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그 날’ 출연자 소감] 애타는 목자의 심정 전하려고 애써 外

등록날짜 [ 2023-02-01 09:53:48 ]

지난 1월 22일(주일) ‘청년대학연합 동계성회와 함께하는 설날축복대성회’ 기간에 올려 드린 뮤지컬 ‘그 날’은 전도초청잔치로도 진행돼 성도석은 초청자들로 만원을 이뤘다. 뮤지컬을 제작하느라 두 달 동안 충성한 주연 배우들의 소감을 전한다.



애타는 목자의 심정 전하려고 애써


| 강태일(정 목사 역)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각종 문화사역이 중단되고 어두운 영적 침체기를 겪다가 3년 만에 하나님께 뮤지컬 작품을 올려 드리게 되어 주님 앞에 송구스러움, 충성하는 기쁨과 감사 등 정말 만감이 교차하는 두 달간이었다. 3년이라는 공백을 생각했을 때 준비하기 어려울 듯했지만, 하나님과 담임목사님 그리고 연세가족들 모두 간절히 바란 작품이었고 주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로 감사하며 뮤지컬을 준비할 수 있었다.


정 목사 역을 맡은 후 큰 숙제가 생겼다. ‘평신도인 내가 어떻게 성도들을 향한 목자의 애타는 심정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고심하고 기도하던 끝에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며 가까이에서 보아 온 담임목사님의 모습과 받아 온 사랑이 그 해답이었다. 은신처 장면에서 당면한 고통과 괴로움 앞에 신앙의 뿌리가 흔들리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고 맨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며 회개하던 장면은 지난날 담임목사님께서 전 성도 앞에 무릎 꿇고 모든 것이 부족한 당신의 잘못이라며 눈물을 펑펑 흘리시던 모습을 떠올리며 그대로 재현하려고 했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도 담임목사님께서 극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대사와 연기를 세심하게 수정해 주시는 것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대사가 있거나, 성경 말씀에 입각한 대사를 할 수 있도록 거듭 수정해 주시는 모습을 보며 설령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관람한다고 할지라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작품을 만들어 내고자 하시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 대사, 연기, 조명, 영상, 댄스 등 이 수많은 부분에 팀 내 그 어떤 사람보다 수준 높은 작품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식견과 연출력이 나타난 것을 보며 정말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혜와 지식과 능력은 세상의 그 어떤 학문과 문명과도 견줄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뮤지컬 출연과 연출을 동시에 하면서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와 기도 응답을 많이 볼 수 있었고,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며 흘린 땀과 피로 맺어진 결실의 피날레를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하고 목격한 자로서 매우 감개무량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올려 드릴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다.




무대에서도 주님께 신앙 고백 올려 드려


| 육마리아(에스더 역)


지난 2009년 초연 이후 15년 동안 ‘그 날’ 작품을 올려 드리도록 써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처음 에스더 역을 맡았을 때나 지금이나 새롭고 긴장되는 것은 똑같다. 정말 내 힘으로 하는 게 하나도 없기에 매번 새로운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게 된다. 에스더 역할을 맡으면서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게 되니 ‘그 날’은 내 영적생활에도 큰 유익을 주는 작품이다.


극 중 동생인 태수와 대립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이성적인 이유로 누나에게 따지는 태수에게 들림받을 준비가 다급하다고 말해 봤자 그저 똑같은 잔소리가 되어 버리기에 에스더는 마음만 늘 답답하다. 이런 문제와 부대낌이 예수 믿는 가정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라 마음이 더 먹먹했다. 또 에스더가 죽기 직전 “날 위해 살 찢고 피 흘려 죽어 주신 예수님을 내가 어떻게 배신해!”라는 대사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주를 배신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며 에스더의 대사가 아닌 육마리아 ‘나의 고백’이 되고 싶어서 더 진실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연습 기간, 담임목사님께서 연약한 육신으로도 극을 더 은혜롭게 만들어 주시려고 마음 써 주심이 감사하다. 장시간 연습에 동참하시는 목사님 모습을 보며 자꾸 눈시울이 붉어졌다. 주님 심정을 더 잘 전달하려는 목사님의 뜻을 헤아려 팀원들도 힘을 내서 수정해 주신 부분을 계속 확인해 가며 한 대사, 한 장면이라도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마음을 다했다.


청년의 때와 달리 어린 자녀를 돌보고 남편도 챙기면서 뮤지컬 작품을 준비하려니 분주한 일상을 보내야 했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하루를 시작하기도 하고, 부족한 기도 시간과 바닥난 체력 탓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과 자녀가 있었기에, 그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기에 더 힘을 내서 작품을 준비할 수 있었다.


공연 막바지 리허설 때 “이제부터 이후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며 피날레 송을 부르는데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죽으면 천국이요, 영원한 복을 누리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금세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주님이 주시는 큰 위로로 무대까지 설 수 있었다. 공연 당일에도 ‘예수 믿는 자로서 나는 원수 마귀와 싸우는 자’라는 것을 깨달으며 내게 주어진 1분 1초가 마귀와 벌이는 싸움터이며 기를 쓰고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뮤지컬을 계기 삼아 영적전쟁에서 끝까지 싸워 이길 능력을 주시고, 영혼 살리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 모든 일은 주님이 하셨습니다


| 이승규(태수 역)


‘그 날’ 팀을 사용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린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부의 믿음을 준비하자는 메시지와 함께 작품을 준비하면서 내 신앙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매번 하나님께서 성극을 통해 전해 주시는 뜻이 있는데 ‘그 날’에 출연하면서는 “나는 지금 신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끝없이 자문했다. 준비되지 못한 내 모습을 발견하고 작품을 준비하면서 신부의 믿음도 만들어 가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개인적으로 누나 에스더와 대립하는 장면에 마음을 많이 쏟았다. “우리 가족이 죽어라 예수 잘 믿으면 뭐 해? 지금 사는 게 지옥 같은데!” 태수의 생각과 마음을 가장 잘 보여 준 대사일 것이다. 태수는 현실에서 항상 혼란스러웠다. 어릴 적부터 들어 온 성경 말씀과 반대로 힘든 현실과 육신의 소욕이 마음에 계속 부딪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 한편으로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 엄마와 누나의 믿음이 너무도 부러웠다.


태수의 모든 말은 어쩌면 하나님께 쏟아내는 원망 섞인 한탄이었을 것이다. 태수를 연기하면서 떠올린 감정은 분노가 아닌 불쌍함이었다. ‘나 좀 봐 달라’고 어린아이처럼 소리쳤던 것 같다. 태수로 산 지난 두 달간 끝없이 되물었다. ‘이 아이가 과연 그토록 바라고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질문의 끝에는 항상 가족이 있었다. 사랑, 질투, 열등감, 소외감, 상실 등 모든 감정과 함께 차갑기만 한 세상을 버텨 내는 태수의 발버둥과 언젠가 반드시 우리 가족에게도 행복이 찾아오리라는 막연한 믿음. 하지만 자신의 노력과 믿음이 꿈같은 것임을, 그리고 예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오해했을 때 찾아오는 허무와 상실 앞에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던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


뮤지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허리를 다쳐 일상에서도 무척 힘들었다. 숨쉬기가 어렵고 잠을 잘 때도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새벽기도 중에 마음 가운데 강한 믿음이 생기면서 두려움은 사라지고 언제나 그랬듯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믿음으로 몸을 이끌고 연습 장소에 가서 연습하면서 감사하고 또 기뻤다. 지금의 이 고난과 핍박이 주를 위한 일이기에, 또 그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공연 전날까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지만 기도와 믿음으로 나아갔고 공연 시작 2시간 전 몸이 무척 가벼워짐을 느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하셨다. 이 은혜의 경험은 평생 기억될 것 같다. 복된 작품에 써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사진설명> 뮤지컬 ‘그 날’은 ‘예수를 부인하라’는 회유와 혹독한 고문에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정 목사와 신앙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사진설명> 뮤지컬 ‘그 날’ 극 피날레에서 전 출연진이 주제곡 ‘지져스 커밍 데이’에 맞춰 화려한 군무를 선보이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8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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