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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기쁨
1994년 9월, 고향을 떠나 첫 부임지인 용인에서 교편 생활을 시작한 지 1년만에 이병희 청년은 노량진에서 공부하던 친구의 인도로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다. 우직하고 순수한 성품의 그가 교회에 등록하고 처음 기도한 것은 “나 예수 잘 믿게 해주세요.” 그리고 나서 담배갑과 함께 옛 사람을 버려나갔다.
그가 은혜 받고 처음 결심한 것은 ‘전도하는 사람이 되자’였다. 1996년경,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에 틈틈이 전도하고 천국과 지옥을 간증하는 등 영혼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것을 좋게 볼리 없는 학교 측과 학부모들의 핍박과 원성은 그를 주춤하게 했다. 그렇지만 전도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마침 학교 앞에 있던 교회를 토요일마다 방과 후 두 시간씩 빌려 자기 반에서 자원하는 학생들 15명을 모아 성경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2년. 하루는 성경 공부가 끝나고 교회를 나서는데, 마음속에 울리는 음성이 있었다.
“나는 너로 인하여 기쁘고 네가 정말 사랑스럽다.”
이런 주님의 위로는 지치고 힘들기도 한 그의 마음을 일으키고, 더욱 전도의 고삐를 다잡을 수 있게 했다.
이때 같이 공부했던 학생들은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어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화나 편지를 보내오며 예수를 전해준 어릴 적 은사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든든한 믿음의 후배들로 자라주었다.
그의 전도 열정은 가족들을 향해서 더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지극히 보수적인 유교집안이었기에 토요일 하루 동안 서울과 고창을 오르내리며 완고한 부모님을 설득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언제나 마음의 고통과 눈물이 따랐다. 교회 안에서 믿음의 배우자와 결혼을 한 후 1년쯤 지나자 지난 4년여의 노력과 기도가 열매를 맺어 부모님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믿음의 실상을 갖고
궁동에 와서야 열매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하는 그의 속마음은 이렇다. 전도한 어린이들이 본 교회에서 중고등부, 청년부,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신앙생활을 잘해서 교회의 기둥이 되는 것이 소원이다. 노량진에 교회가 있을 때에는 이것이 어려웠는데, 교회의 궁동이전 후 근처 역곡 초등학교가 가까워서 주일 아침마다 자신의 차로 역곡에 사는 6명의 아이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이 아이들이 신앙생활을 잘해서 교회의 기둥이 되는 것을 미리 보며 기뻐하는 것이다. 올해 여름성경학교에서 이 아이들이 천국과 지옥을 보고 방언을 말하는 체험을 하게 되자, 아이들의 불신 부모들은 교회와 복음에 대해서 매우 호감을 갖게 되었다.
어디든 전도의 일터
해가 바뀌면, 이병희 집사는 임기를 마치고 경기도내의 다른 곳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는 이왕 갈 거면 아주 시골로 가서 도시의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가정 심방도 다니면서 불신 학부모도 전도하고 동네 교회와 연계해 적극적인 전도활동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들이 거듭나고 영육간에 보호받고 자란 본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이 그들의 가정에겐 무엇보다도 중요했기에 주말부부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전도는 절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퇴근하면서 교회에 들러 기도하는 것은 주님보다 앞선 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이병희 집사는 미래의 자기 모습이 겸손하고 진실하기를 바란다. 주의 일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일하신다는 믿음이 오고, 감사한 마음에 더욱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꾼이 되고 싶다. 그의 심령을 붙들고 사랑하시고 지키시며 “내 일, 곧 영혼 구원하라”고 재촉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심정이 전해져온다.
위 글은 교회신문 <6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