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7-19 13:23:14 ]
2년 전, 교통사고로 세 차례 수술받았다.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이 얼마나 큰지 “악” 소리가 절로 났다. 마약성 진통제로 근근이 버티면서 죽지 못해 살았다.
‘차라리 죽어 버릴까. 죽으면 고통도 끝이겠지.’
수없이 자살 유혹이 밀려왔다. 등을 바닥에 대지 못하고 5~10분을 잠들다 깨기를 수개월. 지옥 같은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칠 때, 어느 목사님이 연세중앙교회를 소개했다.
“의학이 못 고치는 통증에서 해방될 길이 있습니다. 연세중앙교회에 가 보세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주일을 기다려 연세중앙교회를 찾아갔다. 기독교 TV에서 여러 차례 들었던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를 현장에서 들으니 은혜와 감동이 훨씬 더했다. 그다음 주일에 수원흰돌산수양관에서 중·고등부 성회가 열린다고 하기에 아들을 설득해 참석했다. 성회 이틀째부터 진통제를 끊고 오직 주님께 살려 달라고 매달렸다.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며 나 위해 채찍에 맞아 피 흘리신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이 치료해 주실 때를 기다렸다. 통증 탓에 제대로 잠을 못 이루고 꼬박 앉아서 버텼다. 성회 이틀째 밤, 갑자기 피곤이 밀려와 혼곤히 잠들었다. 자다 깨어 아픈 부위 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 주님이 고치셨구나!’
아들도 성회 기간 내내 자기 죄를 깨닫고 펑펑 울고 회개하여 딴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 모자는 성회를 계기로 ‘내가 살 곳은 바로 이곳’이라 여겼다. 딸도 청년·대학연합 성회에 참석해 예수를 만나고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다.
가정 폭력에 울부짖던 나날들
사실 우리 가정에는 말 못할 사연이 있다. 술주정뱅이 남편과 그의 폭력. 자식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에게 구박과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내가 교회에 다닌다는 것이 남편이 폭력을 휘두른 이유였다. 나는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고 또 맞았다. 자식들이 울며 지켜보는 가운데 욕설로 시작해 폭력으로 끝나는 하루하루가 계속됐다. 집안은 늘 살얼음판이었다.
어느 날, 하루가 멀다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지켜보던 중학생 아들에게서 살기등등한 모습이 보였다. 소름 끼쳤다. TV에서 본 무서운 일이 우리 집에서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어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죽을 용기를 내서 결혼 22년 만에 처음 남편에게 오열하며 소리쳤다. “당신, 이 집에서 나가!”
내심 충격을 받았는지 남편은 집을 나갔다. 곧 전세 계약이 끝났고 우리 세 식구는 이사했다. 남편은 수시로 이사한 집에 흉기를 들고 찾아와 위협했다. 언제 남편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움츠리며 6~7년을 살았다. 하지만 남편을 위한 기도는 멈출 수 없었다. 남편도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과 학대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 그저 불쌍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다가 1년째 남편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남편의 폭력과 위협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평안한 나날을 보냈지만, 한편으론 궁금했다.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철이 든 자식들도 이제는 “아빠가 지옥 가면 안 돼, 아빠를 찾아서 복음 전해야 해”라며 소식을 알 수 없는 아버지를 위해 늘 눈물로 기도했다.
수소문 끝에 남편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막상 남편을 만나자 우리 세 식구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너무나도 남루한 옷차림에 새까만 얼굴, 초라하고도 바짝 마른 모습…. 포악하고 무섭던 예전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깡마른 몸에 병색이 완연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남편에게 슬그머니 복음을 전했다. 신기하게도 남편은 잠잠히 듣고 있었다. 헤어지기 전에 남편에게 기도 제목을 물어보았다. 남편은 “나, 죽을 때 무서워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 줘”라고 말했다.
거처를 알려 주지 않고, 뜻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하기에 “당신이 왜 죽어?”라며 화를 냈지만, 찜찜한 마음을 지닌 채 헤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남편 이름을 대며 상황이 심각하니 빨리 오라고 했다. 병원에 달려가 보니 남편은 이미 시체와 다름없는 상태였다. 병명은 간암말기. 의사는 ‘회생불가’라고 했다. 급히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아들은 자기 간을 이식해서라도 아버지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이미 장기가 다 녹아내려서 손쓸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은 간성혼수상태로 중환자실로 갔다. ‘이대로 지옥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특실로 옮겨 달라고 했다. 이 땅에서 남편의 마지막 길에 평생 못했던 예배와 기도를 마음껏 함께하고 싶어서였다. 낮에는 교회 직분자들이 수시로 찾아와 예배드리며 기도해 주었고, 밤에는 우리 세 식구가 그 곁을 지켰다. 남편이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까지 ‘예수 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계속 복음을 전했다. 낮이고 밤이고 가족 모두 잠 안 자고 보혈 찬양을 불렀다. 1초도 쉬지 않고 연속 7시간 계속 십자가 보혈을 찬양하기도 했다. 아무리 찬양해도 지치지 않는 힘을 주님이 주셔서 우리 세 식구는 오직 믿음으로, 예수 피 공로로 남편의 영혼을 지켰다.
남편이 혼수상태에서 벗어나 잠깐 정신을 차렸다. 간절하게 복음을 전하자 남편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아멘” “아멘” 화답했다.
“당신 이제 천국 가도 돼. 고통 없는 곳으로 가.”
남편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좋다. 천국 너무 좋다. 예수님이 빨리 오라고 하시는데 내가 가족하고 조금만 더 있다가 간다고 했어.”
그러다가 갑자기 돌변해 무섭게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남편 속에 있던 악한 영이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그렇게 시시때때로 변하는 남편의 표정을 바라보며 재빨리 예수님의 십자가 피 공로를 부여잡고 남편을 위해 예수 이름으로 강력히 악한 영을 내쫓는 기도를 했다. 이런 영적 싸움이 1주일간 지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환하고 평안한 웃음을 띠면서 “예수 피, 예수 피”라는 확실한 고백을 남기며 숨을 거두었다.
예수로 행복한 우리 가정
이후 남편 지인들을 전도했다. 지인들은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한 남편의 행적을 들려주었다. 남편은 1년 전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예수를 영접했고, 지난 55년간의 과오를 회개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단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족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고 여겨 지난 1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라고….
자식들은 제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영적 세계를 목도하는 값진 체험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과 위협 탓에 증오심과 분노로 응어리진 상처는 천국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풀어지고 치유됐다.
요즘 딸은 교도관을 꿈꾸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세상에서 죄짓고 그 죗값만큼 교도소에서 살면 그만일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진정 죄를 씻는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임을 알려 주고, 예수로 구원받게 하고 싶어서란다. 우리 가정에 예수 믿는 복을 주신 주님께 감사한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린다.
/동해경 기자
박신자 집사(6교구)
위 글은 교회신문 <53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