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진 목사의 선교史<2>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 전할 사명이 있다

등록날짜 [ 2010-05-24 09:02:47 ]

베드로도 “땅끝까지 전하라”는 말씀 실천 못 하다가
깨닫고 나서 최후까지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다 순교

*글 싣는 순서
2. 사도 베드로-편견에서 벗어나라
3. 사도 바울-나도 모르게 준비된 선교사
4. 아일랜드의 패트릭-다시 죽음의 땅으로
5. 암흑의 시대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콜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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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을 향하여 이 땅에서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역을 분부하신다(마28:19~20). 또한 이러한 일들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이 그들 가운데 임하셔야 함을 일깨우신다(행1:8). 이로부터 정확히 10일 후에 모여서 기도하던 120인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이 사건이 교회의 기원이 되었다. 이 당시의 교회는 곧 선교를 의미하는 것이다.

 A.D 30년경, 이렇게 유대교의 한 종파 정도로 인식되던 교회의 시작이 A.D 60년경에는 유대 지경과 소아시아를 넘어 당시 유럽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까지 이르게 된다. 사도행전은 이러한 복음의 확장에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베드로와 바울을 말한다.

그 중 베드로는 갈릴리 가버나움에 장모를 모시고 살며, 동생 안드레와 함께 어업에 종사하던 평범한 유대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예수를 만나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자신의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3년 넘게 유대 전역을 예수를 쫓아다니며 제자로서의 훈련을 받게 된다.

복음서를 보면 베드로는 성미가 급하고 다혈질인 사람으로 나타나는데, 물 위로 오시는 예수께 나아가다 의심으로 물에 빠진 일, 변화산에서 흥분하여 초막을 짓고자 한 일, 예수의 십자가 사역이 결코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반대한 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를 잡으러 온 ‘말고’라는 사람의 귀를 자른 일, 그리고 붙잡히신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 일 등은 그의 연약한 모습을 확인하는 사건들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 명령에 순종하여 성령에 사로잡힌 베드로는 더 이상은 성미 급하고 무지한 어부, 또 두려움에 떨며 예수를 부인하던 그 사람은 아니었다. 변화된 베드로는 교회 역사상 최초의 설교로 3000명을 회개하게 하였고(행2장), 주님의 승천 이후 최초로 이적을 행하였으며(행3장), 공회와 대제사장 앞에서도 기탄없이 예수를 증거 하는(행4장)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으로 세워진 것이다.

그럼에도 베드로가 가진 한계는 이방인을 향한 전도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이라는 오랜 관습이 이유가 되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주님의 명령조차 실행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갇힌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베드로의 문제를 직접 개입하시고 고쳐내신다.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이 베드로를 청하였을 때, 하나님은 환상을 통하여 ‘유대 관습의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도 하나님이 깨끗게 하셨음을 일깨우며, 베드로를 이방인 가운데로 가게 하신다.

그리고 베드로가 성령에 순종하여 고넬료를 만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는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진실한 고백과 함께 이방인인 고넬료의 일가와 친구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행한다.

고넬료의 가정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은 베드로의 설명을 통해 여러 사도에게도 충격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위대한 결론과 함께 이방 선교가 확산되는 중대한 상황을 맞이하게 한다. 이 사건이 이방 선교의 편견을 깨뜨리는 분기점이 된 것이다.

흔히 베드로의 사역은 예루살렘과 유대인에게 한정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헤롯과 유대교의 핍박이 임하였을 때, 베드로도 유대를 떠나 이방 가운데 선교하는 사도로 나가게 되었고, 교회사에 알려진 바와 같이 로마에서 선교하다가 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복음을 전할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개인의 편견과 한계상황이 스스로 그것에 얽매이는 관습이 되어 외국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자신과 무관한 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간절히 원하신다. 삶의 환경과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그들도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위 글은 교회신문 <19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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