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12-08 16:37:02 ]
인생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영적생활 최우선할 수 있도록
담임목사님과 믿음의 교우들이 권면하고 섬기고 기도해 줘
오늘까지 믿음 지켜 올 수 있어 이 모든 것, 주님이 하셨습니다
<사진설명>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소희 집사와 남편 김국열 성도(35남전도회). 그리고 두 아들 김준휘(12세), 김제휘(11세).
우리 교회처럼 마음껏 영적생활 할 수 있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주님처럼 섬겨 주는 이들이 항상 가까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로에 서 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나를 붙들어 준 것은 주님 심정으로 애타게 설교 말씀 전하시고 연세가족들을 섬겨 주시는 담임목사님을 비롯해 믿음의 동역자들의 신실한 권면과 기도 그리고 그 진실한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좋은 때에 응답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 덕분이었다.
남편은 통신설비제조업 일을 하고 있다. 직업 특성상 해외 근무가 잦다. 남편의 직장근무 환경에 맞춰 가족 모두 남편을 따라 국외로 이주하려고 했으나, 나와 자녀들은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을 택했다. 영적생활 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았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외국에 나가서도 한국에서만큼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는 것 아닌가. 또 우리 교회처럼 성도 영혼을 사랑하고 섬겨 주는 성령 충만한 교회를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므로 남편만 해외로 보내는 것이 안쓰러웠으나 결단을 내린 것이다.
남편은 두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회사에 취업해 현재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 5학년이 되기까지 거의 해외에서 지냈다. 남편과 떨어져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아이들도 나도 지치고 힘들었다. 아이들이 커 갈수록 아빠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고, 나 역시 홀로 두 아들을 양육하며 지내려니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2년 전, 고민 끝에 남편이 있는 나라로 이주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남편을 만나러 출국해 아이들이 전학 갈 학교를 답사하고 거주할 집도 알아봤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아이들이 현지어 학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등 이주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갑자기 터진 코로나19 바이러스! 전 세계가 혼돈에 빠졌고, 외국으로 출국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모든 계획이 무산됐다. 기껏 준비해 놓은 일들이 무산되니 허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일 줄이야.
영적생활 최우선해 믿음의 결단을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도록 코로나19 사태는 사그러들 줄 모르고 계속 이어졌다. ‘코로나가 터지다니…. 혹시 주님이 우리 가족의 이주를 막으시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리 교회에서는 담임목사님과 연세가족들이 소통할 창구로 유튜브 생방송 ‘예수가족 만남의 잔치’를 진행했다. 내 영혼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영적생활이 달린 중요한 문제였기에 ‘예수가족 만남의 잔치’에 사연을 보내기로 했다. 혹시라도 육신의 생각에 치우쳐 잘못된 판단을 내릴까 염려하며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통해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는 담임목사님께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감사하게도 나의 간절한 사연이 채택됐고 담임목사님께서 진실하게 상담해 주셨다.
“육신의 유익을 보면 남편을 따라 신앙의 불모지로 떠나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영적생활이라는 것은 신앙의 불모지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신앙생활 유지는 주님 나라 갈 때까지,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당면한 문제가 크게 보이지만 이국에서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면 온 가족의 영혼이 위험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시간 시간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 없다면, 또 잘할 수 있는 영적환경이 없다면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잘할 수 없습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네 식구의 영혼이 달린 일이고 후손까지 그곳에서 살게 된다면 후손들 영혼까지 달린 큰일입니다. 사랑하는 한소희 성도님은 지금껏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 은혜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좋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까지 기도한 것이 있다면 반드시 응답이 있으니, 하나님이 응답하실 줄 믿고 신령한 결정을 내렸으면 합니다. 지금은 남편에게 영적인 다급함이나 갈급함이 없겠으나 아내의 기도가 있기 때문에 남편도 언젠가 주께로 돌아올 수 있다고 봅니다.”
담임목사님의 진실한 권면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서 우선순위가 바로잡혀 갔다. 번잡하던 생각도 착착 정리됐다. 최우선 순위는 바로 영적생활! 아이들의 장래며 훗날 영혼의 때를 위해서라도 신앙생활을 잘할 보장이 있는 한국에 남아 있어야 했다. 해외로 이주하고자 하는 마음을 접고 다시 남편을 위한 기도에도 불이 붙었다. “남편이 한국에 꼭 오게 해 달라”고, “이곳에서 가족이 함께 영적생활하게 해 달라”고 말이다.
오랜 세월 남편 영혼 구원을 두고 애타게 기도해 왔다. 남편이 우리 교회에 등록한 지도 어느덧 12년째. 하지만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내 구주로 만났다기보다 아내의 당부에 이끌려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3년 전, 당시 베트남에서 근무하던 중 여름휴가를 이용해 흰돌산수양관 하계성회에 참가했다. 그때 뜨거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며 남편은 방언은사를 받았고, 그해 침례까지 받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신앙생활 하려 했으나 얼마 안 가 다시 해외 일터로 출국해야 했다. 은혜받으려고 하면 출국하고, 다시 귀국해 은혜받으려 하면 또 출국하고….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매번 놓쳐 버리는 남편의 영혼이 안타까웠다. 상담을 통해 담임목사님 말씀을 듣고 영혼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았고, 목사님의 조언을 깊이 새겨듣고 기도 방향을 새롭게 잡았다.
“주님, 우리 남편 살려 주세요. 이대로 예수와 멀어져 멸망을 향해 가면 안 돼요. 한국에서 영적생활 할 환경을 열어 주세요!”
남편과 함께 예배! 주님이 하셨습니다
코로나가 터진 지 1년이 지났다. 지난봄,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웬일인지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사정을 들어보니 회사의 경영주가 바뀌면서 “외국인은 다 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한국인인 남편 역시 당장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눈앞이 깜깜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남편은 서둘러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당장 우리 가족의 생계가 달렸기에 꼭 붙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불합격 소식을 듣자 가슴이 덜커덩 내려앉았다. 걱정 근심 염려에 머리가 아파왔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런데 그때 마침 하루에 2번씩 연세가족에게 보내 주시는 담임목사님의 사랑의 문자가 도착했다.
“사랑하는 연세가족이여, 주님은 우리의 육신이 살 수 있는 날을 또 하루 주셨어요. 오늘 하루의 삶도 영육 간에 범사가 잘되고 형통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눅12:29~31). 오늘 문자에 쓴 누가복음 말씀은 주님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육신의 의식주에 관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며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까마귀도 새도 기르시는데 너희가 새들보다 얼마나 귀하냐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당연히 저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오늘 하루 연세가족의 심신에 노동의 대가가 충분하기를 기도합니다.”
담임목사님의 문자를 읽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치 내 사정을 다 아신 듯 세세하게 심령을 헤아려 주시는 사랑의 문자. ‘맞아, 주님이 다 책임져 주시는데 내가 왜 걱정염려를 붙들고 있지.’ 내 안에 가득 차 있던 걱정은 목사님의 문자를 읽자마자 사라지고 평안이 밀려왔다. 의식주 걱정을 내려놓고 오로지 남편이 한국에 오기만을 더 애타게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연봉, 조건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남편의 영혼만 살릴 수 있다면!
그러던 중 지난 9월, 한국의 한 기업에서 남편에게 연락을 주었고 남편은 귀국해 이전 회사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 기도한 대로 응답하시고 우리 가정을 책임져 주신 것이다. 게다가 오랜 세월 기도한 응답으로 남편이 한국으로 오게 되다니! 마음만 먹으면 일찍 퇴근해 삼일(수요)예배, 금요예배까지도 드릴 수 있었다. 기도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 하늘의 아버지(마7:9~11)께 무척 감사했다.
드디어 남편이 영적생활 할 환경이 열렸다. 지난 9월 말, 집에서 ‘줌’을 이용해 양방향으로 삼일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담임목사님이 축도해 주실 때, 현관문이 덜컥 열렸다. 남편이 자가격리를 마치고 집에 온 것이다! 너무나 반가운 남편! 그대로 축도를 함께 받았다.
“타국에서 혼자 너무 힘들었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사람 온기도 없고, 차디찬 공기에 TV 소리만 울려 퍼지고…. 무엇이라도 의지하고 싶어 한인교회도 나가 봤지만 코로나19 탓에 예배드리는 데 한계가 있었어.”
남편도 그동안 타국에서 홀로 많이 힘들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원래 힘든 티 전혀 내색 않던 사람인데…. 안쓰러웠다. 남편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 가족이 다시 뭉쳤으니 함께 신앙생활 잘해 보아요.”
감사하게도 때마침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방역조치가 완화돼 현장예배에 갈 길도 열려 남편과 함께 예배드리러 가고 있다. 영적생활 할 환경을 하나하나 열어 주신 주님께 감사하다. 그동안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만 기도와 믿음의 권면이 힘이 돼 견딜 수 있었고, 결국 다 응답 받아 그 응답의 복을 누리고 있다.
예수께서 피 흘려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셔서 저주와 사망에서 우리 가족을 구원하시고, 성령과 말씀이 충만한 우리 교회에서 영적생활 하게 해 주신 주님 은혜에 감사한다. 내 영혼이 살려면, 우리 가족 영혼이 살려면 결국에는 내 영혼의 양식을 공급해 줄 생명 있는 교회에 있어야 함을 새삼 다시 깨닫는다. 이 생명의 강단에서 절대 떠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이 모든 일을 하신 주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손미애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72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