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2-07 22:29:19 ]
설 연휴를 앞두고 영적 전쟁을 치르는 성도들이 꽤 있다. 우상숭배 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비신자 가족과 영적 전쟁을 수년째 하고 있는 이도 많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기도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성도들의 모습을 소개한다.
일년 제사만 수십 차례
장손 아버지 예수 영접까지
유세나(충성된청년회)
대대로 불교와 유교에 젖어 살던 우리 집안
언니에 이어 나까지 예수님 믿자 엄청난 핍박
우리 가족 구원해달라 눈물로 부르짖어 기도
불교집안에서 태어났다. 계룡산 자락 어느 사찰에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고 철철이 찾아가 제사를 지냈다.
두살 위인 언니는 고3 수험생 시절 예수를 만났다. 이 사실을 아버지가 아시고부터 우리 집안엔 큰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명석하던 언니에게 기대감이 크셨지만 집안의 종교에 등돌린 큰딸에게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고 매를 들었다. 하지만 언니는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그런 언니를 답답하게 여겼지만, 나 역시 대학생이 된 후 예수님을 뜨겁게 만났다. 예수님이 나의 죗값을 갚고 구원해주시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자 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동생까지 꼬드겼느냐?”며 아버지는 언니에게 핍박을 더욱 거세게 하셨다.
아버지는 집안 장손이셨다. 집에서 지내는 제사만 일 년에 수십 차례였다. 어머니는 홀로 그 많은 제사 음식을 도맡아 만드셨다. 고생하는 어머니를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에 바위덩이가 하나 얹힌 것 같았다. 명절이면 일가친척이 다 모여 예수 믿는 우리 자매에게 눈치를 줬다. 제사음식 안 먹으려고 김치와 김으로만 밥 먹는 우리에게 유별나게 예수 믿는다고 핍박했다.
수 년 전, 서울에 취업을 하면서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게 됐다.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그때부터 가족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 핍박만 받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이 예수 믿어 천대의 축복을 받기를 소망했다. 서울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 맞는 추석에 담임목사님은 자신이 어렸을 때 겪은 모진 핍박을 간증하셨다. 세상 모진 핍박을 이기신 간증이 큰 힘이 됐고, 우리 가족이 창조주 하나님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팠다. 우리 가족을 죄짓게 해 지옥 데려가려는 마귀역사가 분해 눈물로 부르짖어 어서 속히 우리 가족구원을 이루어 주시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응급실에 계시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직장암이었다. 사실 아버지는 수 년 전부터 집을 나가 한량처럼 사셨다. 집에 계실 때도 가족들을 뒤로한 채 남들에게 펑펑 잘 쓰시는 분이었다. 할머니는 집안 장손인 아버지를 오냐오냐 떠받들었고 술과 노름으로 정미소를 탕진하자, 어머니는 온갖 고생을 하셨다. 동네 어귀에서 약주에 취해 우리를 부르시는 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들릴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가족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제왕이던 아버지가 응급실에 초라하게 누워계셨다. 의사는 이미 손 쓸 시기가 지났다고 했다. “이런 모습으로 만나 미안하다.” 나지막하게 말씀하셨지만, 아버지는 기세가 여전하셨다. 어떻게든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청년회 담당 목사님과 내려갔는데도 말씀 듣기를 완강히 거절하셨다. 할 수 없이 교회 식구들을 보내고 혼자 병실에 들어가자 엄청난 욕설에 폭언까지 하셨다. 이런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싶었다.
집안 사정을 조금 말하자면 우리 집안에는 가족력으로 말미암은 암병이 계속 내려오고 있었다. 큰고모가 위암으로, 작은아버지 두 분이 췌장암과 대장암으로 운명했고 이번은 우리 아버지에게 암병이 찾아왔다.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아버지를 간호하고 기도하던 중 아버지를 생각하면 불같이 화가 일었다가도 그 영혼 지옥 가면 안 된다는 주님 심정으로 울며 기도하기를 반복했다. 복음만 전하려고 하면 “그런 소리 하려면 당장 올라가”라고 역정을 내시는 아버지를 위해 더 애절하게 기도했다.
몇 개월 후 청년회 목사님과 아버지를 재차 찾았지만, 이번에도 문전박대했다. 마음이 많이 낙심되었다. 분명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받으리라”(행16:31)고 했는데 우리 아버지는 너무 죄가 많은 것인가. 도망가고 싶었다. 그 주일 언니네 교회 목사님도 아버지 병실에서 내쫓겼다는 전화를 받고 매주 아버지에게 내려가는 것도 점점 지쳐갔지만 그래도 아버지 영혼이 지옥 가면 안 된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언니에게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세나가 목사님을 모시고 두 번이나 찾아왔는데, 한번 말씀을 들어보겠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 주 화요일에 목사님을 모시고 병원을 찾았다. 자존심이 센 아버지가 목사님을 보고 먼저 인사하는 것을 보며 크게 놀랐다. 정말 마음 문이 많이 열리셨구나. 아버지는 묵묵히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듣더니 맨 마지막에 “아멘”이라고 하셨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영접기도도 받고 목사님과 이런저런 신앙의 말씀도 나누셨다.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동안 진통제에 의지해 하루하루 고통스러워하시던 아버지는 영접기도를 받은 저녁부터 사람을 못 알아보실만큼 쇠약해지셨다. 다행히 회사 워크숍 기간이라 아버지 간호를 하러 다시 광주에 내려갈 수 있었고 담임목사님 설교 말씀 테이프를 아버지 귀에 꽂아드리며 끝까지 예수 믿는 믿음을 붙드시도록 기도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알려주듯 아버지의 발은 퉁퉁 부어 금세라도 터질 기세였다. 배에도 복수가 가득 차올랐다. 얼굴만은 여위어 더 안타깝고, 거칠 것 없이 살아오신 아버지의 인생이 안쓰러웠다. 정신이 있으시던 당시 “2년만 더 돈 벌고 나타나려고 했는데. 우리 집은 화목하게 웃어본 적이 없어 미안하다. 내가 다 미안하다”는 말이 유언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말을 유언처럼 또 회개처럼 남기시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하게 소천하셨다. 교회를 다니지도 않았고, 통곡하며 회개하지도 않으셨지만, 예수님과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처럼 천국행 마지막 차에 오르신 아버지의 평안한 얼굴을 보며 주님께 감사했다.
장례 역시 주님께서 응답하셨다. 막내고모가 절에서 고승(高僧)들을 데려오려고 했지만, 기독교장으로 치렀다. 우리 집에 기독교장이라니. 아버지의 빈소가 교회장으로 차려진 모습이 너무도 감사해서 하염없이 울었다. 10년 넘게 기도하며 영적싸움을 마치고 나니 큰 복도 있었다. 어머니가 더는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유교와 불교에 젖어 살던 우리 집안에 우상숭배가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이다. 기도하고 소망하자 주님이 일하셨다. 이 모든 일을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캄보디아 살땐 불교 승려
한국와 예수 만나 개종
썸낭(해외선교국 캄보디아부)
처음에는 한국어 배우러 우리 교회 왔다가
우상숭배 죄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 만나
고향 가족과 이웃도 전도하고 싶어
<사진설명> 해외선교국 캄보디아부 썸낭 형제가 한국에 와서 예수 만난 기쁨을 "화이팅"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 17세부터 고국에서 7년 동안 승려 생활을 하던 모습.
2016년에 돈 벌러 한국에 왔다가 인생이 바뀌었다. 평생 죄만 짓다가 그 죗값으로 지옥 갈 내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됐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게 됐기 때문이다. 연세중앙교회에서 2년 반 동안 신앙생활 하면서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난 것은 모두 주님의 은혜다.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17세에 승려가 됐다. 아홉 형제 중 셋째형과 일곱째인 내가 출가(出家)해 승적에 올랐다. 캄보디아에서는 승려가 있는 가문을 최고로 존귀하게 여기고 본인들도 영광스럽게 여긴다. 승려는 사회적으로 매우 존경받는 지위를 누리는데 절대 노동하지 않고 아침마다 사람들에게 공양(供養)을 받아 생활한다. 나는 사원에서 7년간 지냈는데, 캄보디아 명절 프춤번(음력 8월 16일부터 15일간)이 되면 집집이 찾아가 제사를 지내고 죽은 이에게 절하며 우상숭배를 했다.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어 보니 승려일 때 한 것이 지옥 갈 죄악임을 알아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엔 캄보디아 동포를 만나는 것이 좋고, 무료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즐거워 교회에 왔지만, 차츰 해외선교국 식구들에게 사랑받고 섬김받다 보니 예수님께도 마음 문이 활짝 열렸고 “무죄한 하나님의 아들이 네 지옥 갈 죗값을 대신 갚으려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다”는 담임목사님 설교 말씀을 듣고 예수 모르고 산 지난날을 눈물로 회개하며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했다.
이제는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죄사함을 경험했고 하나님이 참신이신 것을 안다. 승려 시절 경전을 많이 읽어봤지만, 생명이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은 확실히 다르다. 불교에도 부모에게 공경하라는 좋은 말은 많지만, 실제로 부모님을 공경하고 행하는 믿음은 예수 믿는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 오지 못했다면 영생하는 참 진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설과 추석이 되면 3일씩 금식기도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나는 이제 우상숭배를 절대 하지 않지만 ▲캄보디아에 있는 가족들이 우상숭배의 저주를 끊도록 ▲과거 내가 알지 못하고 지은 수많은 죄를 회개하도록 간절히 기도하기 위해서다. 나부터 하나님 말씀 안에 바로 서서 가족과 이웃을 전도하고 싶다. 승려이던 내가 참된 신인 구세주 예수를 전하면 사람들이 경청해 들으리라 믿는다. 주님이 일하시리라. 이 모든 일을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오정현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61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