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9-28 21:06:05 ]
군 생활 동안 믿음 지키며 연단 과정 거쳐
환경에 상관없이 주님 고백하니 기쁨 배가
최현 (풍성한청년회 전도4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후에 기도로 준비하며 입대했다. 아무리 믿음 좋은 신앙인이라도 군대 있을 때는 믿음을 지키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요즘 군대는 신앙 자유와 주일 휴식이 보장되기에 신앙생활이 어렵지 않다고들 한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군 생활은 예외였으며, 혹독한 연단 과정이었다.
교회 다니는 고참 선임병이 있어야 겨우 주일 한 번 예배드리러 같이 갈 수 있었고, 그나마 그 고참이 가기 싫은 날은 교회에 가지 못했다. 선임들은 교회 가는 것을 현실 도피로 생각하고 혹독하게 교인후임들을 짓밟았다. 그 와중에 꿋꿋이 수요예배까지 안 빠지고 교회 나가는 나를 선임들은 더욱 싫어했다. 언젠가 한번 무서운 선임 중 한 명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너 상병 달고 병장 달 때까지도 지금처럼 교회 안가면 내가 죽여 버린다!”
그 선임은 교인이랍시고 계급이 낮을 때는 주일마다 교회에 가다가도, 계급이 높아지고 편해지면 교회 안 나가는 후임들을 자주 봤기에 나도 그들처럼 현실 도피 차원으로 교회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나름 협박(?)이었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이제 마음껏 신앙생활 해도 좋다는 계약서와도 같은 것이었다. 교회 갈 때마다 감시하는 듯한 눈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시려는 연단이었고 모두 내게 공급하신 은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올해 하계성회 때 흰돌산수양관에서 생각만 해도 무서운 그 선임을 우연히 만났다. 순간 서로 멍하니 마주 보았다. 그 선임은 제대 후 전도받고 교회 출석해 흰돌산수양관까지 왔으며 방언은사까지 받았다고 했다. 믿기지 않는 일을 주님께서 하신 것이다.
또 한 번은, 상병 때까지 열심히 신앙생활 하던 선임이 있었다. 군 교회행사 때도 거의 대표를 도맡았다. 그 선임은 제대할 때 후임인 내게 면담을 신청했는데, 이유는 신앙생활에 있어 자신의 열심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과, 내가 하는 신앙생활과 비교해 볼 때 자신의 열심과는 큰 차이를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한마디, “나 신천지야!” 신천지 사람들은 자신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데 신천지 소모임 지도자격인 그 선임이 먼저 자백하고 온전하지 못한 신앙생활에서 자신을 건져달라는 구조요청을 해온 것이다. 결국 그 선임은 신천지가 잘못된 길임을 깨닫고 전역했다.
우여곡절 끝에 주님 은혜로 제대 후 사회에 나와 직장생활 하면서도 나는 쉬지 않고 전도했는데, 나를 유난히도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다. 시간만 나면 내게 와서 예수 믿는 것에 대해 비아냥거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만의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그분은 언젠가 꿈속에서 예수님이 찾아와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에게 안수를 해주셨다고 말했다. 마음속에 항상 이 사건이 맴돌았기에 더욱 내게 비아냥거렸던 것이다. 하나하나 설명해주며 더 늦기 전에 주님의 부르심에 속히 응하라고 전했다. 또 직장 동생 한 사람을 전도했는데 우리 교회에 다닐 때 더듬더듬 배운 기타 실력으로 지금은 유학 간 외국 교회에서 찬양인도자로 성장해있다.
전도를 정해놓고 나아가서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 피로 은혜 받은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환경에 흔들림 없이 주님이 살리고 싶으신 영혼을 찾아 나서야 한다. 전도 열매가 많지 않은 내 모습이 조금은 부끄럽다. 그래도 나는 전도하는 것이 매우 기쁘다. 내 입술로 주님을 언제 어디서나 계속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내 삶의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 주께서 “내 사랑을 받을 줄 알았던 아이였다!”고 말씀하시기를 사모한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태복음 10:32)
위 글은 교회신문 <21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