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03-28 21:30:16 ]
3개월 시한부 선고받은 아버지
주님 은혜로 병상에서 예배하고
복음 들으며 임종 전 예수 영접
영혼 구원 위해 금식하며 간구
주님 역사하시고 구원받게 하셔
| 염하늘 (15교구)
간암 말기 그리고 3개월 시한부 선고. 친정아버지(73)의 이야기이다.
10년 전, 아버지는 간암 판정을 받았다. 건강하던 아버지의 암병 소식에 깜짝 놀랐다. 당시 나는 청년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체중이 40kg대여서 하루에 한 끼라도 안 먹으면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간암 판정 소식을 듣고 처음 금식기도를 했다.
처음 올려 드린 눈물의 금식기도를 주님께서 받아 주시고 응답해 주셔서 아버지는 이틀 만에 퇴원하셨고, 이후 아버지는 6개월마다 전북 고창에서 서울까지 재발 여부나 경과를 살펴보는 추적관찰만 하러 다니면서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계신 듯했다.
그런데 지난해 갑자기 배에 복수가 차는 등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나더니 급기야 11월에는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다. 아버지의 육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난생처음 병상의 아버지께 복음 전해
지난 10년간 친정아버지의 영혼 구원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많이 했으나 정작 복음을 직접 전하지는 못했다. 남에게 먼저 다가가는 살가운 성격인데도 어릴 적 호랑이 같던 아버지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인지 아버지에게만큼은 쉽게 다가가 전도하지 못했다.
막상 아버지의 죽음이 코앞에 닥치자 불가불(不可不)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다급한 감동을 받았다. 지난해 11월에 3일간, 1월에 5일간 그리고 2월에 다시 3일간 금식기도를 올려 드렸고, 자녀 셋이 잠든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에도 기도하며 아버지가 육신의 때에 반드시 복음 듣고 그 영혼이 주님 나라 갈 수 있도록 간절히, 간절히 간구했다. 지금껏 중보기도의 응답을 뜨겁게 체험하고 그 힘을 강력히 믿으므로 여전도회원들과 교구식구들에게도 중보기도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달 2월은 아버지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3개월째였다. 서울 S병원에서는 아버지에게 더는 해 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며 다른 병원에서 간 이식을 알아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언니와 남동생이 아버지를 위해 간이식을 하겠다고 자원했으나, 아버지의 몸 상태로 보아 이식수술을 견디지 못하리라는 진단을 받았고 간이식이 무산된 채 다시 S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아버지는 그새 심장박동이 떨어지고 의식을 잃어 가는 등 하루하루 위기의 순간을 맞았다. 아버지께 당장 달려가고 싶었으나 보호자 외에는 면회가 안 돼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내 속마음을 전했다.
“아빠, 그동안 효도하지 못해 죄송해요.”
농사지은 양식도 매번 넉넉히 챙겨주시며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시던 아버지께 더 잘해 드리지 못한 회한이 밀려오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셔요.”
미리 준비해 놓은 영접기도문을 읽으면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해 드렸다. 아버지께 처음 전하는 복음…. 목이 메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위해 다시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친정아버지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한평생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르고 산 죄,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깨끗하게 사해 주세요. 해결해 주세요.”
뜬금없는 기도에 아버지가 중간에 전화를 끊으실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내 기도 말을 잠잠히 다 듣고 계셨다. 기도해 드릴 때 어떤 영적인 방해가 있었는지 아버지는 계속 그르렁그르렁 숨을 거칠게 내쉬기도 했으나, 끝까지 기도를 마칠 수 있었고 듣고 계시던 아버지는 “그래, 알았다”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아버지께 난생처음 복음 전할 수 있도록 용기와 기회를 주신 주님께 정말 감사했다.
죽음 앞에서 예수를 영접한 아버지
며칠 후, 아버지는 전화마저도 못 받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셨다. 복수는 더 차오르고, 목에 힘줄이 터진 탓에 침을 뱉으면 피가 섞여 나왔다.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해 죽만 겨우 두세 숟가락 드실 뿐이었다. 의식 역시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다.
병원에서도 더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마지막 때를 고향에서 지내기로 결정하고 퇴원을 준비했다. 남동생과 함께 우리 가족도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전북 고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고창에 도착한 날 오후, 아버지도 내려올 준비를 하고 계셨는데 갑자기 심장박동수가 급격히 떨어져 응급상황이 닥쳤다! 임종을 맞이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다시 부랴부랴 서울로 상경했다.
병원에 어머니, 오빠, 언니, 남동생 온 가족이 모였다.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병동 12층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오빠에게 듣기론 한 번에 두 명씩 면회한다고 했다. 아버지께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비신자 가족과 함께 들어가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전도하는 것을 방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주여, 어찌해야 하나요!’ 마지막 순간, 아버지께 제발 복음 전할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간호사가 오더니 1명씩 15분간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할렐루야! 간호사가 마치 하나님이 보낸 천사처럼 보였다.
친정어머니, 남동생, 나 순서로 아버지를 뵈러 들어갔다.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한 순간, 가슴이 아렸다. 70kg이 넘던 건장한 몸이 그간 암 투병하느라 47kg으로 삐쩍 말라 있었다. 아버지의 손과 팔에는 그간 얼마나 많은 링거 바늘을 꽂았는지 피멍이 이곳저곳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뭐 하러 여기까지 왔느냐”라며 침대에 기댄 채 기운 없이 말하셨다. 정신이 있다 없다 하셨는데 다행히 내 면회 차례가 됐을 때는 의식이 돌아오셨다.
나는 지체할 틈 없이 교구목사님과 전화를 연결해 아버지께서 영접기도를 받도록 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평생 비신자로 살아오신 아버지인데도 교구목사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멘”, “아멘” 하시며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셨다. 지난 몇 달 동안 애타는 금식기도를 들으시고 주님이 하신 일이었다. 또 청년 시절부터 10년 넘게 아버지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한 것을 주님이 응답하신 것이었다.
짧은 시간 교구목사님과 전화로 예배드리고 기도를 마친 그 순간, 병실 문이 덜컥 열리고 친정오빠가 들어왔다. “다른 가족들도 차례를 기다리니 어서 정리해라.” 어느새 면회 시간이 끝난 것이다. 15분. 그 시간 동안 얼마나 긴박하고 긴장했던지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하지만 너무 기뻤다. 아버지께서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하셨기에!
병실을 나오면서 아버지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통에 일그러져 있던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무척 평안해 보이셨다. 그 후 친정아버지는 전북 고창으로 내려가 두 주를 더 사시다가 소천하셨다. 아버지의 죽음을 전하면서 어머니와 오빠는 목메어 울었지만, 나는 그동안 기도해 온 것이 있었기에 덤덤했다. 오히려 아버지의 영혼이 눈물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행복이 있는 천국에 가셨다는 감동을 받아 기쁘기도 했다. 아버지의 부고를 들은 후, 아마 영생복락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 두 손을 번쩍 들고 눈물로 선포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기도와 격려로 섬겨준 연세가족들 감사
아버지의 장례는 화장으로 치러졌다. 화장터 여기저기서 오열이 터졌다. 가족과 친척 모두 슬픔에 잠겼다. 그런데 내 얼굴에는 슬픈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입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만 흘러나왔다. 화장을 앞두고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전할 말을 하라고 했다. 단장한 채 고이 누워 있는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다시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의 시한부 선고부터 임종을 맞이하기까지 잊을 수 없는 그 순간들…. 아버지의 영혼 구원만으로도 감사한데, 금식기도 기간 담임목사님을 위해 더 기도하지 못한 것도 회개할 수 있었고 장례 일정이 주일과 겹치지 않는 등 구한 제목대로 세심하게 응답하신 주님 은혜에 감사했다.
장례를 치르면서 여기저기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 정신이 없어 미처 연락도 못했는데 연세가족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진정어린 위로를 전해 주었다. 담임목사님께서도 전화로 따뜻하게 영적인 위로와 격려를 해 주셨다. 더구나 교구목사님, 교구장님을 비롯한 교구식구들과 남·여전도회원들이 코로나19라 힘든 시기인데도 먼 곳까지 조문 와서 기도해 주어 큰 위로를 받았다. 이 지면을 빌려 머리 숙여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처음에는 화장터와 장례식장, 죽음이 만연한 분위기에 다소 마음이 눌리기도 했으나 어느 순간 두려움은 온데간데없고 심령에 감사와 기쁨이 가득했다. 마지막 발인 때도 가족과 친척들은 오열했지만 나는 하나님께 그저 감사하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의 소천을 계기 삼아 그간 소원하던 가족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켜켜이 쌓아 둔 오해를 풀기도 풀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회복을 경험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다.
무엇보다 믿음의 식구들이 있었기에 아버지의 마지막을 은혜롭고 복되게 마칠 수 있었다. 담당교구장께서 아버지 임종 기도며 장례식장에서 신앙적인 조언을 해 주시며 잘 이끌어 주셨고, 지인들도 죽음을 앞둔 가족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 간증하며 전도할 힘을 보태 주었다. 최근 시어머니를 천국 보낸 며느리, 죽음 직전까지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해 아버지가 소천하도록 섬긴 자녀, 자녀를 먼저 하늘로 보낸 집사님 등. 그들의 간증은 마치 내 이야기처럼 들리면서 심령을 파고들었고, 아버지께 담대히 복음 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주님, 우리 아버지에게 지금껏 예수님의 ‘예’ 자도 못 꺼내 봤는데 내가 과연 복음 전할 수 있을까요?’라고 나 자신에게 되물었으나 연세가족들의 은혜로운 간증을 듣고는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영혼 구원을 위해 중보기도 해 주신 은혜 또한 절대 잊지 못한다. 나 역시 그들의 사정을 내 사정처럼 여기며 진실하게 기도해 기도로 갚으리라.
딸로서 아버지 육신의 때에 큰 효도를 못했으나, 영적인 가장 큰 효도를 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신 주님께 감사하다. 또 기도한 것마다 즉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께, 이 모든 일을 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주님이 하셨다.
/손미애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74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