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주께로/ 한염석 선교사

등록날짜 [ 2005-06-02 17:06:12 ]


한국에서 비행기로 2시간 30분 거리, 면적은 남한면적의 16배, 샤머니즘과 라마불교가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나라.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뒤늦은 개방개혁으로 열악한 환경, 영하 35~40도의 매서운 추위를 견뎌야 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바울같이 써주소서’라는 고백으로 5월 11일 몽골로 떠난 한염석 선교사. 본지에서 출국 이틀 전에 만나 그의 뜨거운 열정을 들어보았다.


▶ 몽골사역에 첫 발을 내딛다
“몽골에 땅을 구입했는데 교회 지을 돈이 없다”는 신학대학 교수님의 말을 듣고, 성령의 감동으로 500만원을 대출 받아 헌금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2004년 교회가 지어진 몽골 ‘꿈을 이루는 교회’로 단기선교를 다녀오면서 몽골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단기선교를 다녀온 후 인터넷을 통해 하루라도 몽골의 날씨, 그들의 뉴스를 접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주셨고, 5월 11일 아내와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한국에 남겨둔 채 몽골사역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 선교사가 되기까지
하나님을 몰랐던 고교시절, 스쿨버스에서 학생들이 내리면 보듬어주고 안아주시던 학생들을 제일 사랑하신다는 원신부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신부가 되어야겠구나. 아니면 슈바이처가 되어보자’ 결심을 하게 되었다.
군 제대후 순복음교회에서 믿음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파주에서 공무원 생활로 안주하게 되었다.
번번히 찾아오는 술자리 속에서 끝없이 세상으로 향하고 있었을 때, 5살된 아들의 ‘귀볼이 커지는 병’으로 방탕한 자신을 채찍질하시는 하나님을 알게되었다. 회개하고 돌아와 몇 달이 못되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을 때 아들의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또 다시 회개를 하게 되었다.
파주의 한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는데 부흥회 마지막 날 뜨거운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다.
‘내가 너를 고등학교때부터 기다렸다. 너는 반드시 신학을 하고, 나는 너를 세계 선교사로 쓸 것이다’
그 후로 성서신학대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
2003년도에 아내의 제의로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하면서 파주에서 궁동으로 이사를 했다.
윤석전 목사님의 영성 깊은 말씀과 삶을 통해 ‘내 인생이 아닌 주님 당신 인생입니다. 나를 가장 힘든 곳에 써 주소서’고백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선 기도 중에 ‘지저스 연세중앙 성서교회’ ‘지저스 메디칼 센터’그리고 ‘학교’ 이 3가지 건물의 크기와 모양, 명칭까지 자세히 보여주셨다. 다른 사람들은 냄새나서 못 먹는다는 양고기가 아주 맛있었고, 전혀 배운 적이 없는 몽골어도 10일 동안 몽골에 거주하면서 한국말을 듣는 듯 아주 친근하고 쉽게 들리도록 체질과 귀를 바꿔주셨다. 현재 선교사 파송과 함께 수도 울란바토르 시에 있는 셀루렉대학교 한국어 교수로 초빙받아 2~3년 근무하게 된다. 강의를 통해서 대학생들과 교제하며 선교사역의 지경을 넓혀갈 예정이다.







<기도제목>
1. 성령의 지혜와 지식으로 선교할 때 영력과 영감과 영권으로 따르는 표적이 충만하게
2. 성령충만하여 주님의 심정으로 전도, 기도, 사랑, 선교할 수 있도록
3. 믿음으로 준비된 신실한 일꾼 붙여주시고 현지 언어에 익숙해지도록
E-mail : han3141@empal.com

위 글은 교회신문 <7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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