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02-27 00:56:32 ]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연세가족들은 전처럼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지는 못하지만, 각 가정을 교회 삼아 예배드리며 교회와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또 예배 때마다 설교 말씀에 은혜받은 점, 응답받은 기도 제목, 담임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문자로 보내 간증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리고 있다. 해외에 사는 연세가족들도 양방향 예배를 드리며 은혜받은 간증을 보내 주었다.
연세가족 줌(zoom) 예배 주님이 주신 큰 선물
| 에이든(말레이시아)
중국인인 조부모님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말레이시아로 이주해 말레이시아에서 나고 자랐다. 공립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중국어(북경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접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더 알고 싶어 6년 전부터 겨울방학마다 한국으로 여행 오다가 유튜브에서 연세중앙교회 ‘성탄감사찬양’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2018년 12월에는 연세중앙교회를 방문해 성탄하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나 또한 올려 드렸다.
연세중앙교회 양방향 예배는 주님께서 내게 주신 큰 선물이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지난해부터 한국에 가지 못해 아쉽던 차에 하나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신앙 정신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주일예배를 드릴 때마다 윤석전 담임목사님이 가까이 계신 것 같고 설교 말씀을 들을 때마다 세속적으로 향하는 내 시각을 돌이켜 영혼의 때를 위해 살도록 회개하게 한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가 우울증을 앓아 애타게 기도한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최근 어머니 마음에 평안을 주셨고, 가족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 주실 만큼 건강을 되찾게 하셨다. 또 연세중앙교회 성탄감사예배에 참석하기를 기도했더니 비록 한국에 오지는 못했으나 유튜브를 통해 예배드리고 은혜받게 하셨다. 주님이 하신 일이다.
지난해에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었다. 그러나 연세중앙교회 새가족청년회 직분자들이 바다 건너에 있는 나까지 섬겨 주고 기도해 주어 어려움을 이겨 내도록 큰 힘을 주었다. 훗날 한국으로 건너와 담임목사님 설교 말씀을 통역하는 충성도 하고 찬양대도 하고 싶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할렐루야.
깨어 기도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
| 김가영(일본 후쿠오카)
일본 교토시에 있는 리쓰메이칸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광고업계 직장까지 얻게 돼 9년째 일본에서 살고 있다.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외출을 줄이면서 양방향 예배를 드리고 찬양도 들으며 주님과 더 가까워지려고 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게을러지고 신앙생활도 느슨해졌다. 그럴 때마다 담임목사님께서 설교 시간에 “깨어 기도하라”고, “주님 다시 오실 날이 머지않았으니 영적생활에 마음 쏟으라”며 애타게 당부해 주셔서 무뎌진 부분을 회개하고 금세 주님께 돌아올 수 있다.
마귀가 영적세계에서 속이는 것도 바로 알아 승리하기도 한다. 직장 동료와 의견 차이로 서먹해졌는데 기도 중에 주님께서 내가 영혼 사랑하지 못한 점과 용서하지 못한 점 그리고 불평불만 하던 것을 생각나게 하셔서 얼마나 회개했는지 모른다.
하나님과 사이를, 사람과 사이를 갈라놓는 마귀역사에 당하지 않으려고 기도했더니 최근 그 동료와 사이가 많이 좋아졌다. 주님이 하신 일이다.
타지에서 살아가며 신앙생활 하는 일이 힘들 때도 있지만, 내게 필요한 것을 나보다 잘 아시는 주님께서 먼저 구하게 하시고 응답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부흥성회 말씀 듣고 신부의 믿음 더 사모
| 안진영(81여전도회)
학창 시절까지 교회를 다니다 한동안 주님과 멀어져 살았다. 교회에 발길을 끊었으나 주님께서는 찬양을 통해 나를 위로하시고 언젠가 주님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소망을 마음에 두도록 하셨다. 6년 전 구로구로 이사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로 연세중앙교회를 찾아와 오랜만에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메말라 있던 내 심령에 폭포수 같은 은혜를 듬뿍 받았고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 하기로 결신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부담스럽고, 담임목사님의 애타는 말씀이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당부가 아닌 간섭처럼 느껴졌다. 마귀역사였다. 여전도회원들이 진실하게 섬겨 주고 권면해 주는 것도 편하지 않았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집을 성전 삼아 예배드리면서 마음에 곤고함이 찾아왔다. 감사하게도 예전 부흥성회 설교 말씀을 로고스박스로 오전과 오후에 송출해 주어 2018년 직분자세미나 설교 말씀을 들었다. 신기하게도 처음 듣는 말씀 같았다. 분명 3년 전 저 자리에 앉아 설교를 들었을 것인데 담임목사님 말씀이 새롭고 무척 은혜가 돼 시간마다 귀 기울여 들었다.
그제야 성도 영혼이 믿음에서 이탈할까 봐 애타게 걱정하는 주님의 마음, 그리고 담임목사님의 마음이 전해졌다. 목사님의 설교든 교우들의 권면이든 간섭이 아니라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애달픈 당부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다. ‘왜 깨닫지 못했을까. 권면과 당부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얼마나 영적으로 성장했을까.’ 후회와 부끄러움이 마음을 휘감았다.
요즘 들어 담임목사님께서는 신부의 믿음에 관해 자주 말씀하신다. 주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므로 영적생활 하는 데 마음을 쏟고 매일 기도하고 있다. 담임목사님께서 매일 두 번씩 연세가족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문자도 주님이 내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처럼 들려 날마다 마음을 추스르고 새롭게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교회에 가지 못하지만 집을 성전 삼아 예배드리고 기도하면서 주님을 뜨겁게 만나고 영적세계를 체험하고 있다. 가장 힘들고 안 좋은 환경 가운데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복된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어머니 정신 맑아지고 신앙생활 시작하셔
| 이희정 성도(54여전도회)
남동생 내외가 김해에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어머니가 낯선 행동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을 나가 안 들어오시고, 집밖에서 지팡이를 휘두르다 경찰서에 가시기도 했다며 수화기 너머의 남동생 목소리가 많이 지쳐 보였다. 남동생과 올케가 안쓰러워 지난해 초부터 큰언니 집에 친정엄마를 모셔왔다가 3월부터는 우리 집에서 모시고 살았다.
자식으로서 정성껏 돌봐 드려야 하는데도 하루 종일 혼잣말을 하고 역정을 내는 친정엄마를 볼 때마다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또 엄마는 건강도 안 좋은 데다 신경통도 심해 예배 시간에 무척 산만했다. 불면증을 앓아 10년 전부터 독한 수면제를 매일 10알 가까이 먹어야 했다.
김해에서 가끔 교회를 다니던 친정엄마와 로고스박스로 집을 성전 삼아 예배드리고 기도했다. 담임목사님 설교 말씀과 찬양 영상을 하루 종일 틀어 놓아 어머니가 영적인 소리를 듣게 했다. 지난해 4월에 시작한 ‘가정에서 함께하는 전 성도 40일 그리고 10일 작정기도회’ 때는 매일 어머니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해 드렸다. 그러자 예배드리기를 거절하거나 거칠게 말씀하시던 게 어느 날부터 없어지고 우울증 약도 덜 드시면서 편안하게 주무셨다. 울적해 있던 얼굴이 환해지고 혈색도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나도 큰 은혜를 받았다. 연세중앙교회에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어머니를 통해 영적인 체험을 생생하게 했다. 주님의 은혜다.
가을 즈음에는 친정엄마가 수면제도 더는 드시지 않을 만큼 건강해지고 신앙생활도 활기차게 하시면서 김해로 다시 내려가셨다. 어머니 정신이 맑아지면서 알게 된 것은 어머니가 수십 년 전 아버지의 핍박도 이겨 가며 신앙생활 하시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
비신자 남동생은 몇 달 사이 어머니의 변화에 깜짝 놀라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인정했고, 교회에 출석하던 올케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윤석전 담임목사님 설교 말씀을 찾아 들으면서 은혜받고 있다. 아직 예수 믿지 않는 남편도 장모님의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고 신앙생활에 마음 문이 많이 열렸고, 딸은 로고스박스를 틀어 놓으면 툴툴거리곤 했는데, 이제 엄마의 신앙생활을 인정해 준다.
지난 몇 달간 친정엄마를 섬기면서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교구장님이나 교우들이 위로해 주고 같이 중보기도 해 주어 주님이 일하시도록 힘을 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남동생과 우리 식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도록 더 기도할 것이다. 기도 들으시고 은혜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동해경 이수진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68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