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진 목사의 선교史<23>] 침례교 토대를 세우다

등록날짜 [ 2011-05-11 13:57:22 ]

처음에는 평신도 선교사로 조선이라는 나라에 들어와
황해도 소래와 원산 등에서 언어 훈련하며 선교 시작

조선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장로교 선교사로는 언더우드, 감리교에는 아펜젤러가 대표적 인물이라면, 침례교단 선교 개척자는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5)이다.

1889년 12월 8일, 27세에 평신도 선교사로 조선에 온 펜윅. 그는 캐나다 사람이지만 본래 그의 집안은 스코틀랜드 출신 이주민으로, 조부 때 토론토에 정착했다. 아버지 아치 펜윅은 아들의 나이 5세 때 돌아가셨고, 펜윅은 아들을 신앙으로 키우고자 애쓴 어머니 바바라 라담의 기도 속에 성장한다.

그럼에도 펜윅이 실제로 회심한 것은 23세 때인 1886년 토론토 거리를 걸으며 성경을 묵상하던 중,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통해서다. 말씀으로 구원의 확신을 얻은 펜윅은 이때부터 복음 전도의 소원을 품고 살다가 1889년 7월에 열린 ‘나이아가라 사경회’에 참석해 선교사로 소명을 받는다.

이전까지 펜윅은 철물도매업을 하는 사업가로, 또 평신도 전도자로 살고자 하는 마음에서 계속해서 자신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이아가라 사경회’로 그를 인도하셨다. 그곳에서 ‘중국내지선교회(CIM)’ 허드슨 테일러의 강의와 프린스턴대학 출신 학생자원자운동가인 로버트 와일더 선교사의 간증을 들은 펜윅은 부족한 중에도 자신을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요청에 더는 거절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사실상 이 무렵에 그는 선교가 무엇인지, 자신이 가야 할 나라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도 잘 모른 채로 선교 출발을 결정했고,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토론토 몇몇 사업가가 조직한 ‘조선연합선교회’ 파송으로 1889년 12월 8일, 조선 땅에 첫발을 내딛는다.

선교 초기 상황
펜윅이 평신도 선교사로 처음 조선에 왔을 때 그는 침례교인이 아니었고, ‘침례교’라는 명칭도 사용하지 않았다.
펜윅은 조선에 도착한 후 10개월 동안 조선말을 공부하였지만 큰 진전이 없자, 황해도 소래로 가서 그곳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더 실제적인 공부를 하기로 한다. 황해도 소래는 이미 복음을 들은 서경조 등 신자들이 있는 지역으로, 펜윅은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도 하고 또 생활 모습을 배우며 언어적인 도움도 받는다.

평신도 선교사로서 펜윅의 선교 초기 상황은 바로 이곳 소래와 수도 한양 그리고 함경도 원산을 오가며 조선 언어와 상황을 익히는 일에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1893년에 펜윅은 캐나다로 귀국하여 3년간 체류한다. 이 시기는 펜윅이 미국 북침례교 소속 부흥사인 아도니람 고든(A.J. Gordon)이 운영하는 ‘보스턴 선교훈련학교’에서 훈련을 받으며, 선교사로서 신학적, 목회적인 기초를 쌓은 시기다. 사실상 펜윅이 침례교 신앙을 가진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펜윅은 비록 정규 신학교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나이아가라 사경회’를 통하여 선교사로 부름받았고, 단기 선교사 양성과정이라 할 ‘보스턴 선교훈련학교’를 거쳐 실제적인 선교사로 준비된다. 당시 펜윅이 경험한 두 선교 훈련과정은 사회.문화적 선교보다는 복음중심적인 선교에 비중을 두고 있었고 전(前) 천년주의 종말론에 입각한 긴급한 선교적 필요를 실현하고자 힘쓴 특징이 있었다.

특히, 클라렌돈 침례교회 아도니람 고든 목사는 펜윅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으로, 고든의 신학과 목회 형태를 따라 펜윅이 선교와 목회를 진행했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1894년 아도니람 고든 목사의 집례로 목사 안수를 받고, 침례교 선교사로 재파송될 준비를 하던 펜윅이 직접 ‘조선순회선교회’를 조직한다. 또 이 무렵 고든 목사가 시무하던 교회 집사인 씽(Thing)이라는 사람이 그의 죽은 딸을 기념하여 세운 ‘엘라 씽 기념선교회(The Ella Thing Memorial Mission)’에서 펜윅의 조선 선교를 지원할 것을 결정한다.

성경학교 개설
1896년 조선으로 돌아온 펜윅은 고심 끝에 복음이 왕성하게 확산하던 황해도 소래를 떠나 다른 선교회의 손이 닿지 않은 함경도 원산에 정착한다. 소래 신자들은 펜윅에게 지역 목회자로 남아 달라고 요청했으나, 펜윅은 이미 다른 교단 선교부가 있는 지역에서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 오지(奧地)인 원산으로 향한 것이다.

펜윅은 우선 성경학교를 개설하여 은혜 받은 청년들을 목회자로 양성하고자 했다. 청년들을 선발하여 그들과 함께 기거하며 성경을 가르쳤지만, 교육 후에 모두 떠나버리는 것을 보고 좌절한다.

이때 펜윅의 사역을 도울 결정적인 인물을 만나는데, 훗날 침례교단 첫 목사가 된 신명균이다. 그는 부모와 형제의 핍박에도 신실하게 전도자 의무를 감당하는 사람이었다. 펜윅은 신명균의 전도와 교육에 많은 사람이 돌이키는 것을 보고, 그를 중용하여 일꾼을 세우는 일에 비로소 성공한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4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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