 의무감으로 교회를 다녔다.

교회 밖에서는 교회 다닌다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 식사기도는 절대 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신을 나약한 인간이 의지하려고 만든 관념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 나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겉은 교회 다니지만 속은 세상 법칙이 지배해서 누군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면 반드시 비슷한 정도로 되갚아 주려 했다. 겉은 예의 바르지만 본심은 내 이익만은 철저히 확보하고 지키려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이기심과 경쟁의식으로 더욱 각박해졌고 몸은 피곤과 술, 담배로 망가졌다.

이런 때에 연세중앙교회에 다니게 됐다. 아는 목사님의 강력한 추천답게 첫 시간부터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이곳에서 내가 살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 많은 성도중에 목사님이 내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은 설교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미 생각이 세속에 푹 젖은 터라 수용하기 어려운 말씀도 있었지만 성경대로 하시는 말씀이니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스스로 쌓아 온 나름의 논리와 사고체계를 벗어던지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생각을 바꾸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다 크게 혼난 적도 있었다. 10여 년 전 하나님께서 술을 끊어 주셨는데 이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다시 술을 입에 댔다가 발목이 부러졌다. 60일간 병가를 내고 쉬던 중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을 근본부터 바꿔 놓으셨다. 혼자 방 안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생각 속에서 강력한 질문을 하셨다.

첫 질문은 "네가 그리스도인이냐"였다.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대답하면 주일뿐 아니라 평일도 주일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속적 그리스도인이 하는 이중생활을 포기하라는 말씀이었다. 난감했다.

둘째 질문은 "네 삶의 기준이 나냐, 사람이냐"였다. 이 역시 어려운 질문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기준으로 살면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을까 걱정스러웠다. 기독교 환자 취급을 당하면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위하여 사람들한테 매 맞고 침 뱉음 당하고 십자가에 죽을 때까지 극한의 고통과 수치를 당했는데 네가 체면 때문에 내 말대로 살 수 없다면 나는 너와 관계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결단하고 기도했다. "하나님 앞으로 술 안 마실 테니 남은 인생 책임져 주세요." 그리고는 비난과 수치를 각오하고 회사에 나가 술 안 마시겠다고 선포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내 우려와 달리 정반대로 좋은 일이 많았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느라 어려운 일도 닥쳤지만 하나님께서 항상 선으로 마무리해 주셨다.

하나님은 이런 과정을 거치게 하면서 대학 시절 내 생각에 강력히 침투한 세상 철학과 논리를 제거해 주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라는 말씀은 이제 떠올릴 때마다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이 말씀을 뼛속 깊이 믿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늘나라는 말이나 논리가 아니라 나와 세상을 바꾸는 능력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나약하니 신을 의지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담대해지고 강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방황에서 돌아오는 데 20년이 걸렸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연세중앙교회 성도들과 충성스러운 젊은이들을 바라보면 난 아직도 너무 세속적이다.

그러면서 나는 왜 젊은 시절에 이런 믿음을 갖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연세중앙교회 젊은이들을 보면서 저들은 얼마나 좋은 기회를 손에 쥐고 있나 생각한다. 전 세계 젊은이 가운데 이렇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꼽아 보면 선택받은 극소수가 아닐 수 없다.



주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윤세영 자매(충성된청년회)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자
선데이 크리스천 생활 청산하고
만성호흡곤란 고침 받아


"예수쟁이가 되고 싶어요. 180도 달라진 주님의 자녀가 되고 싶어요."

모태부터 늘 교회에 속해 있었지만, 미지근하게 신앙생활 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지난 8월 흰돌산수양관 청년성회에 처음 참석했다.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 변화되고 싶어 마음을 쏟아 말씀을 들었다.

"세상에 행복은 없다"는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얼마 전부터 여실히 체험한 바였다. 몇 달 전까지 글로벌 100위 안에 드는 외국계 회사에 다녔다. 회사에서 인정받던 터라 탄탄한 앞날을 자부했다. 그런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도 많았다. 그렇게 늘 업무에 치여 내 영혼 죽는 줄도 모르고 3년간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살았다.

그런데 흰돌산수양관 여름 성회를 앞두고 주님께서는 주님만의 방법으로 회사에서 나오게 하셨다. 어머니의 중보기도 덕분이었을까. 주님께서도 내가 이렇게 살다가 결국 지옥 가는 꼴을 두고 보실 수 없으셨나 보다. 오랜만에 성회에 참석해 하나님 말씀 듣고 기도하다가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울만 좋고 내 영혼에는 유익 없는 회사에서 퇴사하게 하신 주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동안 주님을 모른 채 살았던 것을 뜨겁게 회개했다. 주님 앞에 한없이 겸손해지면서 쓸데없이 내세우던 자존심도 사라졌다. 이렇게 주님만으로 기쁜 것을 왜 그리 교만하게 주를 멀리하며 살아왔던가. 이제 주의 일이라면 묵묵히 순종하고 따르리라 마음먹었다.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며 살고 싶다. 나 스스로 '그래! 결심했어!'라고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닌 줄 알기에 성령께서 붙들어 달라고 계속 기도한다.

한 가지 더 간증할 것이 있다. 2013년부터 내리 4년간 장마철마다 원인 모를 호흡곤란증이 생겨 고통받았다. 기도(氣道)가 갑작스럽게 부어 숨이 막혔다. 마치 물에 빠졌을 때 호흡할 수 없어 허우적대는 증상과 비슷했다. 지난주에는 호흡곤란이 심해져 집에서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하계성회를 마칠 즈음 문득 '고침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성회 기간에 이어 주일까지 장마철이라 무척 습하고 더웠지만, 호흡 곤란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병을 고쳐 달라고 수년째 기도했다. 이번 성회에서 주님을 경험하고 믿음을 갖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 것이다. 이제 숨 쉬는 데 어려움이 없다. 청년회에서 "저, 고침받은 여자예요"라며 간증하고 다닌다. 할렐루야!




노년에 찾아온 설렘

심재완 성도(새가족남전도회)


평생 불공 쌓으며 예수 모른 채 살았지만
황혼에 참된 진리 만나 구원의 기쁨 누려


2년 전 10월, 교회에 첫발을 디뎌 지금까지 아내와 교회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아들 가족이 우리 부부의 구원을 위해 애타게 복음 전하고 기도한 영혼 사랑의 결과다.

물론 교회 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공덕을 쌓으려고 평생 절에 다닌 데다, 예수 믿는 형님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왕래를 끊고 살 정도로 강퍅했다.

하지만 팔십을 바라볼 만큼 나이가 들자 자식의 뜻을 따르는 것이 옳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들 부부를 신뢰하고 깊이 공감하면서 용단을 내린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진 이때, 교회에 와서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어 보니 참으로 진리를 전하는 주의 종임을 알 수 있었다. 부모 자식 사이의 질서마저 무너져 가는 세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 회복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목자를 만난 것이 천만다행이다.

예수 믿고 우리 부부는 달라졌다. 매일 우리 주님만 찾는다. 아내는 기도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울먹거리고, 눈물을 왈칵 쏟기도 한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모습이다. 이제 우리 부부는 남은 생애를 주님께 전적으로 맡기기로 결심했다.

요즘 우리 부부는 집에서 버스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일산기도처를 매일 오간다. 방광 기능 저하와 녹내장, 백내장이 겹쳐 수술도 할 수 없는 아내의 지병을 치료하려면 기도가 다급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님께서 역사하셔서 지난해 12월, 사모님께서 안수기도를 해 주신 후 꾸준히 기도해 5월 초에 한 병원 검사에서 병이 더는 진행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나도 고혈압 약을 오랫동안 복용했지만, 나아지리라는 믿음이 생기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는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 힘으로 주일을 보낸다. 아침 7시 40분이면 성전에 도착한다. 1, 2부 예배를 모두 참석하고 새신자실 모임을 마치면 어느덧 저녁예배 시간이 다가온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전 성도 기도회에 참석한다. 밤 9시가 지나 일산행 교회버스에 몸을 싣고 주일을 마감한다. 성령이 일하시는 현장에서 주님을 사모하는 순수한 믿음으로 아내와 끝까지 신앙생활에 승리하리라 다짐한다. 이 모든 일은 주님이 하셨다.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주님께 올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50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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