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교회 음악만을 작곡한 영광된 바흐의 삶
음악의 아버지이자 스무 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 서양 음악사에서 흔히 우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데에는 음악사적인 이유와 혈연적인 이유가 있다.
바흐, 무한한 음악의 바다
우선 음악사적인 이유는 그가 쓴 수많은 음악 작품으로 말미암아 당대는 물론 후대 작곡가들과 심지어 현재의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곡가에게 끼친 직접적, 간접적인 영향을 들 수 있다. 모든 음악은 바흐로 통한다고 할 정도로 그가 서양 음악사에 끼친 음악적 영향은 위대하고 광대하다. 모차르트도 바흐의 푸가를 공부했고 그 영향은 그의 교향곡 41번 주피터의 마지막 악장에서 볼 수 있으며, 베토벤의 오라토리오 감람산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바흐가 썼던 오라토리오의 형식을 느낄 수 있다.
그밖에 바흐에 심취한 멘델스존은 바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마태수난곡을 발굴해내어 지금 우리가 다시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었고, 현대음악의 대부격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조차‘바흐로 돌아가자’라는 모토를 내세울 정도로 바흐를 경외하며 칭송했다.
이러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적 영향력을 높이 산 베토벤은 그를 가리켜 “그는 그의 이름처럼 시냇물(독일 말로 바흐는 시냇물이라는 뜻)이 아니라 바다”라고 칭송한 바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이유는 200여 년을 통해 배출된 수많은 바흐라는 이름의 음악가의 시조(始祖)이자 그들을 대표할 만한 음악가로서 불리는 음악의 아버지로서의 바흐다. 흔히 바흐라 하면 지금 말하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뜻하지만 실은 50여 명의 바흐라는 이름의 작곡가가 있다. 그래서 흔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대 바흐라 부르지만 크리스천, 임마누엘. 프리데만 등 이들은 모두 바흐라는 이름을 가진 바흐의 직계 후손들로서, 현재에는 대 바흐에게 가려져 그들의 이름의 비중을 느낄 수 없으나 그들이 살았던 당시에는 각자 당대를 대표하는 훌륭한 음악가들이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스무 명이 넘는 자녀의 아버지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모차르트는 한 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에게도 비범한 음악적 재능이 있었지만, 그 아버지의 천재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으며, 베토벤은 아예 결혼조차 하지 못해 슬하에 자녀 한 명 두지 못한 데에 비해 바흐는 자식 농사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믿음의 음악가 바흐
바흐가 태어난 곳은 독일 아이제나흐라는 도시로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곳이다. 그 영향으로 철저하게 루터교의 영향을 받고 자란 바흐는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평생을 음악을 통해 봉사하려는 믿음을 간직했고, 그래서 그는 평생을 교회음악가로 살아갔다.
그리고 교회 음악을 실로 많이 썼는데 그중에도 마태복음에 기초한 마태수난곡과 요한복음에 기초한 요한수난곡이 그 대표곡이라 할 수 있다.
그중 마태수난곡은 총 78곡으로 되어 있으며 수난의 예언에서부터 주님이 붙잡히심까지가 1부로 되어 있고 마태복음 27장 전체가 2부로 되어 있다.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합창과 중창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성경의 내용을 묘사한 걸작이다.
한 번은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선생님이여,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곡을 쓸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나는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누구든 나처럼만 성실히 곡을 쓰면 나와 같이 될 수 있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이 그는 겸손히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을 행해 나간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어쩌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렇게 많은 자녀를 낳은 것일 수도....
위 글은 교회신문 <144호> 기사입니다.