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5-04 13:32:02 ]
아들의 기도로 이룬 가족 구원
유근수 집사(16남전도회)
11년 전, 군 복무를 마치고 온 아들이 교회에 다니는가 싶더니 주일에 여는 집안 행사나 명절 가족 모임에 빠지기 일쑤였다. 유별나게 예수 믿는 아들이 못마땅해 야단치기를 여러 차례. 한번은 아들을 불러 놓고 다그쳤다.
“교회를 택할래, 부모를 택할래?”
아들은 묵묵부답. 그 후로도 좀처럼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다. 딸까지 동원해 온 가족이 아들의 신앙생활을 뜯어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급기야 대학교 4학년생 아들을 집에서 내쫓았다. “예수 믿는 아들은 필요 없다!”며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바꿔 버렸다. 대학교 등록금도 일절 주지 않았다.
아무리 속을 썩인 아들이라도 내쫓고 나니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교회 청년들의 집을 전전하거나 교회 의자에서 새우잠을 잘 것이 뻔했다. 밥은 제대로 챙겨 먹고 다니는지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도 매일 눈물 바람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아들을 집에 들어오게 하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애지중지 키운 자식에게 실망한 터라 마음의 빗장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 후로도 몇 년간 우리 가족은 아들의 신앙생활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그러던 중 2008년 봄, 아내가 골목을 나서다 넘어져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다. 평지에서 넘어졌는데도 세 군데나 부러졌다.
‘혹시 예수 믿는 아들을 홀대해서 벌 받는 건가?’
어이없이 큰일을 당하자 양심에 걸리는 구석을 짚어 봤다. 어쨌든 그 사건을 계기로 아들이 말해 준 예수가 도대체 어떤 분인가를 생각해 보게 됐다. 그런 극적 사건으로 예수쟁이 아들에게 마음을 푼 우리 부부는 마침 연세중앙교회에서 열리는 ‘이웃사랑큰잔치’ 초청을 받아들였다. 그간 핍박 속에서도 외롭게 신앙을 지킨 아들의 눈물과 금식기도 덕분에 우리 부부가 드디어 교회에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이다. 교회 간 날 바로 등록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던 중, 아내의 안면마비 증세가 기도 중에 치료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뇌수술 외엔 다른 치료방법이 없어 지난 13년간 하루 진통제 5~6알로 버텨 온 질병이었다. 아내는 고질병에서 치유받자 마음껏 웃으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아내를 통해 체험한 나는 그 길로 단번에 술을 끊었다.
급한 성격이 걸림돌이었는데 윤석전 목사님이 전해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은혜받아 성격이 온화하게 바뀌니 우리 가정에 평안이 깃들었다. 딸도 흰돌산수양관 청년성회에 참석해 믿음의 은사를 받았고, 올해는 청년회 차장 직분을 맡아 충성하고 있다.
아들은 주님 앞에 서원한 대로 주의 종의 길을 가려고 올해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또 과분하게도 ‘풍성한청년회’ 회장에 임명돼 직분을 다하며 하루하루 주님 앞에 살고 있다.
이제는 우리 부부가 아들, 딸을 위해 기도하며 섬길 차례다. 예수 몰라 지옥 가는 영혼 살리라는 주님의 애절한 소원을 가슴에 품고, 주의 일을 감당할 큰 일꾼으로 성장하길 기도한다. 가족 구원을 이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끝까지 책임지는 섬김으로
오복화 성도(1교구, 30여전도회)
2년 전, 퇴행성관절염으로 연골재생 시술을 받으려고 입원했다.
당시 연세중앙교회 청년 이수진 자매와 한 병실을 쓰게 됐다. 과로로 휴식 겸 치료를 받던 수진 자매는 성격이 소탈해서 나와 스스럼없이 지냈고 자연스레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퇴원 후에는 수진 자매가 성경 구절을 문자메시지로 보내 주었다. 하루, 이틀, 사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성경 구절 문자가 오는데도 귀찮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은근히 반가웠다고 하는 편이 맞을까.
사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크리스천이었다. 여러 시련을 겪은 뒤 주님과 멀어진 상태였다. 내 영혼이 갈급해하는데도 육신이 먹고살기에 바빠 교회 가기를 차일피일 미뤘다.
낙수가 바위를 뚫는 이유는 물의 힘이 아니라 두드린 횟수이듯, 이수진 자매의 정성이 닫힌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이렇게 열의 있는 사람이 다니는 교회라면 무언가 다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진 자매가 다니는 연세중앙교회에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당시 나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에 살아서 서울 구로구 궁동 연세중앙교회까지는 2시간 30분이 걸렸다.
지난해 4월 총동원주일 이른 아침. 수진 자매가 서울서 새벽에 나서서 문산까지 나를 데리러 왔다.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하여 교회에 도착하니 오전 9시 30분. 예배가 시작되고, 윤석전 목사님께서 전하신 “영혼의 때를 위해 살라”는 말씀을 듣자 바짝 말라 갈라진 논에 물을 대듯 영혼의 갈급함이 채워졌다.
그 후 다리에 박았던 나사를 빼는 수술로 한 번 더 입원했다. 담당 교구장과 지역장이 수시로 병원에 와서 심방해 주고, 지역장의 남편은 주일이면 병원에서 교회까지 차로 태워 주고 예배 후에는 다시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많은 분이 진실하게 섬겨 주니까 마음 문이 활짝 열렸다. 신앙생활 잘하려고 교회 근처로 이사하려고 하자 지역장이 직접 집을 알아봐 줘서 순조롭게 이사도 했다.
이수진 자매는 요즘도 변함없이 성경 말씀을 문자메시지로 보내 준다. 방황하던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려는 진실한 섬김은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다. 전도한 이의 영혼이 견고한 믿음으로 서는 그날까지 책임을 다하는, 그야말로 구원의 열정이 충만한 전도자다.
나도 복음의 빚을 갚으려 여전도회에서 전도하러 가면 꼭 따라나서려고 한다. 나를 통해 가족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함께 즐겁게 신앙생활 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오늘도 전도하며 그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앞으로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 싶은 마음이 넘친다.
/정리 동해경 장선화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3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