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3-28 11:42:32 ]
20년 전 남동생 권면에 따라나섰다 예수 만나
대전 오가면서 남매가 은혜받고 핍박도 견뎌
주말엔 지낼 곳 제공해준 교회 친구에 감사
친정부모님 예수 영접 감사, 지인들 위해 기도
하루는 한 살 터울 남동생이 내게 간곡히 말했다. “누나, 예수님을 만나면 삶이 바뀌어.” “나랑 같이 연세중앙교회 가볼래?” 눈빛을 반짝이며 호소하던 동생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모태신앙인데도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하던 때라 동생의 말을 듣는 순간 귀가 솔깃했다. ‘나 같은 사람도 예수님이 만나주신다고? 만약 예수님이 진짜 계신다면 꼭 만나보고 싶다.’
그 주부터 매주일 서울에 와 연세중앙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얼마 후, 나를 구원하시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뜨겁게 만났다. 서울에 올 때면 금요일부터 주일 저녁예배를 마칠 때까지 지낼 곳이 필요했는데, 당시 늘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잠재워주고 음식도 대접해준 교회 친구가 있었다. 이경임 자매다. 친구와 그 가족의 섬김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당시 연세중앙교회는 노량진에 있었다. 그 성전 건물도 꽤 컸는데, 워낙 성도가 많아 성전 안은 늘 북적거렸다. 주일이면 전 성도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된장국이 어찌나 구수하고 시원하던지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입에 군침부터 돈다. 성도가 많아 식당 테이블에 다 앉을 수 없어 교회 마당 야외 식탁이나 성전 담 위에 식판을 놓고 엉거주춤 서서 밥을 먹기도 했다. 여름철에 비가 오면 빗물이 반찬과 국물에 떨어지는데도 조금도 거리낌 없이 환하게 웃으면서 식사하곤 했다. 설교 말씀을 통해 받은 은혜가 컸기에 그런 불편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중 매일철야예배를 드리지 못했기에 금요철야예배와 주일예배만큼은 사모하며 드렸다. 당시엔 담임목사님께서 강단에 오르시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라디아서 2:20 말씀을 가사로 한 찬양을 부른 후 말씀을 전하셨는데, 찬양부터 은혜가 밀려와서 가슴이 벅찼다. 지금도 그 찬양을 들으면 눈물이 쏟아진다.
그 외에도 기억나는 일이 참 많다. 서울행 기차를 놓쳐서 펑펑 운 적도 있다.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던 남동생이 제사상 앞에서 친척들에게 “이제 제사지내지 않겠어요”라고 강경하게 말하다 아버지에게 심하게 매 맞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풍성한 은혜로 우리 남매를 위로하셨다. 동생과 나는 믿음의 의기가 꺾이지 않고 가족 구원을 위해 목이 터져라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셨다. 내가 연세중앙교회에 온 지 15년 될 즈음, 여름성회에 친정 부모님이 나란히 참가하셨다. 교회와 목사님을 싸잡아 욕하면서 “절대로 예수 안 믿는다!”고 호언장담하던 아버지가 예수 믿기로 결신하셨다. 할렐루야! 또 지난해 내 결혼 예배 때는 친척과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께 찬송하며 예배드렸다. 언젠가 그들도 모두 예수 믿기를 기도한다.
지난해까지 청년회에서 회원을 섬기다 여전도회로 배속됐다. 먼 거리를 오가면서 교회를 다니는 새가족 회원을 볼 때마다 애틋하다. 교회에 정착하기까지 낯설어하는 점을 다소나마 덜어주고 싶어 새가족과 일부러 대화를 많이 한다. 무엇보다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이 모든 일을 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이수진 기자
박수진 성도(81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66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