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11-16 22:24:02 ]
원주민어 성경 번역에 지대한 영향 끼쳐
18~19세기 아프리카 선교사들은 모험과 인내, 궁핍과 쇠약, 질병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절망과 맞선 사람들이었다. 이 시기 수많은 아프리카 선교사 중에 두드러진 사역을 담당한 사람으로는 화란 출신 의사인 존 데오도레 반데르캠프, 흑인 권리 존중에 앞장선 존 필립 그리고 유럽 교회에 아프리카 선교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50년을 선교에 바친 로버트 모펫, 모펫의 사위며 탐험가로도 유명한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꼽을 수 있다. 이번 호에는 로버트 모펫을 소개하고자 한다.
로버트 모펫은 1795년 스코틀랜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하지만 그는 기도와 선교사 이야기로 자녀의 신앙을 돌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17세에 영국 채셔(Cheshire)로 가서 정원사로 취직한 모펫은, 1814년 작은 감리교회 모임에서 거듭남을 체험하고, 다음 해 런던선교회장인 윌리엄 로비(William Roby) 목사의 설교를 통해 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자원하였다.
그러나 모펫의 기대와는 달리 선교회에서는 그가 정규 교육이나 신학적 훈련을 받지 않았기에 선교사 파송을 거절했다. 이에 모펫은 로비 목사의 집 근처에 일자리를 얻어 살면서, 그에게 1년간 신학 과정을 배우고 선교사 파송을 다시 지원하여 승인받았다.
모펫은 21세 때 다른 선교사 4명과 배로 85일을 이동하여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도착, 선교했다.
그러나 곧 아프리카 선교지 실상을 알게 된다. 당시 아프리카는 유럽 식민지로 착취당하고 있었는데, 많은 선교사가 노예무역을 담당하는 식민당국자와 연계하여 비선교적인 일과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영국과 네덜란드 식민당국자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부당한 대우와 따돌림을 당하기까지 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견디며 현지에 적응하던 모펫은 1819년, 자신이 정원사로 일하던 집 딸 메리 스미스(Mary Smith)와 결혼하여 본격적인 선교에 착수한다.
모펫의 선교전략은 우선 아프리카 부족을 이끄는 추장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여 그들 안에 선교 기지를 만들고 그들에게 들어가는 것이었다. 모펫은 먼저 여러 부족을 만날 수 있는 쿠루만 강 인근에 선교 기지를 세우고, 우선 베쿠아나 족을 대상으로 사역한다. 모펫 부부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미신을 타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과 배타뿐이었다.
그러던 중,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그 한가운데 서 있던 모펫은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다. 또 민간인 대장으로 참전하여 위기에 처한 부족을 구함으로써, 여러 사람의 관심과 존경을 받는다. 또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부족들의 삶을 개선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쓴다. 그러나 결실은 여전히 미미한 상태였다.
이것은 모펫의 시행착오라고 볼 수 있다. 그에게는 복음 수용자들인 베쿠아나 족의 신앙 형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우선 모펫은 베쿠아나 족 전통에 관해 매우 무지하여 그들에게 신에 대한 개념도, 그런 의미를 가진 단어도 없는 것으로 오해하고 접근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모펫이 현지 원주민의 언어를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모펫은 주로 케이프 더치(남아프리카 화란어)를 배워 사용했는데, 이 말은 일부 남자들만 이해할 뿐, 여자들은 한 사람도 알아듣지 못했다.
결국 자신의 문제를 깨달은 모펫은 가족을 떠나 원주민 말을 배우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이러한 노력으로 의사소통이 원활해지자 모펫의 사역도 활발해졌다. 또 그를 향한 원주민 태도가 달라져 그들의 복음 수용과 결신이 나타나고, 곧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다.
현지어로 복음을 전하는 모펫의 사역은 갈수록 커져서 학생 40여 명을 데리고 학교를 시작하고 1838년에는 거대한 석조 예배당을 건축하였다(이 교회는 현재까지 존재한다).
모펫은 원주민 전도와 함께 그들을 위한 성경이 필요함을 깨닫고, 누가복음부터 시작하여 직접 성경 번역과 출판을 병행한다. 이 작업은 1857년 번역 완성까지 29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통해서 비로소 끝마친다. 이 번역 성경은 후배 선교사들의 복음 전파와 수많은 현지인 성경 통독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모펫의 사역은 쿠루만 지역을 넘어서 인근 부족들에게 확장하고, 후배 선교사들과 함께 남아프리카의 더 넓은 지역을 다니며 선교한다.
모펫 부부는 오직 한 차례 가진 휴가 기간(1839-1943년)을 포함해 53년 동안의 아프리카 선교사역을 마치고 은퇴한다. 유럽으로 돌아온 모펫은 이후 13년간 선교회 지도자로서 수많은 사람을 아프리카 선교에 동참하게 하는 사역에 최후까지 쓰임받고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위 글은 교회신문 <21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