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3-09-21 17:23:27 ]
추석 연휴를 앞두고 영적 전쟁을 치르는 성도들이 있다. 우상숭배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비신자 가족들 사이에서 신앙을 지키고자 수년째 기도하는 이도 많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기도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연세가족들 모습을 소개한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가 우상숭배인 줄 알아
간절히 기도하자 제사 끊어지고 시어머니 구원받아
어머니는 토요일만 되면 어린 나를 목욕시켜 깨끗하고 정갈하게 해서 교회학교에 보내셨다. 우리 집이 예수 믿는 가정도 아니고 친정어머니 또한 교회에 발걸음조차 하지 않으셨으나 나만은 꼭 교회에 보내셨다. 청소년기에는 나 스스로 교회에 출석하곤 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일에 분주하다 보니 교회를 오가던 발길이 뜸해졌다. 얼마 후 비신자인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교회 다니면 결혼할 수 없다”라는 남편의 말에 응해 비신자 가정에서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다.
우상숭배의 결과는 저주와 사망
시댁은 1년에 다섯 번씩 제사를 지내고 무속신앙을 가까이하는 가문이었다.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면서도, 무당에게 돈을 보내고 집에서 작은 상을 차려놓고 빌면서 무속을 의지하기도 했다.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불안한 미래에 대해 그저 막연한 위로를 받을 뿐이었다.
예부터 ‘고추, 당추보다 더 매운 시집살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시부모님이 아무리 따뜻하게 대해 주셔도 시집살이가 쉽지 않은 일이기에 나온 말일 것이다. 나 또한 시집살이가 쉽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밝은 성격이기에 누구에게 속내를 내비치지 않고 ‘나 혼자 참고 말지’라며 견디곤 했으나, 때로는 나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시어머니를 대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시어머니와 사이가 대체 무엇 때문에 가로막힌 것인지 알고 싶어 나 또한 점집을 찾아가곤 했지만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무당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희한한 말을 했다. “이런 데 다니지 마. 당신은 예수 믿어야 될 사람이야. 교회 다녀야 될 팔자야.” 지금 생각해 보아도 어떻게 교회 다니라는 당부를 점쟁이가 건넸을까 의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였는지 너무나 단호히 말하는 그 말에 점집을 다니던 발길을 끊게 되었다.
이어 교회에 다니고 있지 않았으나, 우상숭배가 복(福)이 아님도 조금씩 알아갔다. 시어머니의 언니인 시이모는 무당 일을 봐주던 분이었는데 시이모 주변 사람이 갑자기 중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시이모 딸도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남편의 사촌 아주버님 집안에 무당이 둘이나 나왔고 남편의 형인 시아주버니도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시댁식구 대부분 무속과 관련이 있고 정신과 병증을 앓는 이런 기막힌 현실 앞에 내 아이들도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늘 두렵고 불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상숭배자에게 삼사 대에 저주가 임한다”(출20:3~5)는 성경 말씀처럼 우상숭배 한 결과는 저주와 사망뿐이었다.
우상숭배 파한 강렬한 영적 체험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 사는 권사님과 아는 사이가 되었다. 권사님과 자주 만나기도 했으나, 우리 집 사정에 대해 다 말하지는 못했다. 하루는 권사님이 우리 집에 처음 오시게 되었다. 그런데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아이들 살리고 싶으면 꼭 예수 믿어야 한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순간 ‘우리 집 사정을 전혀 모르시는데도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을 보내주신 것에 감사했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엄마로서 못 할 것이 무엇이랴. 골육친척이 알 수 없는 정신질환과 불치병에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 고통받으면 어쩌랴’는 다급함에 새벽예배를 드리게 됐다. 당시 하던 일이 너무나 분주해 새벽예배를 드리려면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잠을 잘 수 없어 피곤했지만, 내 아이들을 살린다는 일념으로 기도하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주님이 나의 힘든 사정을 다 아시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예수 믿는 지인을 동역자로 붙여 주시기도 했다. 지인을 통해 구역예배에도 참석하며 주님과 사이를 조금씩 열어 나갔고, 당시 새벽을 깨워 간절히 올려 드린 기도를 주님이 들으시고 천대의 복 받는 가정으로 변화되도록 착착 응답하셨다.
그즈음부터 예배드리고 올 때면 시어머니는 교회 다니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셨고 매운 시집살이도 여전했다. 추석 차례 준비를 하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 부대끼는 일이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남편이 더는 참을 수 없다며 다 차려진 상을 엎어 버리기도 했다.
우리 가정은 어떠한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절대 예수 믿을 일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이 바뀌도록 한 걸음 한 걸음 일하고 계셨다. 시어머니께서 예뻐하는 두 손주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다가 새벽만 되면 일어나 “할머니도 새벽예배 다녀오세요. 할머니 교회 안 가면 할머니와 말도 안 할 거예요”라며 할머니를 졸라 댔다. 당시 11세, 10세 남매가 매일 새벽마다 할머니 방에 가서 졸라 대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평생 우상숭배를 이어오던 시어머니가 나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랜 세월 우상숭배를 해온 탓인지 시어머니가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영적 싸움이 치열했다. 시어머니는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더니 어디서 향내가 나고 목탁 소리가 들린다며 힘들어하셨다. 목사님께서 어머니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 연세 많은 어머니에게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부목사 두 분과 집사님들까지 해서 5명이 붙들었는데도 몸부림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새벽예배를 마친 후 권사님께서 어머님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자 시어머니가 갑자기 구역질을 하면서 피를 토하기도 했다.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다 쓸 만큼 많은 양을 받아 내야 했다. 교회에 갈 때마다 기도해 드리면 똑같은 증상이 이어지니 어머니도 무척 당황해하시며 그 원인을 알고 싶어 검진도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만 나왔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무언가 영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계속 경험하다 보니 나도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면서 성경도 읽고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더 애썼다.
몇 대째 무속신앙을 이어오던 시어머니도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신 후 열심히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옆에서 내가 보아도 신기한 일, 아니 주님이 하신 일이었다. 교회에 가지 않으려고 할 때면 손주들의 성화에 떠밀려 교회를 가셨고, 우상숭배 하던 어머니가 교회에 나가는 모습에 남편도 “나도 교회에 나가 볼까” 하며 새벽예배에 참석했다.
시어머니는 교회에 계속 출석했지만 영적인 방해는 여전했다. 어느 날 권사님께서 시어머니께 “예수님께서 어머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믿으시나요?”라고 묻자 어머니는 그 사실을 믿는다고 바로 시인하셨다. 그 순간 심한 몸부림을 치며 다시 피를 토하고 눈물과 콧물 그리고 소변까지 지릴 정도로 난리를 치렀다. 마귀역사가 어떻게든 시어머니를 지옥에 데려가려고 발악하는 듯했다.
얼마 후 추석이 다가왔다.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방에서 뛰쳐나오시며 다급하게 칼을 찾았다. “내 몸에 귀신이 있다”라며 자기 몸을 해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어머니를 꼭 끌어안고 붙잡았지만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어 권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권사님은 우리 집에 서둘러 와서 어머니를 제지해 눕혀 놓고 기도해 주었다.
그러자 내 눈에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 살 안쪽으로 불룩불룩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 후 어머니의 증세가 잠잠해진 후 권사님은 집안의 우상숭배를 끊어야 하며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고 했으니 우상숭배 한 제기를 다 버리자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갑자기 아기처럼 엉엉 울면서 몸부림을 쳤다. 어머니가 직접 버려야 한다며 권사님이 거듭 독촉하자 결국 쓰레기 봉지에 그 많던 제기를 다 버렸다. 무속신앙에 찌들어 있던 가문인 데다 복음이 들어가기 힘든 강퍅한 우리 가족에게는 이처럼 영적 세계를 확실하게 경험하게 함으로써 속히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었다.
이 모든 일을 하신 주님께 영광을
자녀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여름과 겨울에 수원흰돌산수양관 성회에 참가했다. 윤석전 목사님에게 생명의 말씀을 들으며 아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바르게 성장해 갔고, 나중에 대학교를 서울로 가게 되면 꼭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결국 딸아이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해 연세중앙교회 청년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군인인 남편은 포항에서 근무하다가 4년 전 전역 후 서울에 직장을 잡아 이사하게 되었다. 경기도에 집을 마련해 근처 교회에 등록해 신앙생활 하고 있었는데, 딸아이가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같이 신앙생활 하자며 늘 독려했다. 먹고사는 게 바쁘다 보니 딸의 간절한 권면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1부예배에 한 번만 참석하자”고 애원하는 통에 연세중앙교회에 왔다가 총괄상임목사님 설교 말씀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다.
당시 1분 1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집중해 말씀을 듣다 보니 그동안 하나님께 은혜받아 놓고도 감사하지 못한 죄,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에 빠져 산 죄를 깨달아 회개했고, 이후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생명의 말씀을 들을수록 말씀 듣기를 더 사모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사모함도 생겼다. 예배드리기를 너무나 사모하다 보니 하던 일을 줄여 나갔고 오랜만에 주일성수도 할 수 있었다. 할렐루야!
남편도 연세중앙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온전히 예배드리곤 했다. 아직 남편에게 연약한 부분도 있지만 남편의 연약한 모습에서 내 허물도 발견하며 하나님이 은혜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아내인 나를 돕는 배필로 남편과 맺어 주셨으니 남편이 믿음의 가장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하고 섬길 것이다.
현재 시어머니도 포항에 있는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지독한 우상숭배를 끊고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 가운데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있다. 입대한 아들도 군종으로 부대에서 열심히 충성하고, 제대하면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신앙생활 하겠다고 하니 너무 감사하다.
헤어날 수 없을 것 같던 사망의 음침한 그늘에서 행복하고 평안한 삶으로 바꿔 놓으신 나의 하나님! 나 같은 것 살리려고 독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삼으시고 잔인하게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해 주신 그 사랑. 내 목숨이 백 개라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늘 감사와 눈물로 예배드린다. 내 골육친척이 모두 예수 믿고 구원받는 그 날까지 내 구주 예수님께 쉬지 말고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역사하시고 인도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동해경 기자
박희정(67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81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