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4-09-11 10:17:39 ]
몇 년 전까지 나의 삶은 어느 것 하나 남부러울 게 없었다. 중국에 거주하면서 좋은 아내로, 사랑스러운 아들의 엄마로 살고 있었다. 둘째 언니가 나를 만날 때마다 예수 믿고 천국 가야 한다고 매번 당부했지만, 지금의 삶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니 천국이나 영혼의 때라는 것은 나와 너무나 먼 이야기 같았다.
세상 의학도 포기한 어린 아들의 난치병
그런데 아들 동우가 만 6세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하루는 유치원 선생님께서 동우의 시력을 검사해 보라고 하셨다. 그때만 해도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즈음부터 아이가 여기저기 부딪히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이상했다.
정확한 진단을 받아 보려고 서울에 와서 큰 대학병원을 찾았는데, 시력 자체는 정상이나 측정이 안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당황스러운 진단 앞에 MRI로 뇌 검사도 받아 보고 대학병원 검사 결과가 나오는 동안 다른 병원에도 가서 검사를 받아 보기로 했다. “동우야. 한숨만 자고 나와. 깨어나면 우리 집에 가자”라며 아들 손을 잡고 검사실에 들어갔다.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게 아이의 손을 잡고 온전히 걸어간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MRI 검사를 마친 후 동우가 깨어나지 못해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하루가 지나고 그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살며시 눈을 뜬 동우를 보며 마음이 울컥했다. 그런데 동우에게서 생각도 못한 말을 듣게 되었다.
“엄마, 하나님은 얼마나 능력이 있으셔?”
그동안 부정하며 살아온 ‘하나님’이라는 말이 동우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의아했다. 둘째 언니에게서 ‘하나님’에 대해 들었으리라 추측하며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최대한 긍정적인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아주 많으시지. 동우가 알고 있는 숫자가 경(京)까지인데, 하나님은 경보다 많은 무한대 능력을 가지신 분이지.” 그리고 이어진 “엄마, 하나님이 능력을 다 써 버리면 난 어떡해?”라는 말이 동우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이후 우리 아이의 온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얼마 후 듣게 된 동우의 병명은 ‘로렌조 오일’병이라고 알려진 ‘부신백질이영양증’이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병에 대해 알아보니, 성염색체 이상으로 남자아이에게 발생하는 희귀 유전병이며 6개월 안에 시력과 청력을 잃고 식물인간이 된 후 수년 내에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이 같은 불행히 찾아왔다는 사실 앞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당시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예수님을 믿는 둘째 언니가 생각났다. 내게 예수를 전할 때마다 툴툴거리곤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언니가 믿는 하나님에게라도 빌어서 동우를 낫게 하고 싶어 연세가족인 언니의 집에 가서 한 달 동안 머물기로 했다.
동우는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엄마, 어디 있어? 엄마, 어디야?”라며 나를 찾곤 했다. 울먹이며 “엄마, 여기 있어”라고 외쳤으나 동우는 내 목소리마저 들을 수 없었다. 청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내 입술에 아이의 손을 댄 채 입 모양을 알게 하면서 소통하곤 했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동우의 몸 전체 신경이 손상되어서 어떠한 소통도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주님 앞에 모든 짐을 내려놓으며
하루가 다르게 몸 상태가 악화해 가는 아이를 안은 채 달래는 것만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일곱 살인 아들을 계속 안아 주고 있자니 허리가 무너져 내렸지만 그래도 아픈 줄 몰랐다. ‘저 어린 게 모든 감각을 잃은 채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생각만 하면 마음이 미어져 허리 통증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언니의 집은 교회까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매일 밤 아이를 데리고 교회로 왔다. 당시 목사님께서 온 진액을 쏟아 가면서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우리 아이 뒤에도 몸이 편찮은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동우를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이 오래 이어지다 보면 되돌아가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감사하고 송구한 일인데, 당시에 나는 동우만 보였다. 목사님이 기도해 주시는 그 시간도 얼마나 큰 축복의 시간이고 사랑받는 시간이었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으나, 점차 기도에 마음을 쏟으면서 나 역시 하나님 은혜가 무엇인지, 감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아이가 더는 걸을 수조차 없게 되면서 몸져누워 버린 시점이었다. 그때 둘째 언니가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살며시 권했다. “소희야. 내가 동우 옆에 있을게. 밖에 한 번만 나갔다가 와.” 24시간 아이와 같이 있다가 잠시 주어진 시간에도 내가 갈 곳은 우리 교회 요한성전뿐이었다. 세상 의학도 그 무엇도 내가 붙들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던 그 순간, 언니가 말한 예수님이 떠올랐다. 과거의 내가 거절하던 예수님이 지금은 실낱같은 소망이 된 것이다.
한마디 내뱉을 힘도 없었지만 막연하게 믿고 있던 예수님께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예수님!” 처음으로 예수님을 향해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없이 울면서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쏟아 내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동안 거절하며 죄 아래 살다가 지옥 갈 처지이던 내 삶을 회개했다.
“예수님, 제가 잘못했어요.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만 붙들면서 살게요.” 내게 있던 죄의 짐과 육신의 때의 오만 가지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은 순간이었다. 그러자 바늘구멍만 한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교회 믿음의 스케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살 것을 마음먹기도 했다.
하루는 동생이 집을 보러 가자고 했다. 1년 가까이 신세 지고 있는 언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남편도 한국에서 직장을 잡아 가니 이제 동우와 살 집을 알아볼 때가 되었다. 동생과 집을 보러 가는데 우리 교회 담벼락 밑에 있는 집이 마음에 쏙 들었다. 꼭 살고 싶은 집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집을 허락해 주셨고, 그때부터 신앙생활 할 환경이 열리고 기도할 여건도 더 마련되었다. 얼마 후 활동 보조 지도 선생님이 오셔서 간호를 도와주셨고, “동우 엄마,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와요. 교회도 바로 코앞이고 내가 옆에 있으니 괜찮잖아”라고 마음 써 주어서 기도 시간을 늘리고 주일예배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가족을 예수께 인도한 축복의 통로
그런데 그즈음부터 내 허리 통증이 눈에 띄게 악화했다. 간병 탓에 생긴 통증이라고 하기에는 그 강도가 너무 심해서 검사를 받아 보니, 동우와 같은 유전병이 나에게도 진행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 가지 감사한 것은 이 검사 결과를 작정기도 기간에 받은 것이다. 꾸준히 기도해 오며 내게도 믿음이라는 것이 생겼는지 검사 결과를 듣고도 절망하지 않았다. “주님, 저는 괜찮아요. 그냥 아이 곁에 하루만 더 있으면 돼요. 동우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게 해 주세요”라며 기도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기도하며 예배드리니 신앙생활에 사모함이 생기면서 그동안 은혜 주신 주님께 나도 무언가를 해 드리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하루는 ‘나도 충성하고 싶다. 전도하러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에 여전도회원들과 전도모임에 참석했다.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행복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그동안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전도하도록 나를 사용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전도하고 돌아오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그래도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나에게 생명줄과 같았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생생히 느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수년 동안 수많은 중보기도자를 보내 주셨다. 교구식구들과 여전도회원들이 우리 아들 이름을 다 알 만큼 동우를 위해 기도를 이어 오고 있다.
동우는 7년 넘게 투병생활을 이어 오며 몸과 마음이 더 악화해 갔다. 그동안 견뎌 온 극심한 통증 탓에 아이의 몸은 성한 곳 하나 없는 상태이다. 숨 쉬기가 힘들어서 잠도 잘 이루지 못하고, 코로 산소를 넣어 줘도 혈중 산소 포화도가 올라가지 않아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고 있다.
병원에서도 언제 삶을 마감할지 모른다고 하지만 천국 소망을 잃지 않고 있다. 우리 동우가 언제 죽어도 반드시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으며 그 시간까지 우리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사랑할 것이다.
또 우리 동우를 통해 이 어미도 예수님을 구주로 만났으니 우리 아들은 축복의 통로이다. 앞으로도 동우를 통해 영광 받으실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사진설명>지난달 열린 여전도회 5그룹 ‘성회 권면 간증 토크쇼-회복’에서 정소희 성도가 고난 가운데 만난 하나님을 간증하고 있다. 정소희(68여전도회)
/정리 박채원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86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