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9-29 13:15:00 ]
회사 동료 권유로 교회에 발 디뎌
12년 전, 식사 대접받고 미안해서 참석
그 후로 내 삶이 신기할 정도로 달라져
전수영 집사(27남전도회)
12년 전, 지금 해외선교국에 있는 이재수 집사가 권유해 교회에 왔다. 직장 동료인 이재수 집사(해외선교국 소속)는 어느 날 동료 3명에게 저녁으로 보쌈을 대접했다. 우리는 굉장히 의아했다.
‘갑자기 저녁을 왜 사지?’
식사 중간쯤, 이재수 집사는 슬슬 본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교회에서 이웃초청 잔치를 하니 한번 와 보세요.”
“몇 번만 가 주면 되느냐”고 웃으며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 정도야 뭐 어렵겠나’ 생각하며 쉽게 승낙했다.
이웃초청잔치 당일, 우리는 교회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고 전철과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당시 노량진 에 있던 연세중앙교회에 찾아왔다. 대성전에 도착하니 새신자가 왔다고 반갑게 환영해 주며 앞자리에 앉혔다.
그 당시 윤석전 목사님의 쉰 목소리에 적잖이 놀랐다. 그런데도 설교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다. 그날 설교 말씀 도중에 가정과 사회윤리에 관해서도 언급하셨는데 ‘참 바르게 가르치시는구나’라고 여겼다. 말씀 하나하나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날 바로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다. 교회에 다녀온 다음 날부터 집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교회에 잠깐 다녀 보기는 했지만 기도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나로서도 의아한 일이었다. 기도생활이 이어지자 내게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하나님 말씀을 더 알고 싶었다. 마침 교육국에서 몇 개월간 성경 공부를 진행했다. 성경 말씀을 읽으며 술을 끊었다. 직장 동료들은 변화된 내 모습을 보며 신앙생활 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그해 흰돌산수양관에서 청년성회가 있어 성회에 참석해야겠다고 회사에 말했다. 그랬더니 모든 직원이 자기들 휴가기간을 양보해 줄 테니 다녀오라고 했다. 상무님도 적극적으로 밀어주셨다. 내가 교회만 간다고 하면 모두 극성으로 밀어주었다. 동료들의 지지로 성회에 참석해 방언은사도 받고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다.
지금 이렇게 예수 믿는 내 모습을 보니 친누나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누나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예수를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누나를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천국으로 데려가셨다. 누나가 소천한 후, 모든 유품을 불태웠다. 단 하나, 빨간 성경책만은 남겨 두었다.
이사를 하더라도 그 성경책만큼은 늘 갖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소중한 성경책을 잃어버렸다. 애타게 찾다가 결국 찾지 못했다. 그런데 성경책을 잃어버린 그때쯤 연세중앙교회로 인도받았다. 때도 이런 때에…. 참 신기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과 나라는 둘만의 뚜렷한 믿음의 관계가 있었기에 외부에서 오는 어떤 시험에 힘들어 본 적이 없었다. 돌이켜 보면 기도뿐만 아니라 초신자 때 한 성경 공부가 지금 신앙생활의 든든한 디딤돌이 된 것 같다.
요즘은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말세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믿음 안에서 흔들리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승리하리라 다짐한다.
오랜 세월 아내의 기도 결국 응답돼
13년 동안 아내의 권유도 계속 뿌리치다
5년 전, 뇌경색 발병 후 신앙생활 시작해
김철규 집사(27남전도회)
18년 전, 아내의 권유에 못 이겨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지만 이름만 올렸을 뿐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5년 전, 다시 교회를 찾았다. 그런데도 말씀에 은혜 받지 못했다. 보다 못한 아내는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으라고 했다. “안수기도는 무슨 안수기도냐”며 내키지 않았지만 계속 권해서 결국 기도를 받았다. 그런데 기도를 받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 누워 있었다. 겨우 깨어났지만 기억이 온전치 않았다.
내가 정신을 차리자 아내는 그동안 당신 건강에 염려되는 부분이 있었다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며칠 전부터 차를 끌고 집에 가는데 집이 있는 골목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정차해야 하는 곳에서도 정차하지 않아 이상하게 여겼다고 했다. 아내는 그때부터 내 몸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며 말을 흐렸다.
며칠 집에 있는 동안 목사님 심방을 받았다. 목사님께서는 뇌경색 증상이 보인다고 병원에 가 보라고 하셨다. 마음이 덜컥했다. 그 후 병원 응급실에서 검사해 보니 담당 의사가 뇌경색 진단을 내리며 중환자실로 급히 입원하라고 했다.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내는 교회에 가서 목사님께 기도를 받자고 했다. 아내 말대로 입원을 미룬 채 그길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간 건강에는 늘 자신 있었는데 중병이 들었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하나님을 붙들었다. 교회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왔다.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예수를 붙잡으면 반드시 낫는다”고 아내도 곁에서 믿음의 소리를 해 주었다.
뇌경색 발병 이전에는 말씀을 들어도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병든 내 사정이 급해지자 하나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던 모습부터 세상에서 방탕하게 술 마시고 하나님 없이 살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횟집에서 일했기에 눈만 돌리면 술이 가득했다. 일을 마치고 한 잔씩 했다. 집에 들어올 때도 술 한 병은 꼭 사서 들어왔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다. 술친구들과 대작하며 지내는 것이 일상의 낙이었다. 예배 때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술을 비롯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부분들을 하나둘 회개했고, 방언은사도 받았다.
지금은 술친구들이 끊어지고, 자주 버럭 화를 내던 습관도 사라졌다. 이제는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열심히 충성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을 무렵에는 뇌경색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고쳐 주셨다는 믿음이 생겼다. 병이 생기고 하나님 은혜로 낫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진실로 믿었다.
건강을 회복한 후, 흰돌산수양관 성회에 가서 말씀 듣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은혜를 받았다. 은혜 받은 후 흰돌산수양관에서 충성하는 맛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내가 쓰임받을 곳이 있어서 감사했다. 수양관에 머물며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한껏 젖어 살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지금은 찬양대에서 주님을 마음껏 찬양한다. 앞으로 하나님 안에서 말씀대로 살며 충성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고, 신앙생활에 승리하고 싶다.
/정리 한기자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0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