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01-26 16:15:45 ]
바라고 바라던 부모님 구원받고
올 초 쌍둥이 딸도 건강히 출생
믿음의 가정 안에서 행복 넘쳐
애타게 기도하도록 인도한 분도
응답의 복 주신 분도 주님이시라
평생 기도 응답으로 살 것 다짐
김국일(해외선교국)
하루아침에 찾아온 비극적인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모습을 목격한 어머니도 큰 충격을 받아 병원생활을 해야만 했다. 당시 열 살, 아홉 살이던 나와 동생은 하루아침에 가정이 깨지면서 외할머니와 외삼촌 댁에 각각 맡겨진 채 떨어져 살아야 했다.
그리고 30여 년이 흘렀다. 장성했으나 살아온 길이 너무 달랐고 어릴 적 부모님의 부재는 서로에게 아픈 기억이었기에 동생과 연락을 끊은 채 지냈다.
몇 년 전부터 어머니 연세가 많아지고 거동도 못 하게 되시자 요양병원에서 잘 받아 주지 않았다. 그동안 입원해 있던 요양병원에서도 퇴소를 요청받았고, 퇴소 조치를 하려고 보호자에게 연락하던 중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게 됐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실 때는 종종 교회에 모시고 와서 함께 예배드리고 목사님께 기도도 받았다. 그런데 동생이 모시면서부터 어머니를 교회에 모셔 오기가 쉽지 않았다. 동생은 “어머니를 왜 교회에 데리고 가느냐”며 “집에 와서 어머니 뵙는 건 괜찮지만 외출은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앙금 탓에 내게 불만 가득한 동생은 어머니께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마다 완강히 거부했다.
기도하고 섬기며 가족 구원 응답받아
그러던 중 2012년 ‘50일 그리고 10일 작정기도회’가 시작됐다. 사랑하는 어머니, 그리고 내게 강퍅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영혼 구원을 응답받고자 간절하게 작정기도를 했다.
그런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막내 외삼촌이었다. 이런저런 안부를 묻다가 “연세중앙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삼촌도 한번 와 보세요”라고 말했더니 외삼촌의 심령이 몹시 갈급했던지 단번에 가 보겠다고 했다.
그 주 주일에 외삼촌이 살고 계신 경기도 광주로 직접 모시러 갔고, 외삼촌은 이후에도 교회에 와서 매주 예배드리시더니 하나님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 무엇보다 외삼촌은 평탄치 않게 살아온 내가 예수를 만난 후 반듯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예수를 구주로 만난 막내 외삼촌은 그동안 소원하게 지내던 외가 식구들에게도 연락해 “내가 정말 힘들었을 때 국일이가 전도해 줘서 고마웠다”며 “국일이가 예수 믿으며 무척 행복해 보였다”고 내 근황을 전하시기도 했다. 주님이 외삼촌 영혼을 구원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수록 다른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시급했다. 가족 구원을 두고 항상 기도했더니 막내 외삼촌에 이어 3년 전에는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전도할 수 있었다.
장인어른은 몸이 불편하셔서 청평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장인어른이 예배드리시도록 주일 아침마다 청평으로 모시러 갔다. 주일 2부예배를 드린 후 다시 청평에 모셔다드리기를 1년여. 매주 진실하게 섬겨 드렸더니 장인어른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소천하셨다. 소천하시기 직전에는 교구목사님과 교구장께서 방문해 자정이 한참 넘은 시간까지 기도해 주시면서 천국 갈 믿음을 끝까지 가지도록 복음을 전해 주셨고 장모님을 위로해 주시기도 했다.
교회에 대해 강퍅하셨던 장모님도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 문이 열려 우리 교회에 오셨다. 평소 설이나 추석마다 성회에 참가한다며 처가에 오지 않아 서운해하셨는데,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듬뿍 받으신 후 “사위가 왜 신앙생활을 우선했는지, 또 장인을 구원받게 하려고 그렇게 애썼는지 알겠다”며 이해해 주셨다. 설·추석마다 큰집에서 제사를 드렸는데 그것도 끊고 이제 더는 제사 음식도 만들지 않겠다고 선포하셨다. 요즘도 장모님과 기도 제목을 나누면서 서로 기도하고, 만날 때마다 신앙적인 대화를 나눈다. 할렐루야!
어머니 소천하면서 동생 마음 문 열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던 지난해. 비보를 전해 들었다. 어머니가 소천했다는 소식을…. 살아생전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말씀드렸다.
“내 소원은 어머니가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 앞에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어 천국 가는 거야. 그동안 가족에게 쌓인 것도 모두 용서하시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아멘” 하며 고개를 끄덕이셨고 복음도 잘 받아들이셨다. 어머니의 영혼 구원은 제1 기도 제목이었다. 기도할 때마다 어머니께 천국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했다. 지인들과 소속 부서에도 기도 제목으로 늘 내놓으면서 중보기도를 요청했고, 아내도 중보기도 제목에 시어머니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다. 청년회에 소속하던 시절, 담당목사님과 청년회장이 어머니를 찾아와 복음을 전해 주시고 기도도 해 주셨다.
수많은 이와 어머니 영혼 구원을 위해 함께 기도한 지 수년째. 어머니의 소천 소식을 듣자 놀라기보다는 덤덤했다. 그동안 기도한 응답을 감격해하며 오히려 기뻤다. ‘드디어 이 땅에서 고생을 마치고 영원한 행복이 있는 천국에 가셨구나.’
당시 동생과 전혀 연락을 안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소천을 계기 삼아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동생은 슬픈 기색이 없는 나를 보더니 화를 냈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형은 슬프지도 않아?” 죽음이 끝이라고 여기는 동생으로서는, 어머니가 천국에서 평안하게 지내실 생각에 기뻐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장례식장에서도 동생은 내게 냉랭했다. 모든 장례 절차는 15년간 어머니를 모신 동생의 결정으로 진행됐다. 다행히도 예수 믿는 외삼촌의 의견을 받아들여 교회식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장례식장은 썰렁했다.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하시느라 왕래하는 지인이나 친척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친한 지인들에게만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교회 성도들이 알음알음해서 많이 방문해 주셨다. 코로나19 시국이라 조문하는 일도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발걸음해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해 주셨다. 담임목사님께서도 전화로 위로해 주셨다.
나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자 동생이 의아해했다. 사흘간 교회 성도들이 다녀갈 때마다 동생은 매번 공손히 인사하고 교역자께서 기도해 주시면 “아멘” 하며 함께 기도도 했다. 참으로 하나님이 일하신 일이 분명했다. 사흘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나를 향한 동생의 날 선 마음이 서서히 풀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나에 대해, 그리고 교회에 쌓인 오해와 편견이 무너지고 있는 듯했다. 그간 기도해 온 것을 주님이 응답해 주신 것이다.
장례를 치른 후 동생과 몰라보게 사이가 좋아졌다. 안부를 주고받으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연락하라고 할 정도로 예전과 다른 우애를 느끼고 있다. 신앙생활 하면서 항상 했던 기도이자 가장 간절했던 어머니 영혼 구원의 바람이 응답되면서 응어리졌던 동생과 사이도 더불어 풀어졌다. 동생 영혼이 구원받을 문도 열린 듯하다. 눈물로 간구한 기도에 응답하신 주님과 어려울 때 힘과 위로가 돼 준 연세가족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1월 첫날 쌍둥이 출산, 하나님의 큰 응답
지난해 어머니를 천국 보내드리며 주님 은혜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면, 2022년은 1월 1일 첫날부터 딸 쌍둥이를 출산하며 주님의 축복으로 시작했다.
결혼하고 아기를 바로 갖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잘 생기지 않았다. 작정기도 하면서 간구하기를 3년째, 2018년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첫째가 태어났다. “생육하고 번성하라”(창1:28)는 축복의 말씀에 따라 바로 둘째를 가지려 했으나 기도로 준비하지 않아서인지 유산을 몇 차례 했다. 우리 부부는 다시 작정기도에 들어갔다. 지난해 작정기도회에서 기도하는데 얼마 안 가 다시 임신을 했다. 임신도 감격스러운데 더욱 놀랄 일은 쌍둥이라는 것. 아기집이 하나여서 일란성 쌍둥이였는데, 감사하게도 집 안에 양막이 두 개로 나눠져 아기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우리 부부와 5세 딸아이는 쌍둥이 임신 사실을 안 날부터 출산할 때까지 쌍둥이를 위해 밤 10시마다 30분씩 작정기도를 했다. “첫째, 축복이·평안이(태명)가 정한 날 정한 시간에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 주세요. 둘째,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고 아무 문제없이 출산해 아무 탈 없이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셋째, 아기 엄마도 출산 후 후유증 없이 건강을 속히 회복하게 해 주세요. 넷째, 큰아이가 동생들 잘 챙기고 사랑하게 해 주세요…” 등 12가지 기도 제목을 구체적으로 기도했고, 막달 무렵에는 딸아이도 기도문을 함께 따라 했다.
배 속 아가들이 얼마나 순한지, 임신 기간에 큰 문제 없이 열 달을 채워 갔다. 출산일은 지난해 12월 27일이었지만 여러 이유에서 조금만 더 버텨 해를 넘겨 낳고 싶었다. 병원에서는 아기들이 더 자라지 않는다면 해를 넘겨 출산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다행히 배 속 아기들이 잘 따라주어 1월 1일을 맞이했다.
그날 새벽, 수술실로 들어가려는데 아내가 불안한지 기도해 달라고 했다. 첫애 출산 때 너무 고생했고, 또 평소 빈혈이 심한 터라 출산할 때 피를 많이 쏟을 것이기에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응급상황을 대비해 수혈팩을 미리 준비해 뒀지만 아내는 여전히 불안한 듯했다. 내가 기도해 준 후, 청년 시절부터 알던 노량진성전 교구장께 전화해 기도해 주시기를 요청했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교구장님은 새벽기도 시간이었다면서 흔쾌히 기도해 주셨다. 아내는 평안한 마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갔고, 기도 덕분인지 10분 만에 쌍둥이를 출산했다. 또 출산할 때 피를 많이 쏟지 않아 첫째 때와 다르게 회복이 빨랐다.
쌍둥이는 흔히 만출 시기를 37주로 보는데 축복이와 평안이는 38주 2일이라는, 채울 수 없는 날짜를 채우고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 덕에 인큐베이터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작정기도 한 기도 제목 모두 빠짐없이 주님께서 세세하게 응답해 주신 것이다. 아내가 속한 여전도회 직분자들이 출산 선배로서 구체적으로 기도해 주고 섬겨준 것도 기억나 참으로 감사했다.
큰딸은 동생들이 태어난 후에도 기도가 일상이 됐는지 자기 전에 자기가 먼저 말한다. “아빠, 지금 나 잘 건데 기도해 줘요.” 큰딸이 신앙적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모든 것이 주님 은혜이다.
주께서 쓰고자 할 때 쓰임받도록 기도
지금 돌이켜 보니 내 삶은 교회의 ‘믿음의 스케줄’과 항상 함께했다. 온전히 참석하지 못 할지라도 교회에서 진행하는 믿음의 스케줄에 항상 따라가려고 했다. 특히 “기도하라”는 명령에는 꼭 순종하려 했다. 직장이든 집이든 길가든, 어디에서든 기도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 가족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도 기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자녀가 하루를 마감하기 전, 잠자리에서라도 꼭 기도하고 재워야겠다고 다짐한 후 매일 실천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기도하여 받은 응답의 축복으로, 주님의 은혜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 선교에 비전이 있어 몇 해 전부터 해외선교국에 소속해 있다. 하나님께서 세계로 보내 주실 그 때를 기대하며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할 때 다녀올 수 있도록, 연세중앙교회에서 들은 예수의 십자가 피의 복음을 세계 열방의 만나는 사람마다 반드시 전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더불어 가정, 소속 부서, 교회 어디에서나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짧게라도 내가 충성의 자리에 결코 빠지지 않도록 중보기도 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다. 오늘도 기도하며 내 삶을 모두 주님께 맡긴다. 이 모든 일을 하신 주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손미애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73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