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8-16 13:18:41 ]
문화는 발달했으나 영적으로는 침체 일로인 나라
‘오직 예수’ 전하는 복음 앞에 이적과 응답 넘쳐
“그 어떠한 선교후원보다도 선교사를 살리고 선교사역을 부흥케 하는 놀라운 능력은 기도였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열매가 없어서 괴로워할 때, 멀리 한국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2005년 7월 10일 우리 교회 안디옥성전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독일 바이마르교회로 파송된 김응석 선교사<사진>가 6년 만에 우리 성도들 앞에 섰다. 김 선교사는 다소 격양한 목소리로 기쁜 승리의 소식을 들고 왔다며 그간 독일에서의 선교 사역을 보고했다.
먼저 김 선교사는 연세중앙교회 중보기도실에서 끊임없이 해준 24시간 릴레이 기도가 독일 바이마르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됐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김응석 원영혜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독일 바이마르 시는 인구 5만인 작은 도시지만, 세계적인 대문호(大文豪) 괴테, 실러가 활동한 곳이며, 근대민주주의 기초가 된 바이마르 헌법이 공포된 곳이다. 또 독일 정신의 중심, 독일문화의 중심이라 할 만한 곳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독일교회는 술과 담배를 허용하고, 목회자가 동성애 결혼을 집례 하며 심지어 동성애자를 목회자로 세우기도 한다. 이처럼 독일교회는 강단이 죽어 있다. 복음을 선포하는 강단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들도 문란한 성문화로 별거나 이혼하지 않은 가정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정 속에서 김응석 선교사가 개척한 독일 바이마르교회는 리스트 음악대학과 바우하우스 건축 대학에 다니는 평균 연령이 25세인 한국유학생 100여 명이 교회 일꾼이다. 청년들이 함께 모여서 아침과 저녁으로 예배하고, 토요일에도 거리 찬양으로 활발히 사역 중이다.
김응석 선교사는 “독일 영혼들을 섬기며 ‘골리앗 같은 독일을 깨워주시고 나아가 전 세계로 복음을 전하는 데 귀하게 써달라’고 기도하니 자연스레 능력이 나타났다”고 간증했다. 혈소판 수치가 정상인보다 수백 배 낮아서 아이를 출산할 수 없는 자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다. 혈소판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도 하나님이 역사한 이적 앞에서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또 김 선교사의 딸이 녹내장으로 실명 위기에 처했을 때도 연세중앙교회 성도들과 함께 전심으로 중보기도하고 간구했더니 완전히 치유 받는 은혜를 부어주셨다.
독일 바이마르교회는 현재 계속 부흥하고 있으며, 어둡기만 한 독일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바이마르교회는 일 년에 한 번씩 ‘예수꼴 만들기’라는 부흥집회를 연다. 청년들이 자비로 진행하는 이 집회는 많은 독일 사람을 초청해 은혜를 나눈다. 또 바이마르교회 성가대는 독일 교회 부흥을 위해서 1년에 서너 차례씩 교회든 어디든 찾아가 무료로 콘서트를 열어준다. 처음에는 콧대 높은 독일 사람들도 ‘과연 동양 사람들이 얼마나 할까’ 싶은 얼굴로 바라보지만, 실력과 영성을 겸비한 찬양이 울려 퍼지면 그들의 마음 문이 열리고, 편견이 벗겨지고, 주님의 사랑과 참된 복음의 능력에 감동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귀한 보혈만이 내가 사는 이유이자 유일한 힘의 동력이라고 김 선교사는 고백한다. 이 신앙 고백대로 독일 바이마르교회의 100년 모토도 ‘십자가를 지고 독일을 섬기자!’이다. 그리고 바이마르교회의 미래이자 일꾼인 학생들에게도 “육신의 평안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령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꾼이 되자”고 항상 촉구하며 기도한단다.
“학생들은 학업이 우상이다. 독일에 와서 어떻게든지 졸업장 받아서 취직하거나, 그것으로 자기 삶을 영위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최대 관심사는 예수가 흘리신 십자가 보혈이다”하는 김 선교사의 설교 말씀에는 복음과 구령의 진실함이 담겨있다.
마지막으로 김 선교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거리찬양을 하고 있는데, 한 달 전부터는 독일 사람들도 참석하고 새벽기도회에도 나와서 기도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문화 장벽과 종교적인 신앙생활, 악한 습관, 반(反)기독교 세력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또 독일 선교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선교사 바로 자신이라며, 자신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울 수 있게 김 선교사와 가정을 위해 중보기도를 부탁한다며 이날 선교보고를 마무리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