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7-13 08:16:56 ]
<글 싣는 순서>
5. 암흑의 시대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콜룸바
6. 로마 가톨릭의 선교와 수도원 운동
7. 모라비안 선교와 진젠도르프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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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하기로 소문난 ‘픽트족’ 개종에 몸 바쳐
선교 향한 열정, 경건 훈련과 금욕생활 강조
주후 500년을 기점으로 교회 선교는 북쪽으로는 서로마 제국 멸망과 함께 부각한 고트족, 훈족 등 북방 야만적 이주세력들과, 동쪽으로는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투쟁 대상과 맞서면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이후 500년간 싸운 결과로 북방 지역들에 대한 복음화는 비교적 성공을 거두지만, 이슬람 세력과의투쟁은 1000년간 싸움에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선교 역사의 암흑 시대가 시작된다.
이 암흑기 초반부에 해당하는 시점에 주목할 만한 선교사로는 아일랜드 패트릭의 후예라 할 ‘스코틀랜드의 콜룸바(521~597)’가 있다. 콜룸바는 521년 아일랜드 북단 스코트족 땅인 도네갈(Donegal)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실한 신자인 부모의 권유에 따라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했고, 계속 공부하여 성직자가 되었고, 15년간 아일랜드 여러 지역에서 설교와 교육, 수도원 건립 등 다양한 사역을 감당했다. 특히 데리(Derry)와 더로우(Durrow) 지역에 세운 교회와 수도원 등은 지역 복음 전파와 신학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당시 콜룸바는 탁월한 지식을 가진 학자이자, 영성으로 활동하는 목회자로 알려졌으며, 바쁜 일정에도 학문 연구와 함께 신학적으로 중요한 책들을 스스로 필사해 교회와 세상에 배포하는 사역을 하기도 하였다. 또 그는 가는 곳마다 학문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문맹률이 높던 시대에 지역 교회와 성직자들이 성경과 신학을 토대로 지적으로 성숙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지역 복음화와 학문 연구에 힘쓴 콜룸바가 갑자기 아일랜드를 떠나야 하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한다. 성경 사본이 흔치 않던 그 시절, 신학 서적 필사에 큰 열정을 보이던 콜룸바는 아일랜드 지역에 도착한 ‘예로니모의 시편 사본’을 처음으로 복사하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 이 일로 그 책 주인인 핀니안과 논쟁하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 핀니안이 이 사본의 반환을 요구하자, 재판을 통해 국왕 디아르메이드는 콜룸바가 보유한 사본은 핀니안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정하였고, 이 일에 격분한 콜룸바는 국왕 디아르메이드에게 칼을 뽑게 되었는데, 이것은 콜룸바와 함께 성소를 찾아온 콘노트의 쿠난이 디아르메이드의 부하에게 살해된 일과도 연관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양쪽 세력 간에 계속 싸움이 벌어지고, 마침내 ‘큘 드렘느’ 전투에서는 약 3000명이 죽는 비극이 일어난다. 이 일은 콜룸바에게도 큰 충격이었고, 주변 성직자들의 비난과 함께 그의 아일랜드 사역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결국 콜룸바는 자신의 급한 성격과 분노로 발생한 이 일에 대한 책임과 속죄의 심정으로, 수많은 불신자를 개종하는 일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아일랜드를 떠난다.
563년, 그는 친척 12명과 함께 스코틀랜드 서쪽 아이오나 섬에 도착해서, 13채 초라한 주거지와 나무로 만든 교회당 건물을 세운다. 콜룸바와 그의 사역자들은 그 교회당을 선교 본부로 삼아 난폭하기로 소문난 ‘픽트족’이라 부르는 스코틀랜드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착수한다. 그들은 우선적으로 아이오나 섬에서 시작하여 스코틀랜드 해안 섬들을 여행하면서 농부와 어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영접한 그들을 사역자로 교육하는 일과 교회를 세우는 일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하는데, 이러한 과정들은 선교활동 중심지인 아이오나 선교 본부 통제와 지원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선교를 향한 뛰어난 열정과 함께 그 목적을 위한 경건 훈련과 금욕생활도 강조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아이오나 수도원을 선교 본부로 삼고 해안가를 중심으로 진행한 콜룸바와 그 동료 사역자들의 선교 사역은 픽트족 브루드 국왕을 개종하는 일과 마침내 스코틀랜드 전역을 복음화하는 일에 성공한다.
탁월한 학자요, 열정의 성직자였음에도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고 자주 분노함으로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던 콜룸바, 그러나 참회의 마음으로 나선 그 선교 여정을 통해 말년에는 성령의 기쁨을 가슴에 안고 경건하게 산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597년, 76세를 일기로 아이오나 수도원에서 ‘얼굴에 기쁨이 충만하여, 거룩한 천사들이 그를 맞으러 오는 것을 보면서’ 콜룸바는 세상을 떠난다. 또 그의 죽음과 함께 그의 오랜 선교사역도 마감하였다. 그러나 그가 세운 아이오나 수도원은 그후 200년 동안이나 영국과 유럽 전역에 선교사를 파송하며, 그들이 지켜 온 경건과 금욕생활 등을 계속해서 전승하는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발휘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20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