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3-05-19 17:04:53 ]
<사진설명> 이신희 집사 가족사진. 왼쪽부터 남편 유석 집사와 이신희 집사. 셋째 승언, 둘째 세언, 넷째 리언, 큰아들 지언, 막내아들 강언.
자녀가 영육 간에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게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특별히 예수 믿는 부모들은 자녀 이름을 지을 때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이 쓰실 위대한 인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이름에 복된 소망을 담는다. 가정의 달을 맞아 믿음의 부모가 금쪽같은 자녀들을 진실하게 축복하며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은혜받은 간증도 나눠 주었다.
| 이신희(68여전도회)
우리 맏이 지언(智言)이. 아빠가 성경을 읽다가 “지혜로운 말씀”이라는 구절에 감동받아 지은 이름이야. 이름처럼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세상을 이기고 주님께 쓰임받기를! 네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엄마도 늘 기도했단다.
고등학생인 둘째 세언(世言)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말씀처럼, 세상 끝까지 말씀 전하길 바라는 전도 소망이 담긴 이름이야. 성경에도 이름에 담긴 뜻이 무척 중요하다고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성경 속 인물들의 이름이 바뀐 것처럼 세언이가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로 자라기를 바란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대인관계에 쑥스러움이 많아졌지만, 어렸을 때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도하고 애타게 기도하던 우리 딸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어.
셋째 승언(勝言)이를 처음 만난 날이 지금도 생각난다. 갓 태어난 아이인데도 어쩜 그렇게 당당해 보였는지! 얼굴에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결연함까지 느껴졌는데, 마침 아빠가 ‘하나님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라’며 ‘승언’이라는 이름을 지어 엄마도 고개를 끄덕였어. 지어 준 이름처럼 어디 가서도 당당하게 의견을 말하는 네가 대견하기도 하고, 주님 나라 가는 그 날까지 하나님 말씀 붙잡고 영적생활 승리하기를 기도해.
올해 열한 살인 넷째 리언(理言)이는 ‘하나님 말씀으로 스스로를 다스려라’는 뜻을 담아 이름을 지었어.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과 마음을 지키고 다스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커가면서 알게 될 거야. 세상의 수많은 유혹과 미혹을 분별하도록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자신을 잘 다스리길! 그렇게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들어질 때 주님이 크게 쓰시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어.
그리고 막내아들 강언(强言)이. 여섯 살 늦둥이여서 유약하지 말라고, 말씀 안에서 영육 간에 강건하기를 바라며 이름을 지었단다. 그런데 이름과 달리 엄마 껌딱지(?)인 데다 백일 남짓일 때 고열로 입원하기도 하고 이곳저곳 아프기도 해서 어려서부터 고생이 많았어. 그러나 이를 통해 더 기도하고 주님이 깨끗하게 고쳐 주셨으니 감사하단다. 우리 막내가 우리 집 비타민 역할을 톡톡히 해 주는 덕분에 식구들 모두 기뻐하고 힘든 일도 툴툴 털어 버리게 되네. 강언이가 주님만 의지하며 영적생활도 강건하게 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큰 인물이 되길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어.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오늘도 진실하게 기도하고 축복한다. 자녀 다섯을 키우느라 다른 집에 비해 더 분주하고 마음 쓸 일도 많았겠으나, 자녀가 많다 보니 자녀를 양육하면서 받는 은혜도 무척 많다.
또 형제가 많아 자녀들에게 유익한 점도 있는데, 흔히 사춘기라 부르는 성장통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방문을 잠근 채, 아니 마음 문을 걸어 잠근 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게 사춘기의 흔한 모습인데, 식구가 많아 늘 “하하호호” 훈훈하고 손아래 동생들 챙기느라 사춘기를 느낄 만한 여유가 없었는지 자녀들이 학교생활, 신앙생활, 가정생활에서 큰 부대낌 없이 커 가는 게 감사하다.
아이들 스스로 질풍노도의 감정 변화를 겪기도 했을 것이나, 주님이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항상 붙잡아 주고 함께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춘기 진통으로 아이들이 방황하고 부모와 단절되는 모습들이 많이 안타까웠는데 이런 아픔 없이 자라 주는 아이들에게 고맙고 주님께 감사드린다. 자녀들이 각자의 이름처럼 가장 중요한 영적생활을 승리하고, 강건하고 평안하게 자라 주는 것이 가장 큰 은혜이다. 이 모든 일을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79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