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12-18 23:22:45 ]
두 주밖에 살지 못한다던 큰오빠
주님의 은혜로 한 달간 병실에서
생명의 말씀 들으며 지난날 회개
임종 전까지 함께 보혈 찬송하며
영혼 구원 위해 기도로 섬겼더니
주님 역사하시고 구원받게 하셔
| 김미숙(19교구)
무더위가 기승하던 지난 8월, 전남 해남에 사는 큰오빠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는 큰언니와 지방의 병원으로 급하게 향했다. ‘몇 달 전 입원하긴 했으나 퇴원할 만큼 건강해진 것이 아니었던가.’
오빠가 있는 병원을 찾아가 보니 올케 언니 얼굴이 무척 어두웠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원래 폐질환을 앓고 있던 오빠는 얼마 전 폐 한쪽을 절제했는데 염증이 심해져 패혈증으로 번진 것이었다. 의사는 숙연한 목소리로 오빠에게 남은 시간이 두 주 정도라고 했다. 이미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 제일 강한 항생제를 쓰고 있으니 큰 병원에 가더라도 별다른 조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와 큰언니는 마음이 급했다. 오빠가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오빠의 영혼 구원을 위해 계속 기도하기는 했으나, 오빠가 워낙 예수님이나 교회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꺼리므로 가끔 통화하거나 만나서 대화할 때도 제대로 복음을 전하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큰오빠를 대하기 어려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영혼 구원 위해 수차례 지방 병원 찾아가
오빠와 함께 병원에서 사나흘간 있으면서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역시나 오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의사에게 시한부 선고를 받았는데도, 말하거나 숨 쉴 때 조금 불편한 것 말고는 통증도 없고, 걸어 다니고 먹고 마시는 것도 무리가 없으니 본인이 곧 나을 것이라고 여겨 나중에 괜찮아지면 예수를 믿겠다고 했다. ‘저러다 갑작스럽게 육신의 때를 마치면 어쩌나.’ 애타는 동생의 마음을 몰라주는 오빠가 야속하기만 했다.
내 말은 듣지 않으니 병실에 담임목사님 설교 말씀 테이프를 틀어 놓고 계속 예수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그래도 막냇동생이 며칠씩 병실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이 고마웠는지 설교 말씀을 틀어 놓는 것에 대해 크게 간섭하지는 않았다. 옆에 있던 올케 언니만 오빠가 불편해하니 그만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영혼의 때는 영원한 문제이니, 시간만 나면 설교 말씀을 틀어 놓고 기도문도 읽어 주면서 오빠가 예수 믿기를 기도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수년째 복음 듣기를 거절하던 오빠가 며칠 사이 조금씩 마음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실 오빠의 성격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무뚝뚝하니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탓에 다른 형제들과도 소원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형제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그동안 켜켜이 쌓아 놓던 마음속 앙금을 풀었다. 나는 오빠에게 빨리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다급함에 오빠와 형제들 간에 쌓인 죄악들을 풀어 보려고 생각조차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일 마음 문을 조금씩 열어주신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오빠와 병원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금식하라는 감동을 주셨다. 오빠의 영혼 구원을 위해 사흘간 금식기도를 했다. 그런데 금식기도 하는 동안 오히려 내가 큰 은혜를 받았다. 나 또한 그동안 오빠에게 가지고 있던 상처나 서운함이 하나둘 풀린 것이었다. 오빠를 이해하게 되고 그 영혼을 사랑할 마음을 주님이 더해 주시니 금식기도를 마친 후 다시 해남으로 기쁘게 향했다.
두 번째 병원을 찾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올케 언니의 마음 문도 많이 열어 주셨다. 처음 왔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여겼으나 며칠 사이 또 와 주니 고마웠던 것이다. 나중에 말을 들어 보니 하나뿐인 남편이, 또 가장이 언제 육신의 때를 마감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시누이들이 와 있어 한결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그 덕분에 병실에서 목사님 설교 말씀도 마음껏 틀어 놓을 수 있었다. 병실도 4인실에서 1인실로 옮기게 되면서 복음을 전하고 기도를 하는 데 더 자유로워졌다.
오빠는 날이 갈수록 숨을 쉬는 게 어려워졌다. 그 탓에 깊게 잠들지 못했다. 밤중에도 말씀을 계속 들을 수 있도록 24시간 설교 말씀을 틀어 놓았다. 그러자 입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오빠가 은혜를 많이 받는 듯했다. 어떤 설교 말씀에서는 목사님이 “아멘” 하라고 당부하시니 그 말씀에 동의하는 의미로 “아멘”이라고 따라 했다.
설교 말씀이라고는 절대 안 들을 것 같던 오빠였는데 “아멘” 하며 화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계속 오빠에게 “아담 이래 우리는 죄 아래 사는 존재이고, 죗값의 결과로 내 영혼의 때 영원한 지옥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의 피를 믿고 회개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복음을 전했다. 지난날 하나님 말씀을 몰라 제사 지내고 고사 지내며 우상숭배 한 죄들도 회개하도록 애타게 당부했다.
임종까지 함께하며 복음 전해
추석 연휴가 되기 전 세 번째로 오빠를 찾아갔다. 오빠는 몸이 더 안 좋아져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해 글을 써서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오빠는 글로 “형제들에게 미안하다”며 “용서해 달라”는 글을 남겼다. 그동안 형제간에 쌓아 놓은 수많은 일들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용서’라는 단어를 모르는 줄 알았던 오빠에게 “미안하다”는 고백을 듣고 나니 정말 그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나와 큰언니에게 “고맙다”며 애틋한 마음도 전했다. 그동안 험한 세상을 홀로 살아낸 오빠가 안쓰러웠다.
오빠에게 계속 목사님 설교 말씀 듣도록 하고, 큰언니와 함께 예배드리기도 했지만 제대로 예배를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우리 교회에서 추수감사절 축복대성회가 열리고 있어 오빠와 함께 양방향예배를 드렸다. 평생 교회에 한 발자국도 들이지 않던 오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리는 예배일 수 있으므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게 해 달라고 진실하게 기도했다. 담임목사님께서 집을 성전 삼아 양방향 예배드리는 연세가족들에게 애타게 설교 말씀을 전하시기에 ‘하나님, 우리 오빠도 교회에 온 거 맞죠? 우리 오빠 꼭 구원해 주세요. 천국 갈 수 있도록 회개하게 해 주세요’라고 간구했다.
오빠는 몸 상태가 좋아졌다 안 좋아졌다 반복했다. 믿음도 확실하지 않고 대화도 제대로 하지 못해 오빠가 천국에 갈 수 있을지 큰 확신이 없었다. 언제 오빠가 운명할지 모르는 일이니 병실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병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자면서 밤중에도 일어나 오빠의 상태를 살폈다. 임종하기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끝까지 예수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의사가 말한 2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도 큰언니도 서울에 가족들이 있어 연휴가 끝난 후 계속 병원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올케 언니가 챙겨 올 것이 있어 잠깐 집에 간 사이 오빠와 함께 실컷 예배드리고 예수 피를 찬양했다. 그런데 오빠의 호흡이 갑자기 거칠어졌다. 급히 간호사를 호출했지만 괜찮다는 말에 오빠와 함께 보혈 찬양을 계속했다. 오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눈물을 닦아 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시 호흡 곤란이 왔다. 다급한 오빠의 모습에 간호사를 부르니 담당의를 부르겠다고 했다. 연휴 기간이라 담당의가 오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러는 사이 오빠는, 나와 함께 예수 보혈을 찬양하면서 육신의 때를 마감했다. 잠든 것처럼 보이는 오빠의 평안한 얼굴, 그 얼굴을 보면서 내게서 감사의 찬양이 이어서 터져 나왔다. 교회에 한 번도 가지 않고 신앙생활이라고는 하지 않던 오빠였는데도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를 내 구주로 받아들인 것이 감격스러웠다.
주님 은혜로 가족 제사도 사라져
오빠 장례를 치르려고 하니 걱정스러운 일들이 생각났다. ‘올케 언니가 세상 풍속에 따라 장례를 치르면 어쩌나. 유·불교 사상에 젖은 다른 오빠들이 나서면 어떡하나.’ 하지만 올케 언니는 “고모들이 고생했어요. 남편이 천국 가도록 기도해 주고 마음 써 주셨으니 장례도 원하는 대로 하세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오빠들도 동의해 주어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오빠의 영혼 구원과 더불어 우리 가정에 또 하나의 복이 임했다. 바로 집안의 제사가 사라진 것이다. 큰오빠와 다른 형제들 사이가 소원해 그동안 큰오빠가 혼자 제사를 지냈다. 올케 언니에게도 “그동안 애썼으니 더는 제사 지내지 말고 누구에게 주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올케 언니는 순순히 응했고, 오빠들에게도 제사를 끊자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막냇동생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도 참으로 주님의 은혜였다.
돌아보면 모든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일하셨다. 두 주밖에 못 산다던 큰오빠가 한 달 동안 있으면서 생명의 말씀을 들은 것도, 올케 언니의 마음 문이 열려 병실에서 말씀 듣고 마음껏 찬양할 수 있었던 것도, 1인실로 병실을 옮길 수 있었던 것도 오빠의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오빠에게 가는 것도 내가 결정해서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루만 늦었어도 추석 연휴 때문에 기차표 예매를 못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이었음을 바로 알았다.
큰오빠 장례식 이후 올케 언니 두 분에게 주일마다 우리 교회 실시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유튜브 링크를 보내고 있다. 두 분 다 전에 교회를 다니긴 했으나 코로나 사태 이후 가지 않는다고 해서 담임목사님 설교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당부하고 있다. 오빠들은 믿음이나 신앙 자체에 관심이 없지만 올케 언니들이 믿음이 자라 전도하면 또 다른 열매가 있으리라 믿으며 계속 기도하고 있다. 가족 모두 마음과 상황이 하루빨리 열려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해 우리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되기를 원한다. 영혼 사랑하는 마음 주시고, 역사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김도희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72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