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순교지 순례 소감] 주를 사랑하는 그 정신 그대로 내게도…

등록날짜 [ 2016-06-14 10:28:22 ]

지난 5월 24일(화)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목회자와 성도 1800여 명이 CBS 주관으로 크루즈를 이용한 일본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이번 호에는 순교지를 다녀온 이들의 소감을 게재하고, 다음 호에는 일본 선교의 방향에 대해 알아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26인 순교지에서

허준(제2중등부)

일본 큐슈 주 나가사키항에 도착하자 크루즈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힘들게 니시자카 언덕을 올라 처음으로 도착한 곳에는 26명이 하늘을 향해 기도하며 올라가는 모습을 새긴 기념비가 있었다. 그중에는 12세, 13세, 14세 소년의 형상도 새겨져 있었다.

14세. 지금 내 나이였을 때 순교한 소년은 자신이 십자가에 묶여서 창에 찔리고 죽은 상태로 80일 동안 방치돼 결국 까마귀 밥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목숨을 내놓고 순교했다. 그 소년들을 기념하는 비를 보면서 나도 예수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고 주를 위해 죽으리라 각오했다.

순교지를 순례하면서 믿음이 더욱 견고해졌다. 주님의 은혜다. 순례 여행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한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또 가고 싶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린다.

■26인 순교지에서

김희정(중등부 교사)

순교는 하나님 말씀을 지키다 죽는 것과, 복음을 전하다 전도로 죽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26인의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형상한 부조 맨 위에 라틴어로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찬양하라’라고 새겨져 있었다. 저 고백을 하며 순교한다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요, 성령이 함께하시는 축복임을 깨달았다.

광장에 모여 통성으로 기도한 성도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변치 않는 거룩한 믿음이 우리에게도 축복으로 임하여 잔혹한 고문과 악한 환란을 이겨 순교의 영광으로 주님 뵙기를 눈물로 절실히 구했다. 또 일본 땅에 다시 복음이 전해져 성령으로 부흥이 역사하기를 기도했다.  

■스즈타 감옥 터에서

박양종(14남전도회)

순례 첫째 날 26인 순교지의 감동이 채 식기도 전에 나가사키 현 오무라 시에 있는 스즈타 감옥 터를 방문했다. 도저히 인간의 감옥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크리스천을 참혹하게 고문하고 학대한 곳이다. 6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33명이 살기도 했고, 그중 몇몇은 참수형이나 화형을 당했다. 신앙을 지키고자 목숨을 조금도 구걸하지 않은 의인들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스즈타 감옥 터를 뒤로하면서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한없이 부끄러운 나 자신을 발견했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자 육체의 고통을 이기고 목숨을 내어 던진 이들이야말로 천국 시민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순교지 순례를 통해서 크게 느꼈다.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목숨보다 더 큰 가치를 확실히 발견하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게도 결단의 시간이 올 때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도록 기도로 준비해야겠다.

■호쿠바루 처형장에서

정호진(대학청년회 7부)

오무라 영내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의 피가 흐른 곳이 바로 호쿠바루 처형장이다. 참수형이 결정된 406명 가운데 131명이 이곳에서 4열로 줄지어 무릎 꿇은 채 차례로 참수형을 당했다. 다른 순교지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궁금증이 밀려왔다.

‘주님, 저들은 어떻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드렸습니까?’

아마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대한 그 구원의 감격이 저들을 붙들었을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버러지 같은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없지만, 주를 향한 그 정절과 하나님의 은혜와 그 사랑을 입은 자는 결코 흔들리지 않고 주님께 기꺼이 자기 목숨을 드릴 수 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을 위해 내 목숨을 내어드리면서 최고의 감사와 최상의 신앙고백을 드리고 싶다. ‘그리스도를 향한 정절’과 ‘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는 것을 크게 느낀 귀한 시간이었다.

■머리.몸 무덤에서

주선현(대학청년회 전도1부)

도쿠가와 막부는 호쿠바루에서 참수돼 순교한 크리스천 131명이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3일 만에 시신을 파내 머리와 몸을 떼어 각각 따로 매장했다. 그 장소가 머리 무덤과 몸 무덤이다. 순교 당시 그 어떤 비명이나 신음도 없이 오로지 칼로 베는 소리만 들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을지, 그때 정말 감사함으로 죽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순교지에서 지금이 그 순교의 순간이라고 여기며 순교 리허설을 해 보았다. 순교는 주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인데 아직까지 너무 부족한 내 믿음을 발견했다. 내게도 순교할 믿음을 달라고 더 기도해야겠다. 내 삶을 주님께 산 제사로 드려 매 순간 순교하는 주님의 충성된 일꾼이 되리라 다짐한다.

■자비에르 기념교회에서

장회동(충성된청년회 3부)

일본의 기독교 선교 역사는 1549년 8월 15일 프란치스코 자비에르 선교사 일행이 일본 큐슈 남부 카고시마에 상륙함으로 시작한다. 자비에르 선교사를 기리려고 세운 자비에르 기념교회에서 교인으로 보이는 일본 여성이 우리 일행에게 한국말로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1% 미만인 일본에서 예수 믿는 자를 만나는 것은 신기하고 참 반가웠다. 국경을 넘어 예수로 하나 되는 듯했다. 아름다운 자비에르교회에 원색적인 예수 복음이 넘치는 피의 강단이 세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망해 보았다.

순교지를 순례하면서 금교령으로 수많은 순교자가 피를 뿌린 땅, 일본을 위해 더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수많은 순교자의 피가 헛되지 않게 일본 복음화를 위해 더욱 힘써 기도할 것이다.

■마츠우라 사료박물관에서

조서영(풍성한청년회 9부)

마츠우라 사료박물관은 일본 외교무역을 가장 먼저 성공시킨 히라도 영주 마츠우라 다카노부의 저택이었던 곳이다. 지금은 마츠우라와 히라도의 역사에 관한 사료를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크리스천 금제 정서(선교사 추방령) 원본이 전시되어 있고, 기독교 관련 유물도 많이 볼 수 있다.

순교지를 돌며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을 기뻐하고 예수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워 최고로 값진 죽음을 맞이했던 것을 느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인데 나도 순교의 순간이 올 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어 주셨듯이 믿음의 의리를 지키며 순교하고 싶다.

또 일본 순교지를 돌아보면서 ‘순교는 오직 성령으로 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당장 예수를 위해 죽을 것 같아도 활활 타오르는 불 앞이나 목숨을 위협하는 칼날 앞에서는 잠깐의 기분과 감정으로는 절대 주를 위해 죽을 수 없다. 오직 기도로 성령에 매여 순교의 믿음을 얻어야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유익한 시간이었다.

■야이자 화형장에서

민백합(풍성한청년회 16부)

이탈리아 출신 카밀로 콘스탄치오 선교사가 이키츠커에서 선교하던 중 체포되어 화형을 당한 야이자 화형장. 그는 순교하기 직전에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어 행복하고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원했다고 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화형을 당한다면 이들처럼 불 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또다시 내게 물었다. 나도 불 속에 들어갈 때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순교할 수 있다고 하신 윤석전 목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주와 복음을 위해 오늘도 기도한다. 주님, 제게도 순교할 믿음을 주세요.
 

위 글은 교회신문 <48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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