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산책] 악은 악으로 맞서야 한다?

등록날짜 [ 2007-05-07 15:01:22 ]

슈퍼맨, 베트맨, 후레쉬맨, 원더우먼, 6백만불의 사나이, 스파이더맨…

위의 열거한 인물들은 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지만 영화 속에서 절대적 선의 상징이자 무한한 힘을 가진 초능력자로서 그동안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캐릭터의 상징이다.
영화가 탄생된 이후로 특히나 액션영화에서 선과 악의 대결 구도는 영원한 재료이자 흥미의 원천이 되어왔다. 끝 부분도 대부분이 악당은 비참한 최후를 맞고 정의의 주인공은 행복한 결말을 맞는 해피엔딩 구조이다. 특히 중국 무협지나 영화는 대부분이 이 구도인데, 이것은 한나라 시대부터 사회 풍속 가운데 권선징악을 첫 덕목으로 꼽아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다 보니 권선징악에 해피엔딩은 다소 판에 박힌 공식이라고 여겨지게 되었고, 작품을 만드는 제작진들은 이 구도를 탈피한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영화가 나오고, 착하기만 하고 문제에 대처하지 못한 주인공에 비판을 가하는 동화들도 등장했고, 악당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그린 작품 등도 등장했다. 할리우드는 여기서 선과 악의 대결 구도에서 악과 악의 대결구도로 그 소재를 바꾸어가고 있으며 아직은 엉성한 면이 있으나 점차 이 대결구도의 정당성을 확보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영화 <리딕>에서부터 시작된 악과 악의 대결구도는 뱀파이어 시리즈 <블레이드>를 거쳐 최근 <고스트 라이더>까지 모두 위험한 외계인은 또 다른 외계인으로 물리치고 뱀파이어는 또 다른 돌연변이 뱀파이어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악한 유령은 좀 덜 악한 유령에 의해 물리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일본영화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성이 거의 무너진 듯 한 인상을 주고 있다. 영화 <데스노트>가 그 대표적이며, 죽음의 신에 의해서 발생된 악의 무리를 또 다른 죽음의 신에 의해서 제거한다는 소재에다 일본영화 특유의 탄탄한 시나리오를 더해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이러한 영화들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악이 악을 제거함으로써 다소나마 악에 대한 호의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게 한다는 점이다.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짐으로써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착한(?) 악은 충분히 정의로울 수도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세상은 악과 선이 확연히 구별되어 있다. 부정과 긍정, 거짓과 참, 비진리와 진리, 음극과 양극이 있다. 이런 구별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탄과 하나님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인간이 스스로 할 일이다. 공자나 노자, 장자 같은 사람들은 중용을 주장한다. 극단적으로 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영적인 문제에서 극단적이지 않고 우유부단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중립은 불법과 불의가 강자가 될 때 비겁하게도 정의와 진리를 억압하는 편을 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악의 씨가 강하게 되면 약속의 씨가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리와 양과의 싸움은 악과 선의 싸움이다. 성경은 말한다. 절대적인 악의 경계에서 선의 경계로 확실하게 들어서고 악의 근처도 얼씬거리지 말며, 악이 들어오는 것조차도 경계하라 명하신다. 악은 악일뿐이며,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는 절대 존재하지도 않는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17)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살전 5:15)

위 글은 교회신문 <11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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