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침례교 역사 속 믿음의 인물들 8

등록날짜 [ 2008-11-11 14:09:44 ]

곧은 믿음으로 신앙을 지켜낸 장기영 감로

대한기독교회의 초대 감로로 안수 받은 장기영 감로는 강경 공주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스테드만 선교사에게 침례를 받았다. 그는 철저히 십일조를 지키는 모범적인 신앙인이었고, 주의 종은 하나님의 대변인이라 하여 절대 복종할 줄 아는 실천적인 지도자였다. 아들(장석천 목사)과 손자(장일수 목사)들이 뒤를 이어 본 교단의 중추적인 인물로 활약을 해온 것은 그의 신앙을 이어받은 좋은 본보기일 것이다.
장기영(張基永) 감로는 41세에 당숙 장교환 씨의 전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교회에서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던 그는, 미국 북침례교에서 선교사로 파송되어 한국에서 활동하던 스테드만 선교사에게 1902년 3월 16일 침례를 받았다. 그해 10월부터 전국을 돌며 복음을 전하는 데 전력하였다. 이 당시 기독교가 전도하는 데는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다. 특히 전통적으로 내려오며 민중 신앙으로 자리 잡은 유교적 봉건주의 사상은 복음을 전하는 데 큰 걸림돌이었다. 술을 금한다든지 조상들의 제사를 금하는 것은 민중이 받아들이기 힘든 난제 중 하나였다. 집안 친척들의 혹독한 핍박이 계속되었지만, 이런 난관을 하나씩 믿음으로 극복하는 생활을 하였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활을 삶속에 실천하면서 가족들에게 신뢰감을 주었기 때문에 결국 가족들도 장기영 성도의 뜻을 쉽게 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초대 신자로서 활약한 장 감로

1901년 장기영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할 무렵, 이 땅에서는 침례교회가 처음 시작되었다. 충남지방 선교사역을 인수받은 펜윅 선교사는 곧 1902년 교회들을 소집하고 강경에서 대사경회를 인도하였다. 당시 은혜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이 많았는데 장기영 성도도 이 때 큰 은혜를 받고 전도인의 사명을 받아 전라북도 일대를 순회하면서 전도하였다.
또한 장 성도의 가정은 부유하였는데, 교회를 섬기는 일에 물질을 아끼지 않았다. 교통수단이 여의치 않았던 그 당시에 선교를 위해 교회에 선박을 사서 기증했고 가난한 교인들을 돕기 위해 산을 공동으로 구입하여 매장지로 사용하게 했다. 이 산은 지금도 칠산교회 소유로 보존되어 있다. 장 감로는 하나님의 일에 힘쓰는 교역자들을 하나님의 대변자로 알고 한마음으로 섬겼다. 또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목사와 상의하고 함께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고 노력했다..

제사 문제

복음을 전하는 일에 가장 큰 장벽은 제사 문제였다. 개신교보다 일찍 들어온 천주교는 제사를 금지하지 않았지만 개신교에서는 제사를 엄격하게 금지하였다.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에게는 가장 큰 장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백 년이나 이어 내려오던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를 금하는 종교에 대해 그 당시 사회에서는 큰 충격과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도 남았다. 장 감로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제사에 불참할 때마다 심한 핍박을 받았으며 문중에서는 그를 추방해버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십 년 동안 핍박을 당해 이 일로 인해 병을 얻게 되었고 급기야는 1917년 12월 7일 향년 58세의 나이로 소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장 감로의 신앙은 그의 후손에게서 아름답게 꽃 피우게 된다.

/ 자료출처 <한국침례교인물사> (김갑수, 요단출판사)

위 글은 교회신문 <14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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