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11-10 12:59:48 ]
천국을 진정으로 소망하게 돼
이성희 성도(16교구, 76여전도회)
청년 시절에는 해외단기선교를 다녀올 만큼 신앙에 열정이 있었지만, 차츰 세상에 빠져 교회를 떠나 살았다. 그러다가 2년 전에 천왕동으로 이사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가고 싶어서 은혜로운 교회를 찾았다.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에서 함께 자원봉사하던 허연재 집사님이 연세중앙교회에 다니고 있어 방문했다. 마침 총동원주일이었는데 윤석전 목사님께서 새신자들에게 애절하게 복음을 전하셨다.
“70~80년 살 세상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시간 들여 애쓰면서, 정작 내 영혼이 영원히 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지난날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면 천국에 가기만 바랐을 뿐, 주님을 위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기도할 때도 주님을 필요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여기고 맡겨 놓은 물건을 달라고 하듯 이것 달라, 저것 달라, 그저 달라고 졸라대기만 했었다.
연세중앙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 말씀으로 나를 비춰 보니 죄악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죄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었다. 윤석전 목사님께서 전해 주시는 말씀을 듣고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깨달아 회개했다.
예배 시간마다 죄를 찾아 회개하니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이 느껴졌고, 차츰 하나님의 세밀한 간섭도 느꼈다.
한번은 딸에게 몹시 화를 냈다가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눈물짓고 회개했다. 평소 딸은 다른 아이에게 맞기만 할 뿐 대항할 줄을 몰랐다. 그날도 누구에게 맞았는지 울며 귀가했다. 어찌나 화가 나는지 단 한 번도 아이에게 한 적이 없는 말을 내뱉었다.
“이제 너도 남이 한 대 때리면 두 대 때리란 말이야! 그렇게 맞지만 말고!”
고래고래 고함까지 질렀다. 앞으로도 남에게 계속 맞고 살까 봐, 이유 없이 남에게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까 봐 염려해서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그 후 마음이 몹시 아팠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퍼부어 댔으니…. 그런데 며칠 후 예배 시간,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나를 가슴 치며 눈물로 회개하게 했다.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마라, 주님께서 네 원수의 머리 위에 화롯불을 올려 갚아 주신다.” 딸 때문에 속상한 나머지 주님께 따지듯이 기도했을 때는 주님께서 세미하게 감동하셨다. ‘내가 심지 않은 것을 자녀에게 심지 말라. 내가 네 딸을 쓰려고 지금 내 뜻대로 자라게 하고 있다.’
내가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니 당연히 내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니 자식은 내 소유가 아니라 주님의 소유임을 깨달았다. 이제는 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지상 최대의 지원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경으로 뒀으니까. 주님께서 딸의 생각과 마음을 키워 주시리라 믿는다.
연세중앙교회에 다니면서 천국을 진정으로 소망하게 되었다. 행복은 남들과 비교해서 내가 우위에 있는 것을 과시할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나 스스로 쳐 놓은 결박에서 벗어나니 자유롭다. 이제야 진정으로 삶에 행복을 느낀다.
성령님이 늘 함께하심에 감사한다. 끝까지 변덕 부리지 않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주님께서 기억하시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나를 전도해 준 허연재 집사님께 지면을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세심한 도움에 감사한 마음 가득
팜티번 성도(3교구, 74여전도회)
6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와서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난생처음 교회란 곳에 간 것은 지난해 10월 무렵. 집 앞에서 이은숙 집사를 만나 전도받았다. 교회라는 곳에 한 번 다녀 볼까 싶어 남편에게 연세중앙교회에서 전도받은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이 다 듣더니 “좋은 교회 같으니 다녀 보라”고 허락해 주어 아이들과 함께 왔다.
교회에 다니고 보니 좋은 점이 무척 많았다. 먼저, 모든 것이 낯선 한국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여전도회원이 대부분 나랑 나이가 비슷해서 자녀도 또래가 많아 자녀 교육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당시 여섯 살짜리 큰아들을 시설 좋고 원비도 적당한 구립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여전도회원들은 인터넷에서 신청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고, 한국말이 서툰 나 대신 원장께 사정을 잘 설명해 주어 입원 허락을 받았다. 여러모로 도움 준 여전도회원이 무척 고마웠다. 구역 식구들도 친자매 같은 따스한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내가 생각난다며 싸다 주며 정을 나눴다. 아이들 옷이며 동화책도 곱게 쓰고 물려줬다. 사랑이 담긴 편지와 선물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고비가 찾아왔다. 베트남에 있는 친정 동생 결혼식에 참석차 한 달간 한국을 떠나 있었다. 물론 그 기간에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돌아온 후, 아들이 유치부에 가지 않겠다고 몸부림을 치며 거부했다.
그전에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아무리 타이르고 얼러도 소용이 없었다. 어린아이인데도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떼쓸 때는 어찌나 힘이 센지 내 힘으로는 교회에 데려갈 수 없었다. 아이를 홀로 집에 두고 교회에 갈 수 없어 마음은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만 신앙의 끈을 놓고 말았다.
이은숙 집사님이 주일마다 아들을 교회에 데려가려 방문했지만, TV와 게임에 푹 빠진 아이를 어찌해 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두 달 후, 교회 분들의 사랑으로 아들이 다시 교회에 다니게 됐다. 여전도회원들과 구역식구들이 모일 때마다 간절히 중보기도 해 주었고, 유아유치부 선생님들은 토요일이면 정성스레 쓴 편지와 맛있는 간식을 들고 아들을 찾아왔다. 아들은 그런 선생님들이 무척 고마웠는지 교회에 따라나섰고, 지금은 아들이 먼저 교회에 가자고 조른다.
성경 읽기는 아이들을 변화시킨 도구였다. 두 살 터울인 아들과 딸은 평소 자주 싸웠다. 코피가 터질 정도로 심하게 싸우기도 했다. 이은숙 집사가 그 모습을 눈여겨보더니 성경, 특히 잠언을 읽어 주라고 했다. 마침 여전도회와 구역에서도 성경 읽기를 시작하여 나도 아이들과 함께 잠언을 읽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싸우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믿음 없는 내게 주님께서 기도와 말씀의 능력을 체험케 하신 것이리라.
한국말이 서툴다 보니 담임목사님의 은혜로운 설교 말씀을 다 알아들을 수 없어 몹시 안타깝다. 속히 한국말에 능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놓치지 않고 다 듣고 은혜를 풍성히 받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깊이 알아 가고 싶다.
베트남에서 지금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구원받게 해 주신 우리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올려 드린다.
/정리 한기자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0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