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진 목사의 선교史<11>] 헨리 마틴

등록날짜 [ 2010-10-19 07:58:44 ]

31년 짧은 생애를 인도에서 선교사로 마감
우르두어.페르시아어 등 성경 번역에 참여

하나님은 개신교 선교 여명기인 18~19세기 초반,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선교사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윌리엄 캐리 등 자신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복음 전파에 힘쓴 많은 선구자를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하셨다. 여기 또 한 사람, 그 시대 선교를 위하여 자신을 불태운 젊은 영혼이 있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영국 성공회 출신 인도 사역 선교사
헨리 마틴은 영국 성공회 출신으로 인도에서 사역한 최초의 선교사다.

그는 1781년, 콘웰(Cornwall) 지방 ‘트루로’에서 존 마틴의 3남으로 출생하였다. 비교적 성공적인 학창시절을 보낸 헨리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하여 더욱 학문에 전념하며, 희망찬 미래를 설계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공부를 통해 큰 기쁨을 드린다고 믿던 부친이 돌아가시자 그는 슬픔을 이기고자 더욱 공부에만 집중한다. 오랜 고통의 시간 가운데도 헨리는 탁월한 수학 실력과 열정으로, 케임브리지대학 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는 영예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는 성공 이후에 오는 실망과 허전함으로 “내가 바라던 최고의 소원이 이루어졌지만 지금 내가 잡고 있는 것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좋은 머리로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한 대가로 그런 상을 주었지만, 이 땅의 영예로는 마음을 채우는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없다”라고 말하며 새로운 삶을 갈망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헨리에게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라는 책을 통해 선교에 대한 비전을 주신다. 헨리는 브레이너드의 하나님을 추구하는 마음과 인디언 선교 과정들을 통하여 큰 감명을 받았고, 그로 인해 해외 선교를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헨리는 그가 너무나 닮고 싶은 브레이너드처럼 매일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기도에 전념하면서, 사교적인 즐거움 등을 포기한다.

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이 일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독신 생활을 선택한다. 그리고 헨리는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목사가 되고, 또한 선교 현장에 나갈 것을 결심한다.

윌리엄 캐리의 인도 선교사 모집에 적극적으로 응하여 영국을 떠나 인도로 간 헨리 마틴은 비록 동인도회사의 이방인 선교에 대한 방해가 여전했지만, 아무런 말썽 없이 인도에 선교사로 들어가기 위해 동인도회사 전속 목사를 지원한다.

1806년, 그가 인도에 도착하던 날, 그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한다.

“이제 나는 인도를 위해 나 자신을 불태워 버리겠다.” 그리고 그는 정말 그렇게 살게 된다.

헨리는 자신이 속한 동인도회사 직원들과 그 가족, 군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학교를 세우는 일을 하면서도, 그의 천재성을 발견한 윌리엄 캐리의 권유에 따라 현지인들이 더 빠르게 복음을 접할 방법으로 성경 번역을 시작한다.

그는 사역지를 이동하는 중에도 번역 연구를 계속하여 신약성경을 우르두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등으로 번역하는 일에 전념한다. 이 시기에 큰누나의 임종 소식을 듣게 되고, 얼마 후엔 자신의 신앙에 도움을 주었고 가장 강력한 기도후원자인 막내 여동생의 부음도 전해 듣는다. 그러나 큰 슬픔 중에도 사역을 중단할 수 없기에 더욱 번역 일에 매진하고, 더 나은 성경 번역을 위해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방문을 결정한다. 그러나 열사의 기후를 이겨내지 못한 그는 우르두어 신약성경 출판을 앞두고 이미 병에 걸렸고, 병이 깊어지는 중에도 쉬라즈에서 페르시아 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거쳐 비로소 페르시아어 성경번역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힘겨운 여행과 계속된 고열에 시달려 건강이 극도로 나빠진 헨리는 귀국길에 오르고, 1812년 아르메니아 토캇에서 31세라는 짧은 생애를 마친다. 마치 그가 그토록 닮고 싶어 하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와 같이.

그러나 짧은 생을 살았음에도 그는 너무도 큰 유산을 남겼으니, 그의 성경 번역은 미래 선교를 위한 기초가 되었고, 그의 세상을 이긴 영적인 삶은 여러 선교사에게 기준이 되었으며, 그의 선교를 향한 도전은 수많은 젊은이의 모범이 되었다.

“지금보다 만 번이나 더 나는 이 고귀한 일에 이미 몸을 바쳤음을 느낀다. 인도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이들 가운데 한 사람만이라도 돌아와 자기의 의무를 행할 수 있다면, 나는 이 비천한 피를 한 방울 한 방울 즐겁게 흘리겠다.”(헨리 마틴)

다음 글은 <제12편-미국 최초 해외 파송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1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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