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환난 중에도 소망으로 즐거워하나니 外

등록날짜 [ 2023-02-23 10:13:27 ]


연세가족들은 영적생활 잘할 것을 당부하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교회와 나라를 위해 정한 시간에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 또 설교 말씀을 듣고 은혜받은 점, 응답 받은 기도 제목, 담임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간증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리고 있다. 연세가족들의 간증을 소개한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소망으로 즐거워하나니



| 원미숙(62여전도회)


청년 시절부터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다. 성령 충만한 믿음생활은 아니었지만 우상숭배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를 짓는 일인가는 성경 말씀을 통해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결혼까지 약속하게 되었다. 남편 집안이 우상숭배 하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나는 결혼하기 전 남편에게 확실하게 다짐을 받았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제사에 참석하지 않고, 제수도 만들지 않겠다”라고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상숭배 하면 삼사 대 저주를 받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천대에 이르는 복을 받는다”(출20:3~6)라고 경고한 것처럼 대를 잇는 저주냐, 축복이냐의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댁 식구들은 가족 생일 때 촛불을 하루 종일 켜 놓거나 새벽마다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 놓고 비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더군다나 시어머니는 13년 동안 절에 빌러 다니며 남편을 얻었다고 하니, 우상숭배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집안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영적 전쟁

10여 년 전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고모에게 권유받아 연세중앙교회에서 성회가 열릴 때마다 참가했다. 당시 출석하던 교회에서 듣던 설교는 논리적이라 이해하기는 쉬웠으나 어딘가 모르게 공허했다. 그런데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도 내 영혼이 영적인 말씀에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설교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여태 알지 못하던 영적 세계에 대해 깨달으며 내 마음에 기쁨과 소망이 꽉 들어차는 것을 경험했다. 얼마 후 흰돌산수양관에서 진행한 추수감사절 성회에 참가해 큰 은혜를 받은 후 연세가족이 되어 신앙생활 하리라 마음먹었다.


결혼하기 전 남편과 한 약속이 있어 제사 자리를 피하곤 했으나, 시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큰아들이던 남편에게 시아버지 제사를 맡으라며 가족들이 성화를 부렸기 때문이다. 남편은 장남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완강하게 거절했다. 남편 형제들이 “형님 집에서 제사를 딱 한 번만 지내면 자기들이 제사를 가져가겠다”라고 회유도 했으나 틈을 내어 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남편과 언쟁하는 횟수가 늘어 갔다. 금식기도도 하면서 제사를 우리 집에서 지내면 안 되는 이유를 애타게 설명했으나 비신자인 남편에게 성경 말씀이 들릴 리 만무했다. 남편의 분노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살아 계실 때 부모님을 잘 섬겨야지, 돌아가신 후에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 놓는다고 해서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에 “제사와 죽음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난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라며 신앙을 지키려고 했다.


아마 남편이 내 신앙생활을 곱게 보지 않은 것은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집인 용인에서 서울에 있는 교회까지 가려면 주일 아침부터 일찍 서둘러야 한다. 휴일에 늦잠을 청하고 싶은 남편의 아침 식사를 일찌감치 챙길 때면 남편은 “교회가 거기밖에 없느냐? 집 가까이 다니면 되는 거 아니냐?”라며 내 속을 멍들게 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로 출발하는 등 뒤로 홧김에 하는 말이겠으나 “그럴 거면 갈라서든가!”라는 말이 내 마음에 아리도록 메아리친다.


남편의 거친 말과 행동 탓에 어떤 때는 이러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기도 했다. 아이들과 교회에 다녀오면 영락없이 문을 걸어 잠그기 일쑤였고 설상가상 시어머니까지 “내가 13년 동안 공들여 빌어서 낳은 아들인데 네가 어떻게 예수를 믿느냐”라며 모진 말들을 쏟아 내셨다. 내 편 하나 없이 가족들에게 치일수록 주님만 더 붙들게 되었다.


연세중앙교회에서 믿음생활 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사실 설날 당일에 성회에 참가해 본 적이 없었다. 올해 설날성회 때는 기어코 참가하리라 마음먹고 주님께 애절하게 기도했지만, 성탄절 예배와 송구영신예배에 참석한 것에 남편의 불만이 폭발할 지경이어서 설날성회까지 참가하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번에도 참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설거지할 때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이렇게 자포자기한 상태였으나 교구장께서 연락해 성회에 와서 기도할 것을 강권하셨다. 어디에선가 새 힘이 솟는 듯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남편이 나간 틈을 타서 후다닥 짐을 싸서 서울로 향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설 당일에 예배드릴 수 있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성전 숙소에서 아이들과 함께 머물며 설날축복대성회에 온전히 참가했다.


꿈같은 며칠간의 행복한 성회를 마치고 집에 오니 남편은 교회에 빠져 사는 여자와는 더는 같이 살 수 없다고 했다. 잘못을 빌고 개선한다면 용서해 주겠지만 안 된다면 더는 같이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전혀 변할 기색이 없는 나를 보며 남편은 말할 수없는 분노를 내게 터뜨렸다. 주님이 힘 주셔서 견대내고 있으나, 끝 모를 영적 전쟁과 고난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가족 구원 응답까지 사랑으로 기도

진리가 있는 곳에 마귀역사가 대단하다는 것을 성경 말씀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증거가, 나를 믿음에서 끌어내려고 마귀가 남편을 통해 갖가지 술책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어미가 목숨을 내어놓고 한 생명을 해산하기까지 두려움이 없는 것은 바로 사랑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들을 사랑하기에 아무리 마귀 궤계가 나를 지쳐 쓰러지게 할지라도 우리 가족 모두가 예수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하나 되는 날까지 주님처럼 섬기고 또 사랑하리라 다짐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영적 싸움이다. 진리가 승리하는 그 날까지 내가 지치지 않게, 혹여 넘어짐이 있어도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다. 언젠가는 주님이 나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되어 이루어지는 날, 가족들과 기쁨으로 주님만 찬양하리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토요일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극한 긴장감에 온몸이 굳어진다. 주일예배에 늦거나 예배드리러 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교회 가까이 살면서 부르짖어 기도하고 싶고 마음껏 소리 내어 울고 싶다. 나의 아픔과 고통과 두려움을 주님께 아뢰며 위로받고 싶다. “주님 도와주세요. 살려 주세요. 우리 가족이 주님 안에서 행복하고 싶어요. 그래도 주님 때문에 내가 삽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함께하시고 앞으로 함께하실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믿음의 기도로 질병과 고통에서 자유


| 전문자(51여전도회)


오래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스케이트를 타러 갔는데 얼음바닥에 넘어지면서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 심한 통증과 찰과상으로 고생했지만 젊은 나이라 금방 회복한 듯했다. 그런데 50대가 되면서부터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아파 걷기가 불편했다. 정형외과를 찾아가 통증을 줄여 주는 주사를 맞아 보았지만 그때뿐이었다.


남편이 중식 기술자다 보니 결혼하고부터 줄곧 중식당을 경영해 왔다. 연세가족 한마음잔치 때마다 우리 식당에서 만든 자장면을 선보였다. 중식 특성상 양파가 많이 필요하기에 양파 까는 일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낮은 의자에 쪼그려 앉아 양파를 까다 보면 일어나기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더군다나 3층 집을 계단으로 오르내릴 때는 할머니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식은땀을 흘리며 얼마나 애쓰는지 모른다. 다리가 아프고 나서 방바닥에 앉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식당을 경영하다 보니 몇 시간을 할애해 병원에 가서 검사받는 것도 사치였고 통증의 강도로 봐서는 시간도 돈도 많이 드는 병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병원 가기가 더욱 두려웠다. 의자에 장시간 앉아 있을 때, 특히 예배드리고 일어날 때는 오랜 시간 무릎이 경직되어 있어서인지 바로 일어날 수 없어 한참 동안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가 자리를 떠나야 했다.


18년 전 일이다. 하나님께서 질병을 고쳐 주신 경험이 있다. 셋째를 마흔 살에 낳고 몸조리하던 중 심한 치질을 앓았다. 내치핵으로 골반까지 아파 제대로 걸을 수 없었고, 통증이 오면 쪼그려 앉아 고통이 사그라질 때까지 참아야 했다.


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하고 있었기에 약도 편하게 먹지 못해 낫는 게 더뎠다. 의사는 수유를 끊고 수술할 것을 권유했지만 수유를 갑자기 끊을 수도 없고 내 마음속 깊숙이 하나님의 고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출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조리하던 몸으로 신생아를 안고 자모실에서 예배를 드렸다. 몸이 회복되지 않아 얼굴도 퉁퉁 붓고 정상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막을 수 없어 예배드리고 기도하기를 사모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예배드린 지 3주째. 그런데 그날 아프던 증상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곧바로 나는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음을 알아 감사를 올려 드렸고 지금까지 건강하다.


이번에 무릎이 아플 때도 하나님께서는 지난날 내 병을 고쳐주신 일을 생각나게 하셨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셨다. 예배 시간마다 담임목사께서 전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집중해 들으며 통성기도 끝에 예수 이름으로 강력하게 기도해 주실 때 무릎에 손을 얹고 믿음으로 기도했다.


그렇게 며칠간 기도하다가 하루는 예배를 마친 후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순간 내 자신이 너무 놀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아무렇지도 않네?’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다리를 이리저리 돌려 보고 굽혀 보고 계단도 내려가 보았지만 통증은 전혀 없었다. ‘아! 주님이 하셨구나. 주님이 이번에도 내 기도를 들으셨구나.’ 주님께서 낫게 하신 것을 깨달으며 영광을 올려 드렸다. 요즘은 교회도 마음껏 오가고 계단도 잘 오르내린다.


현재 헬몬찬양대에서 충성하고 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 측량할 수 없는 한없는 그 사랑을 어찌 다 갚을 수 있을지!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의 대속물로 내어 주신 크고 위대한 사랑에 늘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올려 드린다. 생명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주님만을 높이며 찬양하리라. 이 모든 일을 행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동해경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78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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