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0-13 09:14:41 ]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신앙생활
나상원 협력안수집사(새가족남전도회)
오랜 세월 신앙생활 하노라 했으나 믿음의 확신이 없었다. 수없이 방황하다 올 4월, 아내와 함께 연세중앙교회를 찾았고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발견했다. 윤석전 담임목사님께서 주님 심정으로 애절히 전해 주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그동안 믿노라 했으나 죄로 얼룩진 삶의 실상을 낱낱이 알 수 있었다.
사실 수년 전부터 윤 목사님 설교를 인터넷으로 들었다. 설교 말씀을 들을 때는 기도하리라 마음먹지만, 실제 기도 시간은 고작 10분. ‘짧게 기도했어도 주님께서 내 사정을 다 알고 계시니까…’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 후 실제로 연세중앙교회을 방문해 성령 충만한 예배 현장에 동참하니 인터넷 예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를 경험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동떨어진 초라한 내 신앙을 돌아보게 하셨다. 먼저 온전히 주일성수 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게 하셨다. 주일예배를 드린 후에는 개인 용무를 보러 다니기에 바빴고, 주일에 상거래를 하거나, 교인들과 교제를 나눈다는 핑계로 피서를 간 적도 많았다.
또 우상숭배 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지 못한 점도 철저히 회개했다. 우리 집안은 일 년에 한 번 시제(時祭)를 지내는데 이를 주관하는 작은아버지께서 내게도 시제를 한 번 맡으라고 했다.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머뭇거렸지만, 교회 다니는 친척들도 다들 제사를 지내는 터라 거절하지 못하고 몇 년 후에 지내겠다며 내 순서를 정해 놓았다.
그런데 이번에 연세중앙교회에 온 후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읽어 보고 참으로 놀랐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20). 또 제사가 삼사 대 저주를 쌓는 일임(신5:9)을 알게 된 이상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우리 집안에 영적 전쟁으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 것이다. 우리 집안에서 우상숭배가 끊어지도록,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기도할 것이다.
새가족남전도회에서는 SNS 메신저 ‘기도 방’을 만들어 매일 기도와 성경 읽기를 권면한다. 새가족남전도회 기도 모임에 처음 참석했을 때는 한 시간 하는 기도가 얼마나 길고 지루하던지…. 지금은 차차 적응하고 있고, 기도 시간도 점점 늘려가고 있다. 사실 한 시간 기도는 난생처음이다.
“한 시간 기도하면 내 영혼 살고, 두 시간 기도하면 남의 영혼도 살립니다!”
새가족남전도회 기도 인도자의 말이 떠오른다. 뒤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믿음 없고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 부부를 기도하는 교회, 믿음이 풍성한 교회로 인도하신 뜻이 어디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제 기도를 멈추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지켜 성령 충만한 삶을 살리라 다짐한다.
50년 만에 돌아온 탕자의 눈물
윤강원 성도(새가족남전도회)
대대로 예수 믿는 가문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녔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교회에서 중직을 맡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셨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군에 들어갔다. 당시 군대에서는 술.담배를 안 하면 사람 축에도 끼워 주지 않아서 술.담배를 입에 댔다. 제대하고 나서도 끊지 못했고, 예수 믿는 집안에서 홀로 탕자가 되어 가족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그 후 불신자와 결혼했다. 부모.형제들이 수없이 권면해 아내는 교회에 다니게 됐지만, 나는 여전히 주님을 멀리했다. 우리 부부는 슬하에 딸 셋을 두었는데 안타깝게도 둘째 딸이 장애아로 태어나 우리 부부 가슴의 못이 되었다. 괴로움을 잊으려고 세상과 술에 더욱 의지했다.
지금부터 20년 전, 봉천동에 있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노량진에 연세중앙교회가 있었다. 그 교회 전도자들의 따뜻한 손길이 장애아인 우리 딸에게도 미쳤다. 그 후부터 딸아이는 연세중앙교회에 다니며 예수를 믿었다. 딸아이는 말썽 한 번 피우지 않고 순수한 아기처럼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해 갔다.
그러다가 연세중앙교회가 구로구 궁동으로 이전했다. 주일마다 교회에 가고 싶어 안달하는 딸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악구 봉천동에서 구로구 궁동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했다. 딸은 교회를 오갈 때마다 어눌한 말로 언제나 이야기했다.
“아빠… 함께 교..회..가자..”
딸아이의 진심 어린 한마디가 마음에 와 닿았고, 교회에 오갈수록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어느 날, 딸을 데리러 갔다가 꽤 일찍 교회에 도착했다. 딸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실 배춘랑 선생님이 딸아이가 예배드리는 교회복지부 예배실로 나를 안내했고 본의 아니게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오랜만에 드리는 예배였다. 어릴 때 부모님 손잡고 교회에 다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걱정 근심 없이 예수 안에서 행복했는데…. 모든 옛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주님 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났지만 주님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계셨구나.’
가슴이 뻐근하도록 후회와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세상이 좋아 청춘을 모두 세상에 내어버린 채 이제야 주님 앞에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주님은 그것만으로도 기뻐하셨다. 그 후부터 딸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기만 하던 내가, 주일예배에 참석해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고 있다. 가슴에 박힌 못이라고 여겼던 장애인 딸이 나를 주님께 인도한 것이다. 게다가 내가 신앙 안에 서기까지 새가족남전도회 직분자들이 따뜻하고 진실하게 섬겨 주어 교회에 더욱 다니고 싶게 했다.
50년을 하루같이 내가 돌아오기만을 고대하셨을 우리 주님께 이제는 변치 않는 믿음으로 나를 필요로 하시는 곳에서 온몸과 마음을 드려 충성하겠다고 다짐해본다.
/정리 동해경 한기자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5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