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전도받았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생명의 말씀에 이끌려 外

등록날짜 [ 2015-06-29 16:18:19 ]

성령이 인도하시는 생명의 말씀에 이끌려
라선희 성도(20교구, 59여전도회)

모태신앙이지만 중3 ,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하나님을 원망했다.

아버지를 이렇게 데려가시다니! 하나님이 진정 살아 계시다면 제게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그 후로 더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직업군인(해군)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의 직업 때문에 한 지역에 정착하지 못하고 수없이 이사하며 살았다.

깊은 불신앙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서른두 살 되던 해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하지만 영적인 양식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영적 생활로 인도해 줄 이가 없어 이내 신앙의 타성에 젖어버리고 말았다.

몇 해 전, 지인의 인도로 흰돌산수양관에서 열린 성회에서 말씀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 딱 한 타임만 말씀을 들었는데 큰 은혜를 받아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사모함이 생겼다. 하지만 당시 남편 근무지가 경남 진해여서 거리상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인천으로 발령받았다. 사모하던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지만 사정상 갈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내 영혼은 채워지지 않는 영적 빈곤으로 메마르고 피폐해졌다. 육신적으로도 여러 가지 질병과 우울증이 깊어져 1년간 방에 틀어박혀 누워서만 생활할 정도였다.

그런 내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던 남동생 부부가 연세중앙교회 믿음의 지체들과 중보기도를 해 주며 권면했다.

올케와 함께 남동생 부부가 사는 경기도 시흥 지역기도모임에 참석했다. 교구장이 기도모임을 인도했는데 부르짖는 기도의 열기가 몹시 뜨거웠고, 또 전하는 하나님 말씀도 무척 은혜로웠다. 첫 기도모임에서 난생처음 눈물을 쏟으며 열렬히 기도했다. 그 후 매주 지역 기도모임에 참석하자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사모함이 더욱 커졌고 드디어 지난해 12월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다.
 
지역기도모임에 꾸준히 참석해 부르짖으며 기도하니 올 1월부터는 매일 12가지 넘게 먹던 약 중 고혈압 약을 제외하고는 모두 끊게 됐다. 특히 우울증 약을 복용해 늘 무기력하고 정신이 멍했는데, 약을 끊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니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며 건강이 회복되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두 딸도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돼 무척 기뻐하고 감사해 한다. 둘째딸은 탁구에 소질을 보여 각종 경기에 자주 참가했는데 경기가 주로 주일에 열리다 보니 예배를 빠져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딸은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자 신앙 양심에 걸려 몹시 힘들어하더니 운동을 그만둘 결단을 내렸다. 이제는 설교자가 되고 싶은 비전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예수 믿으면 잘 되고 복 받는다는 인본주의에 젖어 정욕적이던 우리 가정이, “예수 믿고 회개하면 죄에서 자유, 저주에서 생명, 지옥에서 천국 간다는 말씀으로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다. 그저 묵상기도가 전부이던 신앙생활에서 성령의 힘으로 통곡과 애통의 기도를 할 수 있게 돼 감사하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린다


누나의 끈질긴 기도의 응답으로
이창민 집사(23남전도회)

9년 전, 누나 이미경 집사가 전도해 교회에 발을 디뎠다. 청년회에 소속했으나 믿음 없이 가끔 교회에 출석하는 정도였다. 그 당시는 주일 출근이 잦았는데 누나와 청년회 직분자들은 교회에 오라고 계속 전화했다. 한 번은 전화로 교회 오라고 하는 누나에게 화를 버럭 냈다.

내가 알아서 갈 테니 전화하지 마!”

주일에 직장일 하지 말고 교회에 가서 예배 드려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누나가 자꾸 채근하니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교회에 등록한 후 2년여 간 직장일이 바빠 교회에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래도 청년회 부원들과는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부원들과 함께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끔 주일 모임 때 과일이나 반찬을 준비해 갔다. 부원들을 잘 챙겨주어서인지 순장 직분을 맡겨 주셨다. 그 다음 해는 차장 직분을 맡겨 주셔서 식사 준비를 도맡았다.

교회에 다닌 지 3년째 접어들 무렵, ‘이제 이렇게 신앙생활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벽예배에 나갔다. 새벽예배 드리면서 술과 담배를 끊었다. 회사 동료가 술, 담배를 권할 때면 이제 예수 믿어서 술, 담배 다 끊었다고 말했다. “너 미쳤니?”라며 비아냥거렸지만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 이듬해 여름, 흰돌산수양관에서 34일간 열리는 성회에 참석했다. 처음엔 흰돌산수양관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누나는 어떻게든 가야 한다고 끈질기게 권면했고, 결국 성회 둘째 날 저녁부터 참석했다. 윤석전 담임목사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가만히 들으니 여태껏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온갖 죄가 생각나 회개했다.

셋째 날 저녁 은사집회 때는 방언 은사를 받았다. 기쁨이 충만해서인지 흰돌산수양관 하계성회에 다녀온 후로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3개월 후, 같은 부에 있던 자매와 결혼하게 됐다.

그 후 믿음의 배필과 매일 한 시간씩 가정 기도모임을 열었다. 예수 믿지 않는 가족이 예수를 만나 구원받기를 첫째 기도제목으로 두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전도하면 처음에는 네가 예수를 믿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우리에게는 예수 믿으라고 하지 말라고 하시더니 요즘은 예수 한번 믿어 보겠다로 바뀌셨다. 전화할 때나, 시골에 직접 찾아뵐 때나 포기하지 않고 아내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또 지난해 6월부터 막냇동생도 교회에 나와 현재 청년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가족 구원을 향한 우리 부부와 누나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고 계신다.

결혼할 때 누나가 내게 한 말이 기억난다.

너 위해서 기도 많이 한 거 아니?”

내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기까지 누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을까. 나 역시 부모님과 형제들이 예수 믿는 그날까지 눈물로 기도하며 전도하리라 다짐해 본다.

/정리 김지영 한기자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4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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