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상 성도 / 제5남전도회 전도부장

등록날짜 [ 2006-02-04 10:45:08 ]

전도지를 한 가방 짊어진 유희상 성도, 그가 길을 나선다. 근린공원, 전철, 목동, 영등포, 문래동 근처 아파트들…. 만나는 사람마다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그의 눈가에는 어느덧 촉촉한 눈물이 고인다.
“너 꼭 전도사같다? 어떻게 네가 이렇게 변화됐냐?”
술, 방탕, 세상풍습을 좇던 그의 삶이 흰돌산수양관 성회에 참석하는 순간 180도 변해버린 것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유희상 성도는 주일학교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으나 그냥 열심히 교회만 다녔기에 가슴 깊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 인생에서 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은 후, 그는 기도의 힘이 넘치는 성령충만한 교회를 찾아헤맸다. 그러던 2004년 10월, 오류역에서 전도하던 이노희 교구장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만나게 된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자전거를 타다 다리를 다쳤다가, 작년 신년축복성회에 참석해 담임목사의 말씀을 들으며 뜨겁게 은혜 받던 중 치료를 체험한 그는 하나님께 더 많이 감사하며 전도의 발걸음을 쉬지 않고 있다. ‘나는 가서 전하고 주님은 그 일에 책임지신다’고 굳게 믿는 그는 부모님과 형제, 자녀, 일가친척 전도를 먼저 시작했다. 권사로 오랫동안 신앙생활 했던 외사촌 누님도 윤석전 담임목사의 설교말씀을 듣고는 자식에게 전도 못한 것을 회개하며 교회로 이끌었다. 구십을 바라보는 시골에 계신 노부모에게도 적지만 용돈을 보내주며 예배를 잘 드리도록 권면하고 기도한다.
그가 한 때 몸담았던 아산시의 인삼공사 지인들은 그의 전도밭이다. 지금도 열심히 전화로 전도하는 중이다. 일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먼저 관심과 감동을 주며 슬며시 전도를 했는데 현재 6명이 교회로 출석하고 있다.
그의 전도는 이에 그치지 않고 생업으로 인해 신앙생활하기 어려운 그들을 모아 아산시 밀투리에 운송업을 하는 공장을 계약하도록 도왔다. 한 곳에서 일하도록 주선한 것이다. 그리고는 매주 기름값과 식비를 대주며 그들을 우리 교회에 출석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주일은 일하지 말라 했으니, 지금은 손해 보는 듯 해도 하나님이 채워줄 걸세."
주일만큼은 일하지 않는 사업장이 되길 바라는 간절한 그의 부탁은 이미 그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 놓았다.
새벽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오늘도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통화 속에서 그는 크고 높은 하늘의 비밀을 알려주는 중이다.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했더니 교회 가자는 말보다 그들의 처한 환경에 필요한 따뜻한 말들을 먼저 건넨다. 세세한 안부와 끊임없이 보내는 문자 메시지, 그리고 만남을 통해 은혜로운 목사의 말씀 테이프를 선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공을 들여 전도해도 은혜가 뭔지 몰라 막무가내로 예수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그의 관심과 기도 속에 그들도 곧 하나님을 만나고 행복해했다. 갈급했던 자가, 귀신에 얽매였던 자가, 예수를 경험했으나 신앙생활을 유지 못하고 타락했던 자가 회개하며 말씀을 사모하고 은혜를 받을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며 그는 빙그레 웃었다.
“진작 예수 잘 믿었어야 했는데..."


그는 지금보다 앞으로 더 열심히 전도인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3월 15일 교회설립 20주년 때 예배 한 부수를 더 늘리자고 담임목사가 애타게 말씀하시는데도 주의 종과 똑같은 심정을 갖지 못해 생각처럼 재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가슴이 아프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집이 멀리 떨어져 있어 예배드리기가 힘겨운 이들을 위해 버스를 한 대 살 겁니다. 베드로는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며 회개시켰지요.”
시종일관 자기는 너무 부족하다고 인터뷰를 사양한 그는 올해 전도 목표가 100명이라고 살짝 알려주며 웃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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