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8-04 11:37:50 ]
기도로 섬겨 준 직분자들에게 감사해
문선자 성도
(15교구, 52여전도회)
7년 전 오류동에 살 때 처음 교회에 다녔다. 골목에 사는 큰아이 또래의 아이 엄마(최윤정 집사)와 친해졌는데, 그 엄마가 다니는 연세중앙교회에 초대받아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교회에 간 첫날부터 하나님 말씀에 은혜를 받으니 주일마다 교회에 가자는 말도 그저 좋게만 들렸다. 그런데 일 년쯤 교회에 다닐 무렵, 갑자기 남편이 이사하자고 했다. 그 후로도 수년간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한곳에 정착해서 신앙생활 잘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계속 이사를 원하니 어쩔 수 없었다.
4년 전에는 경기도 동탄에서 살았는데, 하루는 문득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진작 하나님께 기도했다면 이렇게 여기저기 이사 다니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그전까지만 해도 교구장님이 자주 우리 집을 방문해서 우리 가정의 문제를 놓고 기도해 주었다. 그런데 남편이 교대 근무를 하면서부터는 1주일이면 나흘은 남편이 낮에 집에 있으니까 교회 직분자가 아무도 우리 집에 심방 올 수 없었다. 남편이 교회 식구들이 드나드는 것을 몹시 꺼려서다.
‘기도해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우리 가족을 구원할 수 있어.’
기도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실행하기로 했다. 동탄에서 가까운 오산에 기도처가 생겼다는 말을 듣자 직분자의 도움을 받아 그곳까지 기도하러 갔다. 주로 남편이 낮근무 하는 날을 기다렸다가 직분자들과 함께 오산 기도처로 갔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이나 걸렸지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갈급하니 거리가 먼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기도할 장소가 있어서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주일이면 서울까지 가서 낮예배만 겨우 드리고 귀가했었는데, 오산에 기도처가 생긴 후로는 남편이 숙직하는 날이면 삼일예배와 금요철야예배도 그곳에서 드렸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예배드린 덕분인지 어느 날부턴가 남편의 행동이 조금씩 달라졌다. 주일이면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경기도 동탄에서 서울 구로구 궁동 연세중앙교회까지 두세 시간씩 걸려 예배드리러 가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러더니 하루는 “이제 교회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자”라고 해서 다시 오류동으로 이사했다. 할렐루야!
교회 가까이 이사한 후 ‘이번에는 정말 신앙생활 제대로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런데 나와 아이들이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자 남편의 너그러운 면이 다시 사라졌다. 나와 아이들에게 교회에 가지 말라고 했다. 시어른을 찾아가야 한다거나, 아이들과 놀러 가야 한다는 핑계를 댔다.
하루는 둘째 아이가 울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주일이면 내 친구 아빠들은 다 교회에 오는데 왜 우리 아빠는 교회에 안 오는 거예요?”
어린 아들의 애절한 말에 마음이 쓰였는지, 3개월 후부터 남편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근무가 없는 주일에 혼자서 교회에 온 것이다. 할렐루야! 아직은 교회에 등록하지도 않았고, 직장을 마치고 오는 터라 예배 도중에 들어오지만 남편이 교회에 온다는 그 자체가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랴. “내가 부르지 않으면 내게 올 자가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주님께서 남편의 마음을 움직여서 성전으로 불러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또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여 예수 믿겠다고 마음의 문을 열어 준 남편에게도 한없이 감사하다.
나를 주님께로 인도해 준 최윤정 집사에게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고, 오산 지성전 식구들에게도 기도로 섬겨 준 사랑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린다.
시누이 부부 덕분에 믿음이 더욱 성장해
김병순 집사
(3교구, 52여전도회)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니다가 예수 믿는 집안으로 시집왔다. 결혼할 당시 시누이 부부(전희수 권사, 인주환 안수집사)는 연세중앙교회에 다녔는데 우리 부부를 ‘이웃초청큰잔치’에 자주 초청했다.
한번은 이웃초청큰잔치 날 성전 맨 앞자리에 앉아 글로리아예수찬양선교단이 부르는 예수의 십자가 공로에 감사하는 찬양을 듣던 중,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앞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난생처음 그런 경험을 한 날, 우리 부부는 연세중앙교회 교인이 됐다.
예전부터 예수를 믿노라 했지만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새로이 깨달은 점이 무척 많다. 먼저, 과거에는 주일에도 사정이 생기면 예배드리지 않고 사사로이 볼일 보러 다녔다. 하지만 연세중앙교회 다니면서부터는 주일을 생명처럼 지켰다. 연세중앙교회 교인들이 성경 말씀대로 온종일 성전에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온전히 주일성수 하는 모습을 보며 무늬만 크리스천일 뿐 말씀과 상관없이 내 멋대로 신앙생활 하던 지난날을 회개했다.
또 제사가 우상숭배이며(고전10:20) 무서운 죄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교회에 다녔으니 물론 제사를 지낸 적은 없지만, 제사가 그렇게 큰 죄인 줄은 미처 몰랐다.
또 신앙생활 하노라 했지만, 인본주의에 찌든 내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우선시했고, 믿노라 하면서도 신앙생활을 최우선 순위로 두지 못한 점을 회개했다. 죄지으면서도 죄를 죄로 여길 줄 몰랐던 점을 하나하나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법을 한 가지씩 새로 배웠다. 시누이 부부를 통해 우리 부부를 연세중앙교회로 이끄신 하나님의 섭리를 그제야 조금씩 깨달았다.
또 시누이와 가까이 지내면서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보니 교우관계도 배울 점이 무척 많았다. 시누이네 집에서 남전도회나 여전도회 모임을 하면 성도들을 넉넉한 인심으로 풍성히 대접하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고 나도 따라 하고 싶었다.
시누이 남편도 무척 본받을 점이 많았다. 시어머니께서 편찮으실 때는 손수 당신의 장모님을 업고 교회로 모시고 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게 해 주셨고, 예수 안에서 평안히 소천하실 때까지 극진히 섬겨 주셨다. 시누이 남편 덕분에 시아버지와 시할머니까지도 신앙생활 잘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 연세중앙교회 직분자들도 시어른들이 천국 가시기까지 얼마나 잘 섬겨 주었는지 일일이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가끔 혼자 생각해 본다.
‘연세중앙교회에 오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부부가 연로하신 시어른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 잃지 않고 무사히 천국에 입성하시게 그렇게 극진히 섬길 수 있었을까?’ 저절로 고개가 가로저어진다.
올해 대학생이 된 딸아이가 하루는 내게 물었다. “엄마, 우리 가족이 이 교회에 어떻게 오게 됐어?” 시누이 부부를 통해 연세중앙교회에 오게 되었고, 그간 우리 가족이 얼마나 믿음이 확고해졌는지를 전해 주었더니, 딸아이는 자기 고모부 내외가 믿음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모른다.
나도 시누이 부부를 통해 남편과 두 자녀까지 온 가족이 영혼의 때를 바라보며 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척이나 감사하다.
시누이 부부가 우리 온 가족을 영혼의 때를 바라보는 참된 신앙으로 이끌어 주었듯, 나 또한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소원한다. 모든 영광 주님께 올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39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