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8-30 19:20:31 ]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 설립
근대 개신교 선교의 문을 연 윌리엄 캐리 이후 100여 년간은 서구 열강이 식민지를 중심으로 벌인 해안 선교 시대였다. 이 시기 선교사들은 주로 인도, 중국,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외국인들에게 개방한 도시에 선교 기지를 세우고 그 중심으로 사역을 진행하였다. 이후 허드슨 테일러가 1865년 창설한 ‘중국 내지 선교회’와 같은 선교단체들은 ‘내륙 깊숙이 들어가는 선교’를 시도함으로써 더욱 많은 현지인을 접촉하여 선교를 확장하였다.
이러한 지리적 접근 선교 전략을 20세기 중반까지 지속하던 중에 새로운 선교 문제가 제기된다. 그것은 바로 ‘족속’ 혹은 ‘민족’(people) 그룹 단위로 복음을 전하는 개념이었다. 이것은 이전 선교 형태보다 더 구체적인 선교적 접근법으로 오늘날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 선교 개념으로 부각하였다.
‘미전도 종족’은 자생적인 신앙공동체(교회)가 없는 종족 집단으로, 이전 시대에 진행한 대륙별, 국가 단위별 선교 형태로는 ‘의식하지 못하였던’ 또는 ‘무시되어지거나’, ‘닿지 못하였던’ 종족 집단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역을 의미한다.
‘미전도 종족’은 누군가 언어와 문화 등 장벽을 넘어 이들에게 들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힘으로는 교회를 세울 수 없는 종족들이며, 그들의 모국어로 번역한 성경이 없어서 세계 선교 완수라는 관점에서 볼 때 미전도 종족 선교는 현대 선교에서 더욱 집중해서 진행해야 할 선교분야라 할 것이다.
이런 미전도 종족에게 선교해야 할 필요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 설립자 윌리엄 카메룬 타운젠트(W. Cameron Townsend)다.
그는 189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출생했고, 미국 경제 위기인 대공황기에 직업을 찾아 온 가족이 이주하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LA 옥시덴탈 대학에 진학하여 진로를 고민하던 중, 대학 2학년 때 존 모트가 이끄는 SVM에 가입함으로써 선교사로 살아갈 것을 결단한다. 신학과 선교에 대한 배움보다는 선교 현장에 대한 열정이 매우 컸던 그는 대학 3학년을 중퇴하고, 21세 때인 1917년 중남미 과테말라 지역 선교사로 자원하는데 그가 한 업무는 성경판매였다.
그는 과테말라가 스페인 언어권이라는 생각으로 길거리에 자판을 벌려놓고 쪽 복음(낱권성경)을 팔았다. 그러나 과테말라 인구 60% 이상이 각기 다른 인디오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기에 저들에게는 스페인어 성경이 별 효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중남미 각 국가 내부에는 다양한 족속이 있으며, 그들의 독특한 언어가 전체 부족을 향한 복음 전파에 커다란 장벽이 된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그는 특히 현지 칵치퀼 부족민에게서 “당신의 하나님이 그토록 위대하시다면, 어째서 우리말(현지어)로는 말씀하시지 않는 거요?”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또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깨달으려면 가슴에 와 닿는 자기 말(heart language)이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는 사실 앞에 새로운 선교사역에 대한 도전을 받는다.
그 후 12년간 타운젠트는 ‘k’ 발음만 4가지나 되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문법체계를 구성하여 1929년 칵치퀼(Cakchiquel) 종족 언어로 신약성경 번역을 완성, 과테말라 인디오들의 심령에 복음을 전한다. 1934년 선교를 마치고 일시 귀국한 그는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WBT, Wycliffe BiBle Translator)를 조직하여 복음을 각 부족이 가장 잘 이해하게 하고자 성경번역 사역을 시작한다. 이 WBT선교회 이름은, 1382년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위클리프역)하였다는 이유로 가톨릭교회에 시신 화형을 당한 종교개혁의 샛별 같은 존재였던 ‘위클리프’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이유에서 붙였다.
타운젠트가 처음 WBT를 출범시킬 때는 세계에 약 500개 미전도 종족집단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는 1000개 종족으로 수정하였고, 그다음에는 2000개, 그리고 5000개 이상으로 확대하였다(현재 파악한 수는 1만2000개다.)
통계를 따르면 20세기에 번역한 420개 종족별 성경 중 83%가 WBT가 한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이 선교회에는 5000명 이상이 600개 이상 언어를 다루면서 사역하고 있다.
타운젠트는 비록 대학을 중퇴한 사람이지만, 현장 경험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언어와 철학 분야 박사들에게도 강력한 지도자가 된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겸손과 종의 자세가 있었다.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 수많은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주려 하자, 그는 학위가 없는 선교사들이 힘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도 학위를 받지 않겠다고 거절한다.
또 흑인과 소수 민족이 성경번역에 참여하는 일에 반대자가 있자, “가장 훌륭한 선교사는 원주민에게서 번역된 성경”이라며 인종차별주의를 극복한다. 또 바쁜 사역 중에도 정신분열 증세를 겪는 부인에게 인내하며 힘을 주고자 섬김을 보이던 사람이었다. 1982년 그가 87세를 일기로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을 때, 랄프 윈터는 그를 윌리엄 캐리와 허드슨 테일러에 견줄만한 인물로 극찬하였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63억 인구가 200여 나라에서 약 6800개 언어를 사용하며 살고 있다. 그중 404개 언어로 전체 성경이, 989개 언어로 신약이, 1014개 언어로 쪽복음이 번역되어 사용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3000개 종족 내 2억 5000만 부족은 자기 언어로 된 성경이 없어서 오늘날 우리에게 타운젠트와 같은 도전을 꿈꾸게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