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서부를 가로질러 북해로 굽이쳐 흐르는 길이 1,320km의 라인강은 예로부터 유럽의 젖줄이자 교통로로 곳곳에 로렐라이와 같은 수많은 이야기 거리와 동화같이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었다.
그 라인강이 남북으로 시내를 관통하면서 흐르는 독일의 도시 쾰른에는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쾰른 대성당이 장엄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쾰른은 라틴어로 식민지를 뜻하는 ‘콜로니아’에서 유래하였다. 명칭에서 보듯 고대 로마인들의 터전이었던 유서 깊은 도시가 바로 쾰른으로 일찍부터 독일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고딕건축양식을 대표하는 쾰른 대성당은 1248년에 처음 기공하고, 1322년 완성되어 봉헌되었다. 그러나 그 뒤로 1880년까지 무려 632년 동안 계속적인 개축 공사가 지속되면서 오늘에 이른 중세의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쾰른 대성당은 서쪽 정문의 첨탑 높이가 무려 157m로 50층에 달하며, 총 길이 144m, 폭이 45m로 약 3만 톤의 석재가 건축에 사용되었다. 단지 크기만 어마어마한 게 아니라 성당외벽의 화려한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여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세계 3대 건축물의 하나이기도 하다.
더 높이! 더 높이! 천국을 향하여!
고딕은 12세기 경부터 프랑스, 영국 등에서 시작되어 15세기 르네상스양식으로 넘어가기까지 약 3세기 동안 수많은 유럽 기독교회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이다.
그렇다면 고딕에는 어떤 신앙과 철학이 담겨있는지 살펴보자. 고딕양식은 하늘로 치솟은 날카로운 첨탑과 높은 건물, 그리고 커다란 창문과 거기에 새겨진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장식이 전형적인 특징을 이룬다. 종탑의 역할을 하는 첨탑은 보통 쌍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대성당처럼 외탑도 간혹 존재한다. 로마네스크 성전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표현했다면 고딕성전은 좀 더 천국에 가깝게 도달하고자 하는 중세인들의 독수리 같은 신앙심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것은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새로운 건축방법이 개발되면서 가능해진다. 하늘로 거침없이 뻗어 올라가는 수직적 상승감을 강조하는 고딕건축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벽체가 엷어져야 하며, 늑골모양의 지골궁륭(支骨穹:ribbed vault)을 통해 사압력을 경감시키는 기술이 필요했다. 궁륭이란 활처럼 둥글게 연결된 천장구조를 말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반원형 아치를 통해 천장의 무게를 지탱했다면, 고딕은 입구, 창 등에 뾰족한 모양의 첨두형 아치를 쓰면서 천장과 벽의 간격 넓이와 높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었다. 이러한 첨단 건축기법 덕분에 교회건물을 더 높고 넓게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큰 창문을 내면서 전체적으로 성전내부를 밝아지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천국의 빛을 보여주다
넓어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의 강도를 조절하고 장식으로 활용하기 위해 형형색색의 유리를 납으로 녹여 붙인 스테인드글라스가 사용되면서 성전은 이제 점점 더 화려해진다. 고딕시기 중세 장인들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의 영롱한 색채를 조절하면서 교회에 들어선 사람들이 마치 천국에 들어선 느낌
을 가질 수 있도록 당시의 건축과 광학기술을 활용하였다. 로마네스크 성당과 마찬가지로 성당의 문은 성경의 이야기를 표현한 화려한 부조조각으로 겹겹이 장식되었는데 여기에 스테인드글라스가 더해진 것이 고딕의 특징이다.
교회 정면은 보통 장미창이라 불리는 커다란 원모양에 꽃모양이 부채살 모양으로 음각된 화려한 색깔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멋스러움을 한껏 뽐낸다. 스테인드글라스는 후기로 가면서 점점 색채가 다양해지고, 그림이 섬세해지면서 회화적 미가 세련되게 된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여러 고딕 성전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특히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다. 상상해보라!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총 2000m₂가 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창들을 통해 하늘에서 투사되는 빨강, 파랑, 금빛의 향연이 세상사에 지친 나그네의 마음에 드리우는 황홀한 감동을! 중세인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빛의 찬란함에 비유하면서 예술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려고 했는데 그 최고 정점이 바로 고딕건축의 성당들이다. 중세인들에게 예술은 신앙이었고, 그것은 빛, 곧 천국에 대한 소망이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4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