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전도이야기]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전도는 변함없어

등록날짜 [ 2016-04-25 13:48:48 ]

때를 얻듣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에 언제나 순종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영혼 구원을 향한 애절함은 잊지 않아

장로님,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에요. 장로님, 제가 부모님처럼 생각하는 것 아시죠? 내일 꼭 권사님 모시고 오세요. .”

애가 달아 교회신문을 건네고 교회 버스 노선 안내까지 빠짐없이 챙긴다. 병석에 누운 권사님과 작별하고 부지런히 교회로 달음질쳐 온다. 아침 10시에 기자와 인터뷰하기로 한 터였다. 모처럼 쉬는 토요일, 지친 심신으로 게으름을 부려도 될 텐데 이른 시각에 지인을 심방하고 오는 그이는 김경옥 성도다

삶에서 늘 보여 주는 복음 전도

김경옥 성도가 중국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던 장로님에게 연락을 받은 건 보름 전 즈음이다. 권사님이 췌장암 말기라며 기도를 부탁해 왔다. 한국에 들어와 사는 아들, 딸을 예수 믿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해에 한국에 나온 장로님 부부다. 경기도 화성 아들네에서 사는데 권사님이 병간호 일을 하느라 주일도 못 지키는 지경이 됐다는 소식에 김경옥 성도는 몇 차례 전화를 걸어 영혼이 곤고해 어떻게 견디느냐고, 애절하게 우리 교회에 오시라고, 다시 신앙생활 하자고 권유했다.

권사님이 덜컥 암 진단에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보니, 지난 세월이 자꾸 되살아나 눈에 밟혔다. 중국에 살 때 작은 교회지만 할 일은 많고 일할 만한 젊은이는 없는 상황에서 부모님처럼 따르며 함께 전도하고 심방 다니던 날들. 예수 안 믿는 부모님께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하던 일. 믿음 적은 자신을 동역자로 여기고 아끼고 사랑해 준 두 분이어서 만나는 이마다 기도를 부탁했다.

꼭 좀 기도해 주세요. 장로님 부부가 내일 꼭 와서 은혜받고 다시 신앙생활 하게. 아들, 딸도 예수 믿게 꼭 좀 기도해 주세요.”

김경옥 성도는 조선족이다. 전도하여 정착하게 한 이들도 모두 조선족이다. 얼마 전 5명 이상 교회에 정착시킨 전도자에게 주는 붓글씨 성경을 받았다. 2006년 한국에 나와 몇 년간 교회에 다녔다.’ 말 그대로 다녔다. 돈 벌어야 했기에 신앙생활 할 여유가 없었다. 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로는 갈수록 영혼이 피폐해져 갔다.

조선족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몸을 쓰는 일이다. 언제부턴가 허리가 아파 병원에 다니다 간호사인 강지숙 집사를 만나서 우리 교회로 인도받았다. 주일 예배에 선포되는 설교 말씀은 생수와도 같았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은 듯 주저하지 않고 2011년 등록했고, 말씀에 은혜받자 몸도 회복되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며 전도하며 살아야지하는 거룩한 요구가 꿈틀댔다.

김경옥 성도는 새벽예배로 하루를 시작해 늦은 밤까지 애끓게 기도했다. 기도하면 할수록 영혼 살리고자 하는 주님 심정이 불타올랐다. 일하다가도 생각나는 이에게 전화해 복음을 전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하신 주님 말씀대로 몇 번이고 생각날 때마다 복음을 전하고 기도했다.

내가 진작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움과 고마움을 표하는 A씨는 얼마 전 오류동으로 이사해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 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 교회가 전 성도 40일 그리고 10일 작정 기도회를 시작되자 오전에만 일하고 기도에 전력하고 있다. 이달엔 소속된 여전도회에서 성전 청소를 담당한다며 빠지지 않고 기쁨으로 함께하고 있다. 그의 남편뿐 아니라 언니도 우리 교회에 와서 은혜받고 있다. 열 살 난 조카는 방언은사를 받아 매일 저녁 작정 기도회에 동참한다.

만성 신장염으로 병든 몸을 이끌고 왔던 B씨는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다며 건강해진 육체를 간증하기 바쁘다. 예배 마지막에 담임목사가 예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몰아낼 때 믿음으로 아멘을 외치자 몸이 회복되는 체험을 했다고. 지금은 전도자가 일일이 챙겨 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교회에 잘 정착했다.

범박동에서 입주 육아도우미로 일하는 C씨는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는 범박동 성전에서 작정기도를 한다. 중국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던 그이는 김경옥 성도에게 자석처럼 이끌려 와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내서 새벽예배도 드리고 금요철야예배도 드리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직업을 주세요라는 기도에 응답하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생명이 생명을 낳는다는 진리. 기독교는 그런 진리의 신앙임을 김경옥 성도는 삶으로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아직 믿음이 연약한 이들도 있지만, 어느 한 영혼이 소중하지 않을까. 그이의 기도는 날로 깊어 가고, 출퇴근 길 전철에서도 복음을 전하려고 애쓴다. 가방에는 전도하는 데 필요한 교회신문과 전도지가 항상 있다.

주님, 저는 일도 해야 하고 전도도 꼭 하고 싶은데요. 제게 택한 자들을 붙여 주세요.”

받은 은혜 앞에 진실하게 고백했던 기도가 하나둘 열매로 탐스럽게 익어 간다

가족을 향한 애절한 사랑

김경옥 성도의 영순위 전도대상자는 다름 아닌 남편이다. 예수 믿기로 하고 결혼했지만, 그저 교회에 따라다니기만 할 뿐 믿음이 자라지 않았다. 평소에는 한없이 착하고 서글서글한 인상 좋은 남편이지만 핍박을 할 때는 육체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상처를 입히기 일쑤였다. 그런 남편을 품기에는 너무 아프고 연약했다.

그런 남편이 수년 전 공사현장 3층에서 떨어져 다리를 심하게 다치고 지난해에는 뇌출혈로 반신불수에 언어장애까지 왔다. 남편을 병간호하고 중국에서 대학 공부하는 딸을 책임지는 일은 하루하루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나님 뜻대로 못 살아서 이러지하며 마음을 다잡고 치열한 영적 전투에 임해 왔다.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궁동으로 이사 와 죽기 살기로 기도하며 자신을 변화시켜 달라고 울부짖었다. ‘주님은 나를 위해 죽기까지 섬겨 주셨는데 나는 남편도 사랑하지 못하네요.’ 눈물의 기도는 느리게나마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남편을 무서워하지 않고 담대히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로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사랑해요라는 문자를 보낼 정도가 됐다. “애교는 없지만, 영혼 살리는 데 뭐는 못 하겠느냐?”며 웃는 그이의 모습에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복음 전도는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에 앞서 나를 바로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그 힘으로 사는 것이다. 그 힘으로만 다른 이도 살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김경옥 성도를 영혼을 살리는 거룩한 사역에 쓰고 계신다. 그이의 수첩엔 지인들의 명단이 빼곡하다. 중국에서 국내 조선족들로 자연스레 네트워크가 이루어졌다.

어느새 벚꽃의 시대는 가고 수줍게 모과꽃, 사과꽃이 피었다. 도발적인 향기를 뿜으며 라일락도 피고 시선을 조금 낮추면 무리 지어 철쭉들이 울긋불긋하다. 그 밑에 다소곳이 핀 노란 민들레. 고개를 쑥 뻗고 창같이 생긴 잎으로는 여기는 내 영토라는 듯 지면을 덮은 모습이 다부지다. 김경옥 성도의 전도의 지경도 이렇게 조금씩 꾸준히 넓어지고 있다.

/정성남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7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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