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0-28 02:21:37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절대 변할 수 없는 진리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선교 방법은 그 복음을 수용할 대상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으며, 그 선교 현장에 적합한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선교사의 책무다. ‘화해의 아이(Peace Child)’로 유명한 돈 리처드슨은 선교지에서 이런 원리를 발견하여 크게 쓰임받은 선교사다.
1935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돈 리처드슨은 17세에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질병으로 고통당하던 그는 난생 처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의 질병을 치료하심으로 만나주신 것이다.
그는 신학교 졸업 후 목사로서 청소년 지도자 과정을 훈련받았고, 간호사인 캐롤(Carol)과 결혼한 후 1962년 아내와 7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네덜란드령 뉴기니 섬으로 출발한다.
그가 선교를 책임 맡은 뉴기니 샤위(Sawi)족은 사람을 사냥하여 인육을 먹고 그 머리를 전시하는 사나운 식인종으로, 전통에 따라 ‘상대방을 속이고 배반하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가치로 여기는 부족이었다. 리처드슨이 샤위족 가운데 거주지를 정하자 이전까지 흩어져 살며 싸우던 카무르인, 해남인, 요휘인 부족들이 선교사 가정을 중심으로 모이는데, 이는 외부인을 통해 자신들에게 돌아올 이익을 기대하기 때문이었고, 이로 말미암아 서로 공격하는 유혈사태도 계속 생겼다.
선교사 가정은 식인종 부족의 위험뿐 아니라 정글 속 사나운 맹수와 죽음의 늪지대, 말라리아를 비롯한 풍토병 등 여러 난관을 경험하면서 샤위족 전도의 방법을 찾았다.
우선적으로 원주민 언어를 배우는 것이 문제였는데, 샤위어는 모든 동사 시제가 19개로 구성되어서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도를 요구하는 언어였기에 그것을 익히는 일이 어려웠다. 그러나 언어 소통 없이는 복음 전파도 없기에, 하루 10시간 이상을 투자해 샤위어를 배우고 또 부족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부단한 노력 끝에 복음을 전할 만큼 언어에 자신이 생긴 리처드슨은 비로소 각 가정을 방문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샤위족의 반응은 너무도 냉담하였는데, 오랜 시간 복음을 전하였음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과 전혀 다른 배경에서 기록된 성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처럼 성경의 모든 이야기에 무관심하던 그들이 단 한번 환호성을 질렀는데, 예수의 제자로 3년을 따르던 가룟 유다가 선생을 배반하고 팔아버리는 악행을 저질렀다는 말에 샤위족은 너무나 감탄하며 “유다가 진정한 샤위인이다” 하고 유다에게 갈채를 보내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배반’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문화이기에 사탄에게 이용되어 예수를 파는 유다가 영웅이 되고, 그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는 얼간이로 취급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통을 가진 샤위족은 ‘언젠가 잡아먹을 목적으로 다른 부족 사람과 우정을 키우고 상대가 안심하고 있을 때에 살인함’으로서 극단적인 배반을 일삼고, 이로 말미암은 죄 의식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수차례 시도 끝에 리처드슨은 더는 선교가 불가능하다 여기고, 자신 때문에 부족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선교지를 떠날 것을 결심한다.
그런데 그가 떠난다는 소식에 그동안 처절하게 싸우던 두 부족 안에서 갑자기 회의가 열리고, 추장의 어린 아들을 상대방 부족과 볼모로 교환하는 엄숙한 의식이 진행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선교사는 깜짝 놀라 물었다.
“왜 이러한 것이 필요한가?”
이에 추장은 “당신이 우리에게 화해하라고 권하지 않았소? ‘화해의 아이’가 없이는 화해할 수가 없음을 모르시오?”
서로 배반하고 싸움을 일삼는 이들에게도 평화를 위한 하나의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아들을 원수에게 ‘화해의 아이’로 내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교환한 아이를 잡아먹는 것은 그들에게도 최악의 수치였기에, 그 아들이 살아있는 한 상호간에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었다.
이런 평화 의식이 끝나고 춤추며 환호하는 부족들을 지켜보면서, 선교사는 샤위족에게 ‘화해의 아이’라는 구속(救贖)의 유비(類比)를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다. 그는 이사야 9장 6절의 말씀을 기초로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화해의 아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며, 그 예수를 영접하는 자가 하나님과 화해한다”는 그들이 이해할 상황으로 복음을 전파하였고, 이때부터 샤위족의 반응이 달라진다.
샤위족 중에 배반의 영웅으로 불리던 ‘카니’가 예수를 영접하였고, 부족들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화해의 아들’이신 예수를 믿는 역사가 급속하게 진행된다. 각 부족은 더 이상 서로 잡아먹지 않으며 또 하나님께서 화해의 아이로 예수를 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자기 아이를 상대방에 내주는 일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토속 무당들의 끈질긴 방해가 있었고, 마을 이동 중에 카누가 뒤집혀 온 가족이 악어와 뱀의 먹이가 될 위험에 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도 실수한 자를 탓하지 않고 그를 용서하는 선교사 부부의 행동에 부족장들이 감동하여 예수를 영접하는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리처드슨은 샤위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하여 개종한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고, 그의 아내 캐롤은 의료사역으로 원주민 2500명 이상을 치료하였다. 그 결과 1972년 샤위족 사역 10년차가 되었을 때, 주민 약 800명으로 구성한 4개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이후에는 1000명을 수용하는 원형 성전(Sawidome)을 완공한다.
1975년 리처드슨은 교회를 후임인 존 밀스 선교사와 현지 지도자들에게 맡기고, 미국 세계선교센터 종족연구 담당자로 옮겨간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 부족들의 문화 가운데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매년 40회 이상 강연을 진행하였고, 현재는 이슬람권 선교 전문가로 사역하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6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