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진 목사의 선교史<33>] 영화 ‘창끝’의 주인공들… 죽음으로 이룬 선교

등록날짜 [ 2011-10-11 13:08:58 ]

각 시대 선교 역사를 통해 확인할 때, 세계 각 지역을 향한 다양한 선교 시도와 방법들로 수많은 민족이 하나님께 돌아왔고, 때로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날 여러 교회와 선교단체가 이전 세대보다 더 효율적인 선교 이론과 체계적인 훈련 방법들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이 같은 선교 이론과 방법들을 가졌어도 오늘날 선교현장에 나가는 사명자가 늘 부족하게 느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이다.

‘선교는 곧 순교의 길’임을 알면서도 그 죽음의 선교 현장을 향하여 나섰던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그들의 신실함을 이을 수 있으며, 또 누구에게 배워야 하는가? 이러한 심정을 가지고 영화 ‘창끝(End of the spear)’에 소개된 짐 엘리엇(Jim Elliot, 1927~1956)과 그 형제들을 소개한다.

1956년 미국 사회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다. 젊은이 다섯 명이 남미 에콰도르 인디언인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밀림으로 들어갔다가 살해당한 것이다.

명문 휘튼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짐 엘리엇, 네이트 세인트, 피트 플레밍, 로저 유드리엔, 에드 맥컬리 등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이 사납기로 소문난 아우카 부족을 전도하려고 경비행기로 성경과 선물을 전달하며 선교를 시도하다가 아우카 부족의 창에 찔려 모두 살해되는 끔찍한 비극으로 미국 사회가 들끓었다. 언론들은 ‘이것은 무모한 선교며, 이 무슨 낭비인가!’ 하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다뤘고 선교 방법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아우카 부족을 향한 선교 사역은 이 선교사 5명이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의 아내들이 남편들의 뒤를 따라 아우카 부족에게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원수를 향한 신실한 사랑의 전도는 서서히 열매를 맺었다. 무엇이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했는가?

짧은 생을 살다간 짐 엘리엇의 삶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심정이 잘 나타난다. 짐 엘리엇은 1927년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플리머스 형제단 순회설교가인 프레드 엘리엇과 클라라 사이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45년 휘튼 대학에 입학한 그는, 후에 선교사가 되어 원주민 언어로 성경을 번역할 때를 미리 바라보고 헬라어를 전공으로 선택하고, 학생해외선교회(FMF) 대표로 순회선교동원 사역을 하며 선교사 비전을 키웠다.

1949년 휘튼대학을 최우수학생으로 졸업하고 본격적인 선교사 준비를 시작하자 많은 사람이 그에게 미국 사회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라고 요청한다. 그때 그는 “왜 어떤 사람은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고 죽어 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이상을 누려야 합니까?”라는 답변과 함께 복음이 한 번도 전해지지 않은 인디언에게 선교할 것을 결정한다.

그리고 1952년 2월 마침내 에콰도르 선교사로 출항한 짐은 역시 에콰도르 선교사로 파송된 엘리자베스를 만나 1953년 26번째 생일에 결혼한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할 계획을 수립하고, 같은 비전을 지닌 다른 젊은 선교사들과 함께 사역을 진행한다.

아우카 부족은 부족 간 살해와 보복은 물론이고, 외부인들까지 보이는 대로 살해하는 악명 높고 접근이 매우 어려운 원시 부족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비행을 담당하던 네이트 세인트는 여러 차례 밀림을 정찰하며 그 부족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들에게 서서히 접근하려고 비행기에서 지속적으로 선물을 전달하는 접촉 방식으로 마침내 1956년 1월 3일에 아우카부족 마을에서 가까운 쿠라라이 강변에 착륙한다. 그리고 아우카 부족에서 나온 세 사람과 우호적으로 만난다.

드디어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기대했던 선교사 5명은 안타깝게도 1월 8일에 다시 그들에게 다가온 아우카 부족에게 창에 찔려 모두 순교한다. 손에 총을 들고도 쏘지 않으며 “우리는 당신들의 친구입니다” 하고 말하며 죽어간다. 평생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하던 짐 엘리엇도 그의 나이 28세에 주님의 부르심에 피 흘림으로 순종한 것이다.

그리고 남편의 죽음에 슬퍼하던 엘리자베스는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 줄 알기에 아우카족 마을로 들어가 전도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1년간 간호사로 훈련받기까지 한다. 아우카 부족 복음화를 위해 피 흘린 순교자들의 아내와 자녀의 고난과 열정 그리고 용서와 사랑은 마침내 아우카 부족 전체를 복음화한다.

이들의 섬김에 감동한 아우카 부족 추장이 “무엇 때문에 우리를 위해 이 고생을 하는가?” 하고 물었을 때, 짐의 부인 엘리자베스는 “우리 남편들은 하나님을 알려주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들이 그들을 죽여 뜻을 이루지 못했지요. 우리는 남편들이 그렇게도 당신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들려주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그 후, 짐 엘리엇 등 선교사 5명을 창으로 찔러 죽였던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그 중 4명이 목사로, 한 명은 전도자로 새 삶을 살게 된다. 놀랍게도 그들에게 침례를 베푼 사람은 살해된 선교사 5명 중 한 명인 네이트 세인트의 아들 스티브 세인트였다. “우리 인생을 저울에 달면, 그 믿음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를 고민하던 스티브 세인트도 자신의 사업을 다 포기하고 죽은 부친을 따라 아우카 부족을 위한 선교사가 된 것이다.

순교한 이후에 공개된 선교사 짐 엘리엇의 일기장에는 젊은 영혼이 경건한 삶을 추구하며, 영혼의 때를 향하여 외친 진실한 고백이 나온다. 그의 유언 같은 외침은,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6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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