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8-31 13:27:20 ]
참평안을 깨달은 참기쁨
기세연 집사(20남전도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꺾기까지 19년 걸렸다. 그 긴 세월, 예수 믿는 아내(오경희 집사)를 무섭게 핍박했다. 결혼 후, 연세중앙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아내는 무슨 대단한 진리를 만났는지 교회에서 하는 예배며 행사에 쫓아다니기 바빴다. 아들 둘을 낳아 청소년이 되기까지, 일요일에 가족끼리 놀러 한 번 안 가고 애들을 데리고 교회에 가는 아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교회 사람들이 수없이 찾아오고, 심지어 담임목사님이 심방 와도 예수에 빠져 사는 아내 꼴이 보기 싫어서 아무도 집에 발을 못 들이게 했다.
그러다가 7년 전부터는 마음을 바꿔 내 발로 교회를 찾았다. 당시 호텔 요리사직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요식업을 시작했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아들들에게 소홀해졌다. 이제라도 잘해줘야겠다 싶어 아들 둘의 소원인 교회 출석을 결심한 것이다.
아내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교회에 등록하고 꾸준히 출석했지만, 믿음이 없어 여전히 교회에서 까칠하게 굴었다.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표정은 마치 주머니에 칼이라도 넣고 다니는 듯 강렬했다. 하지만 낙수에 바위 파인다는 속담이 있듯,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데만 고정되었던 내 시선이 설교 말씀을 자꾸 들으니까 주께로 향했다. 나 같은 죄인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어 나를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에서 구원했다는 애절한 설교 말씀에 그만 십수 년간 꼭꼭 질러 놓은 마음의 빗장을 풀고 무장을 완전 해제한 채 울며불며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그 후 내 삶은 점점 변했다.
첫째, 기도를 하게 됐다. 처음에는 기도하기 몹시 힘들었다. 그런데 작정 기도회에 참석하고 나자 기도하기가 조금 수월해졌다. 말투도 세상적인 어투를 버리고 “주님이 도와주셨습니다”로 바뀌었다.
둘째, 금주.금연을 했다. 하루는 술·담배를 끊으려고 기도했다. “하나님, 지금부터 술·담배 하지 않겠으니 끊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그 후 술·담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셋째, 주일성수를 하게 됐다. 어느 날 아내가 기도하더니 이렇게 권면했다.
“주일엔 가게 문을 닫고 주일성수하는 게 어떻겠어요?”
체인점을 운영하는 터라 마음대로 휴무일을 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일을 온전히 지키고자 예배드리러 교회에 갔다. 또 월세를 내며 사업을 운영하던 중이어서 아내는 점포를 살 수 있게 기도하자고 했다. 법적으로 부분 매매가 되지 않는 건물이었지만, 아내와 기도하던 중, 건물주가 용도변경을 해 점포를 매입할 수 있었다.
또 찬양대에 지원해 주일에는 오직 나를 구원하신 주님만 찬양했다. 유행가 박자도 맞추지 못했던 내가 찬양대 홍보대사가 되었고, 지금은 헬몬찬양대 차장으로 충성하고 있다.
또 소속 남전도회 임원으로 충성하면서 이제는 오히려 회원들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다독이고 권면한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동안 주님을 부인하고 목사님과 아내를 핍박했던 모습이 무척 부끄럽고 죄송하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인도하시기까지 참고 기도하셨을 것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뒤늦게 믿었기에, 절대로 믿음에서 낙오되지 않으리라고 다짐해 본다. 내 힘으로 할 수 없기에 이렇게 기도한다.
‘어떤 시험이나 힘든 일이 닥칠지라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굳센 믿음 주시옵소서!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오직 감사와 충성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생명의 양식을 먹는 즐거움
최정중 성도(새가족남전도회)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행복했던 가정엔 어둠이 짙게 드리웠고, 결국 성치 않은 몸으로 연로한 부모님께로 돌아가 신세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연거푸 찾아오는 우환에 우울증이 생겼다. 왜 내게 이런 불행이 찾아왔는지 좌절하고 비관하다 우울증이 깊어만 갔다.
부모님과 누나 내외는 오래전부터 연세중앙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내게 수없이 예수를 믿으라고 노래하듯 권면했지만, 교회에 대해 한 번 닫힌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부모님의 애절한 권면이 내겐 그저 ‘소 귀에 경 읽기’였다.
불행이 닥친 후, 부모님께 짐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참담한 현실은 끊임없이 나 자신을 원망하게 했고, 부모님께는 몸 둘 바 모를 만큼 송구스러웠다.
어느 날, 불편한 몸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릴 일이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전부터 소원이셨던 교회에 다닌다면 부모님이 기뻐하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교회 가기를 자원했다.
6개월 전, 드디어 연세중앙교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교회에 가는 일은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 드리는 것 외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무감각하게 한 달여를 교회에 다니던 중, 등록하라는 권면에 정식 교인이 됐고, 새신자 교육을 매 주일 받았다.
그러다가 올여름에 교회에서 열린 장년부 하계성회에 참석했다. 새신자를 배려해 준 덕분에 윤석전 담임목사님과 눈이 마주칠 정도로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첫날은 그냥 의미 없이 지나갔다. 둘째 날부터는 목사님의 손짓과 눈빛이 마치 나를 향하듯 느껴졌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내 형편을 아시고 질책하고 때로 위로하시는 듯해 심장이 ‘쿵쾅쿵쾅’ 울렸다.
그동안 아무 의미 없이 귀전을 스쳐 지나던 설교 말씀이 이젠 내게 꼭 필요한 생명수 같았다. 정신없이 그 말씀을 감격과 눈물로 흡수했다. 내 영혼 살고 싶어 주님 앞에 진실하고 간절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엎드렸다. 사람은 초라해진 나를 버렸지만, 주님은 이러한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꼭 안아 주셨다.
‘왜 진작 주님께 돌아오지 않았던가! 건강했을 때 주님 앞에 쓰임받는 일꾼으로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끊임없는 회한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장년부 하계성회를 통해 뜨겁게 주님을 만난 데 더해 성령 충만해져 방언은사까지 받았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던 성경 말씀이 구절 하나하나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듯 선명히 보였다.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은 꿀송이보다 더 달디단 생명의 양식이 되었다. 이젠 어디를 가도 성경이 늘 내 손에 쥐어져 있다.
이제 내 인생은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새 삶으로 바뀌었다. 좌절과 비관으로 물든 날들이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날들로 변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려 살 찢고 피 흘려 구원하신 주님. 불편한 몸과 불완전한 나의 삶을 주님께서 분명 온전케 하시리라 믿는다. 지금은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주님께서 나를 도구로 써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내게 예수 믿기를 권면한 부모님과 누나 내외께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앞으로 반석과 같이 요동 없는 신앙생활을 하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나는 기도로 주님께 나아간다.
/정리 동해경 한기자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4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