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전도이야기] 아들 10년 기도로 구원받고 전도자로

등록날짜 [ 2011-08-09 13:52:55 ]

큰아들 간곡한 부탁에도 이제야 믿은 것이 미안
천국과 지옥 확실히 믿기에 전하지 않을 수 없어


<사진설명> 신규 아파트 단지에서 전도하는 오순영 집사. 

매주 목요일마다 19여전도회원 두세 명과 함께 오후 1시쯤 개봉동으로 전도하러 나간다. 또 수요일과 토요일은 전도국과 연합해 천왕동 아파트 단지나 신정동으로 전도를 나간다. 요즘은 천왕동 신축 아파트 단지에 속속 입주민이 들어오고 있어 그쪽으로 많이 나가는 편이다.

사실 처음에는 교회 전단을 내밀면서도 “예수 믿으세요”라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했다. 용기를 내서 내민 전단을 안 받으면 쑥스러운 건 말할 것도 없고 얼마나 속이 상하고 야속하던지.... 그래서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했다. 지금은 전단을 받든 안 받든 ‘하나님, 이 영혼이 꼭 예수님 믿고 천국 가게 해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건넨다. 더구나 요즘 천국과 지옥의 실존이 더 확고히 믿어지니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저 사람은 예수 믿을까? 안 믿으면 어떡하지? 지옥 갈 텐데...’ 하며 걱정이 되고 안쓰러워 예수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다.

믿을 자는 믿더라
한번은 범박동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전도할 때, 그곳 경비 아저씨를 전도하고 싶어 선물도 사드리고 이것저것 신경을 써서 챙겨 드렸다. 우리 교회에 오기로 약속한 날짜를 며칠 앞두고 안부 인사 겸 다른 집 심방 겸 버스를 타고 범박동으로 향했다. 그런데 1단지에 내려야 할 것을 그만 2단지에 내리고 말았다. 물어물어 1단지를 찾아가는데 너무나 덥고 다리도 아팠지만 꾹 참고 걸어서 1단지 경비소까지 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분은 삼일 전에 그만뒀습니다”라는 얘기를 듣게 됐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 어찌나 실망스럽고 안타깝고 서운하던지.... 그때 심정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잠시 후, 서운한 마음을 접고 범박동에 온 둘째 목적인 심방을 하려고 다른 단지로 가다가 인상이 좋아 보이는 경비 아저씨에게 복음을 전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지 9개월쯤 됐는데, 침례교회를 찾고 있다는 말에 속으로 ‘할렐루야!’를 외쳤다. 고생고생해서 찾아온 길에 만나려던 사람을 못 만나 속이 상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비된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니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때 만난 경비 아저씨는 지금도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

3년 전 하계성회 통해 은혜 받아
요즘 들어 전도에 열심을 내고 있지만, 사실 나도 예수 믿기까지 큰아들의 속을 많이 태운 전력이 있다. 우리 집안은 교회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영적 불모지였다. 그런데 큰아들(신명규 선교사, 영국)이 저 혼자 어릴 적부터 신앙생활을 한 모양이지만, 나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러다가 군대 간 큰아들이 휴가 나왔을 때 가슴에 군종 마크를 달고 있는 것을 보고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큰아들은 당시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부모로서 나름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 큰아들이 늦게 귀가하고 가끔 외박도 하기에 걱정을 했지만, 남편과 나는 ‘공부하나 보다’ 했지 신앙생활 하느라고 그러고 다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성적이 떨어지거나 사고 한 번 친 적이 없는 착한 아들이었다.

문제는 명절 때였다. 명절 이틀이나 사흘 전부터 아예 큰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남편이 노발대발했다. “지금 아버지가 찾으시는데 어디니? 큰집에 가서 제사도 드리고 친척들도 만나야 하는데…. 명규야, 도대체 너는 명절 때만 되면 어디 가니?” 전화로 아무리 채근해도 죄송하다는 말뿐이었다.

나중에 내가 우리 교회에 다니고 나서야 그때 큰아들이 우상숭배를 피해 성회에 참석했다는 것을 알았다. 큰아들이 무릎 꿇고 “우리 집안에 우상숭배를 끊어주세요! 저주를 끊어주세요!” 하며 혼자 얼마나 눈물로 부르짖어 기도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하다.

교회에 한번 오라고 큰아들이 내게 그렇게 사정사정했지만, 직장 다니느라 바빠서 초청 주일에 딱 한번 오고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교회에 나왔다. 그러다 3년 전에 직장을 그만두고 장년부 하계성회에 참석해 은혜 받고 나서부터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이 믿어져 늦깎이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감사뿐이다.

내 육신 강건할 때까지 전도할 것
요즘 연로하신 친정어머니의 구원을 놓고 기도하니 십여 년 전에 큰아들이 가족구원을 놓고 기도할 때 심정이 느껴진다. 청주에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께 아무리 서울에 오시라고 설득해도 고집을 피우시니 그저 구원받을 기회를 달라고 눈물로 주님께 기도할 뿐이다. 그런 친정어머니를 뵐 때마다, 내가 좀 더 일찍 예수 믿었으면 아들의 마음고생을 덜 시켰을 텐데, 후회막급이다.

아들이 설득할 때 조금만 더 일찍 예수를 믿고 함께 신앙생활 했더라면, 큰아들이 대학부에서 주일에 대학부 아이들과 먹을 반찬 한 가지라도 맛있게 해주고, 금식할 때 죽이라도 따뜻하게 쑤어줬을 것을.... 그땐 아들이 싸늘하게 식은 죽을 먹는 것을 봐도 왜 그러는지를 몰랐다. 지금은 해주고 싶어도 멀리 영국으로 선교하러 가고 없으니 반찬 한 가지를 해도 마음이 쓰이고 가슴이 찡한 게 미안하다.

“십 년을 기도하니까 어머니가 움직이셨어요.” 큰아들이 어느 교구장에게 한 얘기다. 그처럼 기나긴 세월을 큰아들이 애절하게 기도해준 덕에 이제 나는 물론 작은아들까지 예수 믿고 전도자로 쓰임받고 있으니, 하나님께 얼마 감사한지 모른다. 늦게라도 구원의 길로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건강이 있는 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기쁨이 되도록 전도에 힘쓰며 살고 싶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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